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리訪韓 성과]對北포용 「한계선」 그었다

  • 입력 1999년 3월 9일 19시 38분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이 9일 윌리엄 페리 미 대북정책조정관과 이달말 작성 예정인 ‘페리보고서’ 내용에 대한 협의를 마침으로써 보고서 작성 이전의 한미간 ‘대면(對面)협상’은 모두 끝났다.

양측의 협의내용 중 가장 눈에 띄는 대목은 그동안 한미 양측이 이견을 보여온 이른바 대북‘레드 라인(Red Line)’에 대한 절충이 이뤄졌다는 점이다. ‘레드 라인’이란 북한이 한미 양국의 포용정책을 거부할 경우 어디까지 이를 허용해야 하느냐는 인내의 한계치를 정하는 것.

한국측은 ‘레드 라인’이란 개념자체가 북측을 자극할 수 있고 무엇보다 그것을 보고서에 명시했을 경우 향후 미국의 강경론자들에게 발목이 잡힐 수 있다는 점을 크게 우려해왔다. 반면 보수적인 공화당이 지배하는 미 의회를 설득할 임무를 띠고 있는 페리 조정관은 포괄적 접근방안이 북측의 도전으로 실패했을 경우에 대한 대비책을 포함시켜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김대통령과 홍순영(洪淳瑛) 외교통상부 장관이 이날 페리 조정관과 나눈 핵심대화의 내용도 바로 이 대목이었을 것이다. 협의 결과 양측은 어느 정도 절충안을 마련하기 위한 의견접근을 이룬 것으로 보인다. 홍장관은 “구체적이지는 않으나 보고서에 (대책이) 담길 것”이라며 “그러나 폭격 등의 내용은 절대 담기지 않을 것”이라고 부연, 양측간의 조율이 이뤄졌음을 시사했다.

홍장관의 말을 음미해보면 한국측은 대북 포용정책 실패 때 미국측이 응할 수 있는 ‘경우의 수’를 보고서에 언급하는데 동의한 대신 그 내용을 최대한 모호하게 표현하는 쪽으로 페리 조정관을 설득한 것으로 보인다. 또 ‘전쟁’이나 ‘폭격’ 등 어떠한 구체적 군사제재조치도 포함시켜서는 안된다는데 공감대가 형성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레드 라인’의 핵심인 시간개념의 문제, 즉 언제 압박전술에 돌입할 것이냐는 대목에 대해서도 양측간에 얘기가 오간 것으로 보인다. 정부의 한 고위당국자는 압박전술의 시기와 관련해 “북한이 ‘레드 라인’을 넘겠다고 선언하는 것도 아니고 설령 넘었다고 하더라도 넘었는지 안넘었는지 확인해야 한다”며 “그게 쉬운 일이 아니다”고 말했다.

따라서 정부는 북한이 미사일을 추가 발사했을 경우나 핵개발 활동을 재개했을 경우 등으로 범위를 최대한 한정하려 했을 것이다. 북한이 이처럼 구체적인 행동에 돌입하지 않는 이상 한국도 미국의 군사제재조치를 반대할 수 있는 ‘안전판’을 마련하려 했을 가능성이 높다.

〈윤영찬기자〉yyc1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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