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조종엽]6·25 전선에 섰던 일본인… 어떻게 기억해야 할까

  • 동아일보

조종엽 문화부 차장
조종엽 문화부 차장
6·25전쟁 참전국은 공식적으로 모두 22개국이다. 물론 일본은 아니다.

한데 17일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가 개최한 6·25전쟁 제76주년 학술 세미나에선 다소 도발적인 주장이 나왔다. 일부 ‘참전 일본인’을 ‘참전 용사’나 ‘참전 영웅’으로 부를 수 있어야 한다는 것. 현직 교사인 박용준 씨(한국교원대 대학원)는 이날 발표에서 “‘참전국’이라는 틀은 전투부대 파병국과 정규군을 중심에 두는 탓에 실제 참전 양상을 적절히 반영하지 못한다”며 이같이 주장했다.

6·25전쟁 당시 일본이 물자 지원 외에 기뢰 제거와 군수 등 분야에서 활동했다는 사실은 1970년대 이후 당사자 증언 등을 통해 어느 정도 드러나 있다.

1950년 9월 인천상륙작전에 성공한 유엔군은 북한군을 추격하기 위해 원산에도 상륙하고자 했지만 기뢰 3000여 발에 가로막혔다. 기뢰 제거(소해)에 동원된 게 일본 해상보안청의 소해정 46척과 1200명이다. 작전 중 기뢰에 접촉하며 배가 침몰해 나카타니 사카타로(당시 21세)가 숨지고 중경상자 18명이 나오기도 했다. 이들이 기뢰를 제거한 통로를 따라 미군 제10군단이 원산에 상륙했다.

이날 발표에 따르면 롯폰기의 미군 기지에 페인트공으로 취업했다가 사실상 전투원으로 참전해 1950년 9월 4일 가산 전투에서 전사한 히라쓰카 시게하루도 있다. 이처럼 6·25에 참전한 것으로 확인되는 일본인 개인이 대략 40명 정도로 파악된다고 한다. ‘일본이 6·25전쟁 특수를 타고 고도성장의 발판을 마련했다’고만 알고 있는 우리에겐 낯선 이야기다.

발표자는 “참전 일본인들은 미일 양국 정부에 의해 존재가 은폐, 부정됐다”며 “이들을 ‘비정규군 공로자’로서 공적 기억의 장에서 기념하는 방안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물론 이 주장엔 허점이 있다. 당시 일본은 연합군 최고사령부가 통치했으며, 주권 국가가 아니었다. 그들은 ‘동원’됐다는 뜻이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알다시피 6·25전쟁의 원인은 분단이고, 분단의 기원은 일제의 강점이라는 데 있다. 군정을 벗어난 일본은 전쟁 막바지이던 1953년 여러 차례 관용선을 보내 독도에 상륙했고, ‘다케시마’ 표지판을 설치하는 등 침탈하기도 했다. 이날 토론자로 나선 박성진 한국학중앙연구원 책임연구원은 “소해정에 탄 이들은 일본 제국군 출신으로 식민지 조선인을 억압한 군사력의 일부”라며 “그들을 보훈 서사에 편입시키는 것은 식민지 피해국이 가해국 군사 체제 참여자를 ‘영웅’으로 호명하는 역설을 만들어낸다”고 지적했다.

이런 ‘두 얼굴의 일본’은 이웃한 국가로서 좋건 나쁘건 그들과 긴밀하게 얽힐 수밖에 없는 것이 우리의 숙명이라는 걸 보여준다. 일본 NHK 다큐멘터리를 바탕으로 쓰인 책 ‘한국전쟁에서 싸운 일본인’(후지와라 가즈키 지음·소명출판)엔 태평양전쟁 당시 고아가 된 후 미군 일자리를 지키려다가 19세의 나이로 장진호 전투까지 겪은 다카쓰 겐조를 비롯해 다양한 개인의 서사가 담겼다. 야스쿠니 신사의 한국인 합사 문제를 비롯해 일본의 과거사 왜곡이 여전한 가운데 ‘우리 정부 차원의 참전 일본인 기념’ 같은 건 얼토당토않은 이야기로 들린다. 그러나 전쟁의 격랑에 휩쓸린 힘없는 이들의 이야기라면, 어디에선가 기억돼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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