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기말―변화하는 시대에서의 문학」이라는 화두를 놓고 한국과 일본의 문인 50여명이 머리를 맞댔다. 3일부터 나흘간 천년고도 경주에서 열린 「제4차 한일문학 심포지엄」(문학과 지성사 주관, 우경문화재단 한일문화교류기금 후원).
이번 심포지엄에서는 한국측에서 시인 이성복 하재봉, 소설가 김원우씨가, 일본측에서 비평가 가라타니 고진(柄谷行人), 소설가 시마다 마사히코(島田雅彦), 극작가 오시로 다쓰히로(大城立裕)가 나서 「언어변화와 문학」 「윤리변화와 문학」 「미디어변화와 문학」을 주제로 발표했다.
제2주제인 윤리문제에 관해 한국측에서는 진화하는 성의식을 어떻게 소설로 표현해낼 것인지에 관심을 보였다. 반면 옴진리교사건 고베초등학생살인사건 등 일본의 모순과 진통을 지켜본 일본측 참가자들은 「살인이 왜 나쁜가」라는 반성적 사유조차 잃어버린 일본의 윤리상황에서 과연 문학이 무엇에 이바지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한 고민을 토로했다.
한국측 참가자들이 문학의 새로운 현장으로 떠오른 사이버공간에 깊은 관심을 나타낸 것도 특징이다.》
▼김영하〓90년대 한국문학은 80년대 한국문학을 지배했던 이념지향에서 벗어났고 성문제나 가족 등에 관해 터부를 깨려는 작가들도 늘어났습니다. 창작방법에서도 리얼리즘을 금과옥조로 여기지않고 있죠. 「신세대문학」 「새로운 문학」 등의 얘기가 나오고 있지만 정확한 자리매김은 아직 되지 않고 있습니다. 그 와중에 선배작가들은 젊은 작가들의 작품을 이해할 수 없다, 리얼리티가 부족하다며 비판합니다. 일본에서도 젊은 문인들이 처한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은 것으로 아는데요.
시마다
▼마사히코〓비슷합니다. 하지만 저는 선배작가들로부터 압력을 받는다는 것은 비판도 없이 무시당하는 것보다는 낫다고 생각해요. 특히 『현실과 괴리돼 있다』는 지적은 매우 본질적인 문제를 짚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귀기울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방법론의 문제든, 아니면 정말로 완전히 현실과 유리된 것이든 말입니다.
▼김〓하지만 지금 선배들과의 단절감은 작법이나 리얼리즘의 인식문제를 넘어서는 것 같습니다. 한 예로 제 또래 작가들은 영화나 컴퓨터게임이 충분히 현실적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소설 속에 등장시키지만 선배들은 자신들의 체험이 아니라는 이유로 이것을 거부합니다.
▼시마다〓일본의 경우도 제 또래는 TV와 함께 자란 세대지요. 자신이 직접 체험하지 않았더라도 TV를 통해 체험한 것을 공통의 경험으로 인정합니다. 자기 몸으로 경험하지 못한 것은 리얼리티가 아니라는 선배들의 생각에 동의할 수가 없어요. 2차대전에 대한 기억이나 향수에는 리얼리티가 있고 TV프로그램에 대한 기억에는 리얼리티가 없다는 주장에는 찬성하지 않습니다.
▼김〓요즘 한국의 제 또래 작가들은 선배들의 작품보다 외국 작가들의 것을 보며 세계관이나 창작방법에 더 많은 영향을 받는 사람이 적지 않습니다.
▼시마다〓오늘날 자기나라 문학에서만 자극을 받는다는 작가는 찾을 수 없게 된 것 아닙니까. 문학의 보편성에 관해 생각해 봐야 할 것입니다. 국가나 민족 언어를 초월하는 보편성을 추구하는 것이 우리 문학인들의 과제이지요.
▼김〓「베르테르의 슬픔」을 읽고 권총자살을 모방했던 옛 이야기는 이제 신화가 된 것이 아닐까요. 소설이 과거에 가졌던 광휘는 사라지고 점점 왜소해져간다는 고민이 한국작가들에게 있습니다. 문학의 미래를 어떻게 전망하나요.
▼시마다〓만화 TV드라마 영화가 소설보다 더 인간의 감성을 잘 표현할 수 있는 경우도 있지요. 예를 들어 컴퓨터게임같은 것에는 사람이 직접 참여하면서 쾌감을 느끼잖아요. 이런 상대적 열세를 감안할때 더 빨리 생명력을 잃게 될 것은 피상적인 내용의 대중소설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소설들이 줄 수 있는 쾌감은 컴퓨터게임이나 영화같은 것이 금방 더 고급스러운 형태로 대체할 수 있을 테니까요. 반대로 우리가 흔히 『대중성이 없다』 『재미없다』고 평가하는 소설들은 더 오래 남을 겁니다. 물론 많이 팔리지는 않겠지만 다른 어떤 뉴미디어도 대체할 수 없는 방식으로 인간 내면 깊숙한 곳의 욕망을 드러낸다는 점이 그 효용가치를 인정받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문학은 21세기에도 살아남을 겁니다.
▼김〓인터넷 때문에 영어가 전세계 표준어로 되고 각 민족어는 말살되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이 있습니다. 우리문화가 원격조종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것이라 할 수 있는데 이런 세계적 추세에서 일본어로 문학을 한다는 데 대해 좌절감을 느껴본 적은 없습니까.
▼시마다〓좌절해 본 적은 없습니다. 번역이 되면 뉘앙스가 잘 전달되지 않을 위험성도 물론 있지만 내 나라 말을 함께 쓰는 독자나 평론가에게서도 작품이 엉뚱하게 읽히는 경우를 왕왕 보지 않습니까. 다만 인터넷이 세계를 하나로 연결해 줄 거라는 환상에 대해서는 반대합니다. 문자를 재현해주는 인터넷코드는 대단히 불완전하고 특히 한자어권에는 더 불리하다고 봅니다. 한국도 그렇다지만 일본의 고문자들은 컴퓨터화면에 잘 재현되지 않는 것들이 많아요. 무조건 인터넷에 맞추어 표준화시키려다 보니 우리가 가진 문화에 손상이 오는 거지요. 저는 이런 점에서 인터넷의 표준화에 맞추어 모든 문화가 정리되면 그것이 인류에게 보편적으로 공유될 수 있다는 전망에 대해 장밋빛 꿈일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또 이런 불안정성 때문에 문자는 고유한 방식, 즉 인쇄된 책의 형태 같은 것으로 살아남으리라고 봅니다.
〈경주〓정은령기자〉
▼ 김영하 ▼
·95년 「리뷰」로 등단
·96년 장편「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 발표
·“신이 없는 시대, 신이 되려고 하는 자는 창작을 하거나 살인을 해야한다”며 파격적 소설쓰기 선언.
▼ 시마다 마사히코 ▼
·90년 「부드러운 좌익을 위한 戱遊曲」으로 등단,
「새로운 문학적 種의 출현」이라는 평가 받음.
·“조상의 존재 따위는 모두 SF로 만들어버리고 싶다”며 새로운 문학 지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