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 누빈 블레어 英총리-코언 美국방 「상반된 행보」

  • 입력 1998년 4월 22일 19시 46분


중동을 누빈 ‘평화의 사도’와 ‘무기판매 상인’.

최근 비슷한 시기에 중동을 방문한 토니 블레어 영국총리와 윌리엄 코언 미국 국방장관에 대한 국제사회의 이같은 비유가 화제다.

한 사람이 목이 터지게 평화를 외치는 동안 다른 한 사람은 무기를 팔러 다녔다는 것.

17∼21일 중동을 방문한 블레어총리는 이스라엘의 요르단강 서안지구 철수거부로 완전히 등을 돌린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측을 협상테이블에 앉히는 수완을 발휘해 찬사를 받았다. 그는 꺼져가던 중동평화협상의 불씨를 다시 지폈다.

블레어총리의 거중조정에 따라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총리와 야세르 아라파트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수반은 내달 4일 런던에서 매들린 올브라이트 미 국무장관과 각각 별도의 회담을 갖기로 했다. 이 회담은 ‘올브라이트―네타냐후―아라파트의 3자 평화회담’으로 진전될 가능성도 있다.

현재 유럽연합(EU)의장국인 영국총리의 중동 평화협상 재개노력은 미국의 중동평화 노력이 무산된 가운데 이루어진 것이다. 따라서 앞으로 중동문제 해결에 유럽의 역할이 다소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

한편 15∼21일 중동과 그리스를 방문한 윌리엄 코언 미 국방장관은 가는 곳마다 평화적 분쟁 해소를 촉구하면서 뒤로는 첨단무기 지원과 판매에 열을 올려 빈축을 샀다.

그는 터키에서 헬기 50대 구매를 포함한 35억달러 규모의 군현대화사업과 미국의 참여문제를 논의했다. 세계 4위의 탱크전력 보유국인 터키의 M48탱크 교체 문제도 큰 관심사였다.

이어 요르단에서는 가공할 탱크공격력을 갖춘 A10 지상공격기 제공 의사를 밝혔고 이집트에서도 군현대화 지원과 합동군사훈련의 지속을 약속했다.

코언장관은 이어 이스라엘에서는 요격미사일 발사대 성능개선을 위한 연구 지원을 다짐했고 그리스에서도 미제무기 판매문제를 집중 논의했다.

터키와 그리스는 키프로스섬을 놓고 분쟁을 겪고 있으며 이집트 요르단 이스라엘도 중동평화와 관련해 이해가 복잡하게 얽혀있지만 코언장관은 아랑곳하지 않고 세일즈맨의 역할을 확실하게 했다.

이 때문에 그는 “비둘기 목소리에 매의 속내를 보였다”는 비난을 사기도 했다. 강대국들은 전쟁과 평화조차도 마음대로 쥐락펴락 하는가.

〈정성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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