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貨폭락/일본입장]『단호대처』말뿐 돈은 안풀어

  • 입력 1998년 6월 17일 19시 55분


올 4월 9, 10일 일본정부는 달러당 엔화환율이 1백30엔을 넘는 것을 막기 위해 뉴욕과 도쿄(東京)외환시장에 1백억달러를 쏟아부었다.

엔화가치 방어를 위해 달러를 팔고 엔을 사는 이같은 ‘시장개입’ 직후 대장성 관계자는 “탄환은 충분하다. 언제라도 필요하면 쏜다”고 말해 2천3백억달러에 이르는 외환보유액을 무기로 엔화 방어의지를 분명히 했다.

그러나 이달 들어 환율이 1백40엔과 1백45엔을 차례로 넘어서 엔화가치가 폭락하는데도 일본정부는 손을 놓고 있다.

마쓰나가 히카루(松永光)대장상은 연일 “과도한 엔화약세에는 단호히 대처하겠다”고 엄포를 놓고 있지만 돈을 풀어 엔화가치를 지킬 생각은 없는 듯하다.

일본은 왜 팔짱을 끼고 있을까.

자신감의 결여가 첫째 이유로 지적된다. 엔화약세는 불량채권누적 등 일본경제의 구조적 취약성에서 비롯하기 때문에 미국의 협조 없이 일본 혼자 엔화방어에 나서봐야 큰 효과가 없다는 판단이다.

일본은 사상 최대규모인 1백억달러 이상을 투입한 4월의 시장개입 ‘약효’가 나흘밖에 가지 못하고 ‘완패’로 끝나자 큰 충격을 받은 것은 물론 일본의 한계를 절감했다.

일본의 외환보유액이 2천3백억달러나 되지만 엔화방어에 동원할 수 있는 자금은 최대 2백억달러로 추정된다. 이 돈을 쏟아부어도 추락하는 엔화를 얼마나 붙잡을 수 있을지 확신이 없다. 하시모토 류타로(橋本龍太郎)총리가 15일 “일본의 힘만으로는 엔화약세 저지에 한계가 있다”며 국제사회에 협조를 요청한 것도 이때문이다.

미국에 대한 불만도 적지 않다. 엔화가치 하락을 “일본내부의 문제”라며 방관하고 있는 미국의 태도를 일본은 ‘책임 떠넘기기’라고 비판하고 있다.

안하는 측면도 있다. 엔화약세와 아시아 금융불안은 일본 금융기관의 해외불량채권을 늘게 해 부담이 커지지만 제조업계의 수출증가로 불황의 충격을 흡수하는 효과도 크기 때문이다. 내수증대를 위한 구조개혁도 시일이 걸린다며 미적거리고 있다. 미국과 유럽이 일본에 책임을 거듭 주장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도쿄〓권순활특파원〉kwon8890@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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