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불에 강한 ‘활엽수’ 심어 숲 체질 바꾼다

  • 동아일보
  • 입력 2026년 4월 2일 20시 44분



“숲의 ‘체질’을 바꾸는 중입니다. 침엽수인 낙엽송, 오래된 참나무가 나간 자리에 활엽수를 심고 있어요.”

1일 세종시 장군면 용암리 국유림 산림청 조림 현장에서 만난 이태호 하나국유림영 단장은 상수리나무 묘목을 들고 이같이 말했다. 상수리나무는 수분이 많고 껍질이 두꺼워 불에 잘 견디는 수종으로 꼽힌다. 그는 “옛날에는 민둥산을 덮기 위해 나무를 많이 심는 게 중요했는데, 이제는 ‘잘’ 심는 게 중요해졌다”며 “불에 강하고 탄소흡수율 좋은 활엽수를 새롭게 심고 있다”고 말했다.

산림청은 숲의 경제성과 공익성을 높이기 위한 조림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과밀한 숲도아낸다. 국내 숲 ha(헥타르)당 나무 수는 1129그루. 독일 핀란드 등 유럽(600그루)2배로, 밀도를 낮춰 산불 피해를 줄이고 나무 생장을 유도하기 위해서다.

숲의 고령화배경이다. 산림청 관계자는 숲의 81%가 30세 이상으로 고령화됐다. 수령이 오르면 성장이 둔해지고 고사목이 늘어난다”고 설명했다. 특히 침엽수 단일림이 38.8%에 달해 이를 솎아낸 뒤 활엽수를 심는 작업도 진행 중이다.

이를 통해 산림청은 2023년 148조 원이었던 산림산업 연매출액을 2037년까지 210조 원 이상으로 끌어올린다는 계획이다. 숲과 함께 미래를 준비하는 ‘그린넥스트’를 위한 움직임이다.

소나무 대신 상수리나무…산불 늦게 번지고 탄소 흡수량 2배
1일 오후 세종시 장군면 용암리 산98번지 국유림에서는 조림 사업이 한창이었다. 12ha 규모의 국유림 일대에서 침엽수인 낙엽송과 노령 활엽수 1만7135그루를 베어내고, 그 자리에 참나무과에 속하는 상수리나무 1만7700그루, 백합나무 1만8300그루 등 총 3만6000그루의 활엽수 묘목을 심는 작업이었다. 국유림영림단 작업자 8명은 곡괭이로 땅을 파며 묘목을 심느라 구슬땀을 흘렸다. 23년째 조림 사업에 참여하고 있는 김영환 씨(76)는 “하루에 한 사람당 묘목 150그루 정도를 심는다”며 “어린 나무들이 자라 울창해지면 산불에 강한 숲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 국내 숲 38.8% ‘잘 타는’ 침엽수 단일림

6·25 전쟁 직후 황폐했던 우리나라의 산림은 정부 주도의 조림 사업으로 빠르게 복구됐다. 1973년 1차 치산녹화 사업 당시 1ha당 임목축적(나무들의 총 부피)은 11.3㎥였지만, 2024년에는 180.56㎥로 51년 만에 16배 가까이 늘었다. 민관 협력으로 산림을 단기간에 되살린 성과는 국제적으로도 인정받았다. 정책 문서와 사업 기록, 주민 참여 자료, 사진 등 산림녹화 관련 기록물이 2023년 5월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됐다.

문제는 빠른 조림에 집중하다보니 그간 심었던 나무들이 우리 토양에 잘 맞는 침엽수 위주로 편중됐다는 점이다. 2025년 산림임업통계연보에 따르면 국내 산림의 38.8%가 단일 침엽수림이다. 침엽수와 활엽수가 섞인 혼합숲(27.8%)까지 고려하면 침엽수 비중은 절반을 웃돈다.

문제는 최근 들어 기후 변화로 산불은 잦아지고, 규모도 커지고 있다는 점이다. 소나무 등 침엽수는 송진을 많이 함유해 불이 잘 붙는다. 최근 5년(2021~2025년) 동안 산불 2439건이 발생해 서울 면적의 2배에 달하는 13만5786ha가 소실됐고, 32명이 숨졌다. 이전 5년과 비교하면 피해 면적은 15배, 사망자는 6배 늘었다.

산불은 자원 손실을 넘어 기후위기를 악화시킨다. 산림청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산불로 소실된 산림 면적은 10만 5099ha에 달한다. 한 해 국내서 목재 자원으로 활용하는 나무가 2만ha 규모인 걸 감안하면 약 5년간 다양한 제품과 자원으로 활용할 수 있는 나무가 단 1년 새 사라진 셈이다.

또 지난해 3월 경북·경남·울산 일원에서 발생한 초대형 산불로 약 764만t의 온실가스가 배출됐다. 중형차 약 7175만 대가 서울과 부산을 왕복할 때 배출하는 양에 해당한다. 엄태원 숲복원생태연구소장 “그동안 국내 산림이 ‘체격’을 키우는 데 집중했다면 이제 ‘체질’도 고려해야 한다”며 “특히 매년 반복되고 커지는 산불에 대응하기 위해선 산불에 잘 견디는 수종과 구조로 숲을 바꿔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산림청도 숲의 체질 개선에 나섰다. 새로 나무를 심을 때 침엽수보다 불에 잘 견디는 활엽수를 늘려가고 있는 것. 활엽수는 잎과 줄기에 수분이 많아 불이 번지는 속도가 상대적으로 느리고, 불이 나무 꼭대기를 따라 번지는 ‘수관화’도 억제하는 효과가 있다. 실제 산림과학원 연구에서는 활엽수 중심으로 불에 잘 견디도록 조성된 내화수림 지역의 산불 확산 속도가 약 40% 느려지고 피해 면적도 20.1%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탄소 흡수 능력도 활엽수가 앞선다. 상수리나무(20년생) 1ha는 연간 15.9t의 이산화탄소를 흡수해 승용차 6.6대의 연간 배출량을 상쇄한다. 반면 같은 조건의 소나무는 6.9t 수준이다. 용암리 국유림에 식재 중인 상수리나무와 백합나무는 내화성이 높은 대표 수종이자, 꿀벌의 먹이가 되는 꽃을 제공하는 ‘밀원수’로 벌꿀 생산에도 기여하고, 목재·펄프 자원으로 활용되는 경제림 수종이기도 하다.

● 나무 ‘세대 교체’ 필요

나무의 ‘세대 교체’도 진행 중이다. 국내 숲은 고령화가 진행돼 생장이 둔화된 나무가 많다. 국립산림과학원에 따르면 침엽수 6개 수종과 활엽수 4개 수종의 단위 면적당 연간 평균 순생장량은 35년생은 ha당 5.3㎥지만, 65년생은 4.3㎥ 수준으로 나타났다. 나무의 나이가 오래될 수록 자라는 속도다 더뎌진다는 의미다.

이처럼 생장이 둔화된 나무는 고사하거나 부패해 산불에 더 취약해진다. 산림청 관계자는 “이런 나무들이 숲을 빽빽하게 채우면서 밀도가 높아지고, 불이 한 번 붙으면 빠르게 확산되는 구조가 만들어진다”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산림 당국도 조림 정책을 ‘많이 심는 방식’에서 ‘필요한 나무를 심는 방식’으로 전환하고 있다. 조림 사업에서 침엽수 비율은 2021년 61.3%에서 58.8%로 낮아졌고, 그만큼 활엽수 비중은 확대됐다.

전문가들은 수종 다양화가 재난 대응뿐 아니라 자원 활용 측면에서도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2024년 기준 국내 목재 이용량은 2641만㎥지만, 국산 목재는 518만㎥에 그쳐 자급률은 19.6% 수준이다. 배재수 서울대 산림과학부 교수는 “용도에 맞는 수종을 계획적으로 관리해야 한다”며 “재난 대응과 자원 활용을 동시에 고려한 산림 관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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