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국극복 지도자/고르바초프]개혁 주창 공산독재 종식

  • 입력 1997년 12월 11일 19시 59분


1985년 5월17일 오후 7시 텔레비전 뉴스를 보고 있던 2억5천만명의 구소련인들은 깜짝 놀랐다. 『우리는 변해야 합니다. 내일을 살아야 합니다. 이를 위해 여러분도 국가도 재건설(페레스트로이카〓개혁)돼야 합니다』 시민들은 최고 권력자인 당서기장이 시장바닥에 나타나 민초들과 격의없이 대화를 나누는데 놀랐고 이어 그가 쏟아내는 말이 예전에는 감히 상상조차 할 수없던 내용이라는데 두려움까지 느끼며 전율했다. 고르바초프는 글라스노스트(개방)와 신사고정책을 천명하면서 개혁의 방향을 분명히 했다. 『페레스트로이카는 거창한게 아니었다. 배를 굶주려야하는 농민, 처자식에게 집하나 마련해주지 못하는 노동자, 2천여만명의 시민이 스탈린에게 죽어갔지만 사회주의건설을 위해 불가피했다고 생각하는 시민들을 위해 페레스트로이카는 필요했다. 그 것은 시대의 요청이었고 나의 신념이었다』(97년9월26일) 그가 등장하면서 현란하게 펼친 페레스트로이카 글라스노스트 신사고의 3대 기조는 구소련은 물론 1억4천만명의 동유럽인을 70여년에 걸친 공산독재의 질곡과 족쇄에서 단숨에 풀어줬다. 85년 3월 그가 서기장을 맡을 당시 소련은 곪을 대로 곪아있었다. 2만4천여개에 달하는 공장이 문을 닫기 직전이었다. 4천여만명의 근로자들이 당시 최저 생계비 80루블 이하로 생계를 꾸려갔다. 1천여만명이 알코올 중독에 빠졌고 심지어 우즈베크에서는 연 1백50여명의 부녀자들이 생활고와 경직된 사회체제에 실망해 분신자살하고 있었다. 아프가니스탄내전 개입은 국가를 수렁속으로 몰고 갔다. 소련제국은 내부에서부터 붕괴돼가고 있었던 것이다. 고르바초프는 위기 타개의 우선책으로 동맹국에 대한 짐 정리에 나섰다. 『세계사회주의 건설은 이상임이 증명됐다. 각 국가는 주권을 갖고 독자적인 외교정책을 수행해야 한다』며 바르샤바조약기구 회원국들에 대한 무력사용 포기를 전격적으로 선언, 동구민주화의 물꼬를 터줬다. 베를린장벽이 붕괴되던날 밤 당내 강경보수파들이 군대 동원을 요구했을때 『역사의 흐름을 무시하지 말라』며 묵살했다. 당연히 소련제국의 종이호랑이로의 전락을 비판하는 기득권층의 반발은 거셌다. 당 최고지도자로서 위치도 위협을 받았다. 집권 2년만인 87년 9월 쿠데타움직임이 있었을 때 그는 재빨리 국가보안기관을 장악, 가까스로 위기를 모면했다. 완고한 당내 보수파들을 달래고 설득하느라 그는 페레스트로이카를 뒤로 물렸다 다시 전진시켜야하는 소모전을 계속해야 했다. 『외로웠다. 항상 고향으로 돌아갈 준비를 했다. 그러나 마지막까지 일을 해야한다고 다짐했다. 현재가 아닌 역사가 평가해줄 것이기 때문에』(92년 타임지와 회견에서)그는 이를 극복하기 위해 「밑으로부터」의 개혁을 택했다. 시장과 공장을 찾아다니며 스스로 페레스트로이카를 전도했다. 『개혁은 하늘로부터 받은 선물이 아니다. 어디서부터 주어지는 것을 기다릴 것이 아니라 국민 스스로 찾지 않으면 안된다』며 호소했다. 경직된 당지도자들을 1대1 방식의 TV토론회에 불러내 사정없이 비판, 당은 완벽하다는 신화를 여지없이 깨뜨렸다. 반신반의하던 신문과 잡지들이 비로소 제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고 시민들도 비로소 자유가 무엇인지 느끼기 시작했다. 그러나 집권 6년이라는 짧은 기간에 일시에 추진하려던 그의 개혁은 물가인상 실업률증가 정치적혼란 등을 야기했고 급기야 시민들은 그에 대한 기대와 희망에서 실망과 분노로 변해갔다. 91년 여름에 발생한 쿠데타는 그의 정치적 위상에 결정타를 가했다. 쿠데타는 시민들의 저항으로 실패했고 살아 돌아온 그는 쿠데타에 가담한 공산당을 해체시켰다. 공산당 지배 74년의 역사가 끝나면서 소련제국도 붕괴의 길로 들어섰다. 물론 그 자신도 권력에서 완전히 밀려났다. 러시아가 이 정도로 안정적인 운항을 하고 있는 것도 고르바초프의 작품임을 부인할 수 없다. 『그는 우리에게 자유라는 소중한 열매를 주었으며 이로인해 우리 사회는 새로운 전진을 하게됐다. 이런 의미에서 그는 참으로 용기있는 지도자였고 20세기의 가장 뚜렷한 업적을 남긴 인물이었다』(드미트리 볼코고노프 전 육군대장) ―끝―〈모스크바〓반병희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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