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의 칼럼]고품질 의료 데이터, 국가 주도 통합해야 韓 ‘새 먹거리’ 된다

  • 동아일보

강병주 인드림헬스케어 대표·전 제주대병원 류마티스내과 교수

강병주 인드림헬스케어 대표·전 제주대병원 류마티스내과 교수
강병주 인드림헬스케어 대표·전 제주대병원 류마티스내과 교수
한국을 흔히 ‘자원이 없는 나라’라고 부른다. 그러나 이제 한국은 어떤 천연자원보다도 값진 새로운 자산을 손에 쥐게 됐다. 바로 고품질 의료 데이터다. 인공지능(AI) 시대에 데이터 질은 곧 경쟁력이다. 의학과 AI 개발 모두에서 통용되는 ‘쓰레기를 넣으면 쓰레기가 나온다(Garbage in, garbage out)’라는 말은 왜 의료 데이터를 국가 전략 자산으로 다뤄야 하는지를 잘 보여준다.

한국은 미국 유럽과 견줘도 뒤지지 않는 의료 데이터를 보유하고 있다. 역설적으로 과거의 고효율·다량 진료 중심 의료 시스템이 이 자산을 만들어 냈다. 오랜 기간 우수한 인재들이 의료계로 유입됐고, 이들은 서구 의사들보다 몇 배 많은 환자를 진료하며 수술, 영상·병리 판독, 진료 기록을 방대하게 축적했다. 대형 병원 환자 집중 현상은 문제점도 있지만, 교수진의 숙련도와 경험을 세계 최고 수준에 오르게 했다. 해외에서는 희귀질환으로 분류되는 사례조차 국내 대학병원에는 상당량의 데이터로 쌓여 있다.

이 자산을 국가 경쟁력으로 만들려면 ‘국가 주도 데이터센터’가 필요하다. ‘빅5’ 대형 병원과 주요 대학병원의 진료 기록, 혈액검사, 영상·병리 결과, 유전체 정보, 나아가 진행 중인 100만 유전체 사업까지 통합된다면, 이는 의학·산업 양 측면에서 대체 불가능한 국가 인프라가 될 것이다. 각 병원의 전자의무기록(EMR)을 하나로 묶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지만, 통합 자체가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이미 많은 병원에서 구축 중인 임상데이터웨어하우스(CDW)처럼 혈액검사, 영상·병리 결과 등 구조화가 쉬운 데이터부터 단계적으로 연계해 나가면 된다.

이를 위해서는 건강보험공단의 데이터 처리 경험이 중요하다. 공단은 이미 주민등록번호를 기반으로 정보를 통합한 뒤 비식별 처리해 연구용으로 제공해 왔다. 같은 방식으로 병원 간 데이터를 통합·비식별화한다면, 현행 법 체계 안에서도 연구·산업 목적으로 충분히 활용할 수 있다. 무엇보다 데이터 주도권은 개별 병원이 아니라 국가가 가져야 한다. 본질적으로 의료 정보 권한은 환자에게 있으며, 이를 국가가 투명한 원칙 아래 모으고, 운영할 때 그 이익이 다시 국민에게 돌아갈 수 있다.

대한민국은 반도체로 한 세대의 번영을 이끌었다. 고품질 의료 데이터는 중국과 미국을 앞서는 ‘제2의 반도체’가 될 잠재력을 지니고 있다. 국가가 책임 있게 의료 데이터를 통합·관리하고, 이를 연구와 산업에 안전하게 개방·활용한다면 의료 데이터는 기록을 넘어 한국의 다음 30년을 이끌 전략산업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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