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루, 인질사태 『진퇴양난』

  • 입력 1996년 12월 23일 21시 00분


「리마〓李圭敏특파원」 인질 2백25명이 22일 밤(현지시간) 추가로 풀려나긴 했지만 페루정부는 정책선택상 여전히 딜레마에 빠져 있다. 테러재발을 방지하려면 단호한 대처가 필요하지만 일본의 입장과 페루국민의 여론은 그 반대이기 때문이다. 후지모리 대통령이 21일 밤 대국민담화문을 통해 인질범들이 정부방침에 따를 경우 무력사용을 하지 않겠다고 말한 것은 뒤집어 이야기하면 항복하지 않을 경우 무력진압을 하겠다는 것을 의미한다. 테러범들과 협상을 하지 않겠다는 것은 미국 등 서방국의 요구를 받아들인 페루정부의 기본 입장이다. 그러나 일본정부는 이 사건이 자국 대사관저에서 일어난데다 인명피해까지 발생하면 국제적인 책임문제가 뒤따른다는 점에서 페루정부의 입장에 지속적으로 반발하고 있다. 특히 일본은 페루에 올 한햇동안만 6억달러에 달하는 무상원조를 하는 등 페루정부로서는 그들의 요구를 가볍게 볼 수 없는 입장. 후지모리 대통령을 더욱 난처하게 하는 것은 국내 여론이다. 대통령 담화가 나간 후 22일 밤 한 국내 방송이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90%이상의 응답자가 무력사용에 반대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날 응답자들은 생방송을 통한 전화인터뷰에서 무력사용은 또 다른 테러를 일으킨다고 주장하면서 정부를 비난했으며 불과 10% 미만의 사람들이 이 기회에 테러범들에 대한 국민의 의지를 보여주자고 주장했을 뿐이다. 리마 시내 곳곳에는 「테러도 싫지만 무력진압도 안된다」는 내용의 낙서들이 많이 나붙었다. 테러범들이 22일 정부와 직접 관계없는 인질 등을 대량 석방한 것도 다른 시각에서 보면 페루정부에 또 다른 부담이 될 수 있다. 말하자면 테러범들은 페루정부와의 협상을 위해 필요한 소수의 인질만을 확보하고 있어도 된다는 판단아래 「인질 털어내기」를 한 것이다. 테러범들이 정부와의 힘겨루기에서 밀리는 양상이 역력한데다 당초 예상한 것 만큼 잔인한 행동을 하지 않고 있는 점으로 보아 시간이 지나면 사태가 쉽게 풀릴 수도 있다. 따라서 앞으로 2,3일간의 상황변화가 페루정부의 어려운 입장이 정리될 수 있을지를 가늠해주는 시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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