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에서 환율위기를 겪은 것은 한국 태국 인도네시아 멕시코뿐만 아니다. 스웨덴 핀란드 노르웨이 등 선진국들도 90년대초 하루 환율이 최고 10%씩 오르는 극심한 외환위기를 겪었다. 뉴질랜드 영국도 평가절하 위기를 경험했다. 85년도에 달러당 엔화환율이 2백50엔에서 1백50엔대로 떨어지며 미국도 급격한 외환위기를 겪었다. 그러나 이들 모두가 파국적인 신용붕괴, 보유외환 고갈, 지불불능 등을 경험한 것은 아니며 대부분 위기 없이 사태를 수습했다.
이에 비해 한국 인도네시아 태국 등은 경제가 온통 결딴날 듯한 홍역을 치르고 있다. 이들의 위기대응에서 나타난 공통적인 문제점은 무엇인가.
첫째로 정부가 개입해 환율을 억지로 붙들어매려 했다는 점이 지적된다.
멕시코 태국 인도네시아 등은 환율위기전 고정환율제를 채택하고 있었다. 한국은 환율변동폭이 2.5%로 좁았고 지난달 19일 이를 10%로 넓혔지만 여전히 「시장의 기대」를 소화하지 못하고 있다.
큰 폭의 원화절하 기대가 있는데도 경직된 환율제도와 완고한 정부개입 때문에 균형가격이 형성되지 않으면 거래자체가 마비되고 이 과정에서 정부의 보유외환이 고갈돼 국가지불불능의 위기로 몰린다.
한국개발연구원 신인석(辛仁錫)연구원은 『경제전문가들은 환율을 완전히 자유화해 일단 환율이 기대치 이상으로 오르도록 방치한 뒤 서서히 떨어지게 유도하는 오버슈팅(과잉가격형성)을 일관되게 권해왔다』며 『정부가 왜 이같은 권고를 무시했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둘째로 국제통화기금(IMF)과의 약속을 제대로 지키지 않아 신용붕괴를 불러왔다.
태국은 지난8월 IMF와 협정을 맺었지만 넉달후인 지난주에야 IMF에 의해 파산판정을 받은 58개 금융기관중 56개를 폐쇄조치했다. 그나마 지난달 추안 릭파이 정부가 들어서면서 약속이행의지를 천명, 최근에야 상황이 호전됐다.
인도네시아도 개혁조치를 미루어온데다 최근 수하르토 대통령의 건강문제마저 불거져나와 지불불능 직전의 상태에 몰려있다.
한국도 재협상논란 등으로 신인도가 떨어져 곤란을 겪었다.
셋째로 이익집단의 압력과 사회의 불안심리 등에 발목이 잡혀 구조조정이 부진했고 이에 따라 국제투자자들에게 신뢰를 주는데 실패했다.
태국은 유류세 인상을 발표했다가 국민의 반발에 부닥쳐 3일만에 철회했다.
한국도 긴축약속을 어기고 한은이 11조원의 돈을 풀어 부실은행 종금사 기업을 지원해 약속을 지킬 의지가 없다는 비난을 들었다.
이에 비해 서구의 대응은 달랐다.
91년 외환위기를 겪은 핀란드 등 북구 3국의 경우 즉시 매킨지 등 국제컨설팅사의 조언을 받아들여 경제전문가들로 특별대책반(태스크포스)을 구성했으며 정 부 는 「이들의 권고대로 이행하겠다」고 공언하고 실 천 했 다. 개혁계획이 발표되자 국제금융시장에서는 단기채무의 기일연장을 해줬고 1년 안팎에 상황은 정상화됐다.
뉴질랜드는 84년의 금융위기를 정부개혁의 기회로 활용, 재정개혁은 물론 해외대사관 건물까지 팔아치우는 과감한 조직축소를 통해 국가신용을 회복했다.
〈허승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