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치훈-고바야시, 「라이벌 30년」 불꽃승부

  • 입력 1997년 9월 13일 18시 22분


「한국의 투혼」과 「일본의 자존심」이 다시 만났다. 조치훈(趙治勳)9단과 고바야시 고이치(小林光一)9단. 코흘리개 시절 같은 스승 밑에서 바둑에 입문, 30여년간 한치의 양보없이 경쟁해온 그들이 「마흔 바둑인생」을 걸고 맞붙었다. 94년 기세이(棋聖)전 대결 이후 3년만이다. 대결장은 메이저 타이틀인 메이진(名人)전. 객관적인 예상은 조9단의 우세다. 그러나 고바야시9단은 12일 새벽 미국 뉴욕에서 끝난 1국에서 흑을 쥐고 불계승을 거둬 이같은 예상을 뒤집었다. 객관적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특유의 라이벌 의식이 그들 사이에 작용하고 승패도 쉽게 가늠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줬다. 조9단은 지난해 기세이, 혼인보(本因坊)에 이어 메이진을 따내 절정기를 맞고 있다. 일본 바둑 현대사에서 대삼관은 조9단만의 차지였다. 그는 83년에도 첫 대삼관을 기록했다. 조9단의 바둑은 마흔을 넘기며 원숙의 경지에 올라서 있다. 웬만한 위기에도 끄떡하지 않는 육중한 무게를 갖고 있다는 평. 도전자인 고바야시9단도 질세라 상승세를 타고 있다. 그동안의 침체를 벗고 올해들어 화려하게 재기하고 있다. 지난달 열린 후지쓰(富士通)배에서 중국세를 잠재우며 생애 처음으로 국제대회에서 우승, 저력을 과시했다. 이어 벌어진 류세이(龍星)배를 「덤」처럼 가볍게 따낸 그는 지난해 무관(無冠)에서 금년들어 2관왕으로 머리를 높이 들었다. 이제 남은 것은 정상 복귀다. 두 기사의 경쟁은 30년 넘게 계속됐다. 기타니(木谷實)9단 문하에 입문한 것은 조9단이 3년 먼저. 그러나 프로입단은 고바야시가 1년 앞섰다. 첫 타이틀 획득은 다시 조치훈의 몫. 메이저 타이틀(메이진)도 먼저 따냈다. 그러나 83년 사상 첫 대삼관을 이룬 조치훈은 불의의 교통사고로 인해 일본 바둑천하를 고스란히 고바야시9단에게 넘겼다. 두 기사는 지금까지 16개의 타이틀전에서 맞붙었다. 결과는 9대7로 조9단이 약간 우세하다. 이번 메이진전은 17번째 대결인 셈. 자존심도 막상막하다. 조9단은 한국 국적을 굳게 지키고 있을 뿐 아니라 일본인 부인의 이름도 한국식으로 바꿨다. 고바야시9단은 한국과 중국에서 개최되는 웬만한 국제대회에는 「본선 초청장」을 받지 않으면 참가하지 않는 고집으로도 유명하다. 도전 2국은 24, 25일 이틀간 일본 고후(甲府)시에서 벌어지며 11월13일까지 모두 7번기가 열린다. 〈최수묵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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