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統獨7년 빛과 그림자]『얻은건 실업뿐』시름깊은 舊동독

  • 입력 1997년 9월 30일 20시 06분


《3일은 독일이 역사적인 통일을 이룬지 만 7년이 되는 날이다. 그러나 베를린 장벽 붕괴의 감동과 환호가 가라앉기도 전 독일은 갑작스러운 통일에 따른 엄청난 고통과 대가를 치러야 했다. 통일 7주년을 맞아 혹독한 자본주의 수업을 받고 있는 동독인의 현주소, 동서독간의 심리적 거리감 및 그런 과정에서도 점차 새로운 실체를 찾아가고 있는 통일독일의 모습을 3회에 걸쳐 소개한다.》 독일 베를린 중심가에서 택시를 타고 동쪽으로 30여분 달리면 구동독 번영의 상징이었던 오버쇠네바이데공단이 나타난다. 이 곳에서 동쪽으로 다시 40분 가량 달리면 폴란드 국경 못미처 작은 전원도시 볼트스도르프와 마주친다. 농부들이 국도변에 나와 집에서 재배한 감자와 야채 등을 땅바닥에 놓고 팔고 있다. 촌로인 우테 슈프랑어(63·여)는 『금요일과 주말에 좌판 행상을 한다. 하루에 2백마르크어치를 팔면 좋은 날이다. 아들이 실직하는 바람에 가계에 도움이 될까 해서 시작했다』고 말했다. 구동독지역의 최대 난제는 실업. 오버쇠네바이데공단은 전자회사인 AEG 주도로 1901년 설립된 베를린의 공업중심지였다. 근로자 수가 한때 7만명에 달했으나 지금은 4천명으로 줄었다. 20여만평 크기의 이 공단에는 이제 중소기업을 포함, 10개도 안되는 공장만이 가동되고 있다. 깨진 유리창과 굳게 닫힌 철문, 어둠침침한 색깔의 공장 건물이 폐허를 방불케 했다. 통일후 동독기업을 인수한 회사들은 우선 불필요한 근로자를 대량 해고했다. 정부는 고용창출제도(ABM)를 통해 해고 근로자를 청소 건축현장 등의 단순 노무직에 투입했다. 30, 40대 근로자들은 이를 수용했으나 50대 이상은 대부분 일자리를 포기하고 정부가 주는 실업수당과 보조금으로 생활하고 있다. 통일후 독일의 실업자는 전후 최대인 4백47만여명으로 실업률은 11.7%. 그러나 동독지역은 실업률이 18.1%로 서독지역의 10.2%에 비하면 엄청나게 높다. 독일정부는 통독후 동독지역 경제 재건에 연평균 1천6백억마르크(80조원)를 쏟아부었다. 작년까지 투자한 금액은 국내총생산(GDP)의 5% 수준인 1조1천7백억마르크나 된다. 그 덕에 사회간접시설도 확충됐고 임금도 상승했다. 그러나 급속한 통일과정에서 불가피하게 나타난 경제기반의 붕괴가 가장 심각한 후유증이 되어있다. 통일후유증의 모든 주름은 바로 여기에서 시작된다. 오스텐트 거리에 사는 얀 슈나이더(37)는 『실업보조금과 아내의 봉급, 정부의 자녀양육비로 생활하고 있다』면서 『7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방황하는 친구들이 많다. 이념과 체제가 다른 곳에 적응하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를 젊은 내가 실감하고 있다』고 말했다. 동독 근로자의 임금은 이제 서독의 89%에 달한다. 그러나 노동생산성은 서독의 55% 수준에 불과하다. 사회주의에 익숙해 있던 동독인들이 자본주의에 적응하는 과정은 쉽지 않다. 요하임 펠트만(55)은 『시장 가는 것이 겁난다. 비슷한 것이 많은데 내가 선택하면 책임을 져야 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독일은 동독 재건을 위해 계속 돈을 쏟아부어야할 처지다. 초기에는 주로 공채를 발행했으나 지금은 유럽단일통화 가입조건 충족을 위해 함부로 기채를 할 수 없는 입장이다. 연방정부는 동독지역에 공공재원을 계속 투입해야할 입장이다. 하지만 서독지역 주민들은 「밑빠진 독에 물붓기」격인 대동독 지원정책에 더이상의 「고통 분담」을 외면하고 있다. 〈본〓김상철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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