“혼자 내려가야 하나요?”
1952년 2월7일 부왕의 갑작스러운 부음을 듣고 아프리카 케냐에서 급거 귀국한 엘리자베스 2세 공주는 런던비행장에서 친척들의 기내 영접을 받고 안타까운 표정으로 이렇게 물었다.
그러나 상복 차림의 공주는 이내 마음을 다진 듯 윈스턴 처칠 총리를 비롯한 영국 지도층 인사들이 도열하고 있는 가운데 천천히 트랩을 내려왔다.
아프리카의 대자연 탐험에 나섰던 25세의 공주가 어느 날 갑자기 왕위계승자로서 트랩을 내려온 것이었다.
엘리자베스 2세 영국여왕(73)은 1952년 즉위할 때만 해도 50개 이상의 식민지를 거느린 대군주였다. 그 대부분은 이제 독립국이 됐지만 여왕은 지금도 54개국 영연방의 상징적 존재다.
엘리자베스 2세가 처음부터 여왕의 운명을 타고난 것은 아니었다. 그녀가 탄생한 1926년은 할아버지인 조지 5세가 재위에 있었고 아버지인 조지 6세는 조지 5세의 5남1녀 중 둘째 왕자였다.조지 5세가 서거한 후 왕위는 장남인 에드워드 8세에게 넘어갔지만 그가 미국 출신의 이혼녀 왈리스 심프슨 부인과 결혼하기 위해 왕위를 포기하면서 왕위는 조지 6세에게 승계됐다. 엘리자베스 2세가 10세 때인 1936년의 일이었다.
1947년 필립 마운트버튼 해군대위와 결혼한 엘리자베스 2세는 이듬해 첫 아들인 찰스왕세자를 낳았고 1953년 6월2일 웨스터민스터사원에서 대관식을 가졌다.젊은 여왕은 즉위하자 마자 곧 국민적 흠모와 애정의 대상이 됐다. 국가와 왕실과 가정에 충실했기 때문이었다. 여왕은 언제나 국가의 안위와 국민의 행복을 최우선으로 배려했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여왕은 비록 통치권을 가지고 있지 않지만 47년간의 재위기간 중 윈스턴 처칠 총리부터 토니 블레어 총리까지 10명의 총리로부터 국정을 소상히 챙겨왔다.
여왕은 요즘도 매주 화요일 오후 버킹엄궁에서 토니 블레어 총리를 만나 국사를 협의한다. 여왕은 또 외국대사의 신임장을 제정하고 하루 도착하는 수백통의 편지중 일부를 골라 직접 읽는다. 또 정부의 각종 보고서와 공식문서 등에 서명하는데 여왕이 서명하는서류의양도엄청나다.
외부일정도 적지 않다. 여왕을 초청하는 각계 각층 인사들의 초청장 중에서 참석할 곳을 면밀히 고른다. 엘리자베스여왕 아동병원 원장과 아동학대예방협회 회장을 맡고 있어 아동문제에 대한 관심이 남다르다.
근래 왕실의 잇따른 스캔들과 사치와 낭비, 다이애나 전 왕세자비의 죽음과 그녀에 대한 왕실의 냉대 등으로 인해 영국 내에서도 군주제에 대한 비판이 일고 있지만 꿋꿋이 품위를 지켜온 여왕은 변함없이 영국민의 존경을 받고 있다.
〈정성희기자〉shchu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