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샌디에이고 특별전 맛보기] 〈3〉 프란시스코 데 고야
움츠린 오른손-살짝 벌어진 입술
왕정 쇠퇴기의 이면 보여줘
프란시스코 데 고야의 ‘라 로카 공작, 비센테 마리아 데 베라 데 아라곤의 초상’(1795년경). 샌디에이고 미술관 제공 ⓒThe SanDiego Museum of Art
“최고 상류층의 초상화를 그리던 붓으로 거리의 부랑자와 정신 이상자도 그렸던 화가.”
근대 미술의 문을 연 거장 프란시스코 데 고야(1746∼1828)에 대해 어느 미술사가가 남긴 말이다. 고야의 붓이 모두가 선망하던 대상부터 감추고 싶은 사회와 인간의 치부까지 건드렸음을 뜻한다. 그의 붓이 그린 귀족과 왕실 초상화에선 이런 ‘양면성’을 느낄 수 있다.
서울 세종문화회관 세종미술관에서 열리는 ‘르네상스에서 인상주의까지’전에서 볼 수 있는 고야의 ‘라 로카 공작, 비센테 마리아 데 베라 데 아라곤의 초상’은 스페인 왕실과 가까웠던 라 로카 공작이 왕립 역사 아카데미 회원으로 선출된 걸 기념해 그린 초상화다. 이때 고야는 스페인 국왕 카를로스 4세의 신임을 받아 궁정화가로 일하고 있었다.
군인이자 행정가였던 라 로카 공작은 이 초상화에서 화려한 군복과 훈장 차림이다. 권위를 드러내는 복장은 그의 업적을 돌아보게 한다. 이 시기 스페인을 포함한 유럽 왕실은 프랑스혁명으로 불안감에 떨고 있었다. 라 로카 공작은 왕실의 반혁명 정책을 지지했고, 바렌시아 지역 사령관으로서 프랑스인 추방령을 내려 왕실의 신임을 받았다. 강경한 왕실 충성파 세력 중 한 명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고급스러운 의자와 위엄 있는 복장에 반해, 라 로카 공작의 모습엔 독특한 특징이 있다.
이를테면 소매 끝으로 어색한 듯 움츠리고 있는 오른손이 그러하며, 그림을 보는 사람에게 말을 걸려는 듯 살짝 벌어진 입술 또한 그렇다. 사실적인 피부 질감과 주름은 라 로카 공작의 권위 이면에 있는 왕정 쇠퇴기의 불안함을 보여준다.
고야는 이 그림을 그리기 2년 전 목숨을 위협하는 병을 앓았다. 당시 서서히 청각도 잃어가고 있었다. 그런 고통을 겪은 뒤 고야가 그린 작품들에선 인간의 심리를 꿰뚫는 통찰이 생생하게 드러난다.
이 작품을 그리고 4년 뒤, 고야는 수석 궁정화가가 된다. 그 직후 국왕 카를로스 4세와 그의 가족 초상화를 그리게 된다. ‘카를로스 4세의 가족’은 국왕이 아닌 왕비 마리아 루이사를 중심에 배치하고 왕족의 옷을 화려하게 그렸다. 하지만 마치 해질 녘 노을처럼 사라질 것 같은 모습으로 표현했다.
이 작품은 왕실 내부의 긴장과 시대적 변화를 반영해 19세기 프랑스 예술계에도 신선한 충격을 줬다. 시인 샤를 보들레르는 고야의 예술이 지닌 혁신성과 감정의 깊이를 높이 샀다. 그의 예술은 에두아르 마네 같은 인상파 화가들에게도 지대한 영향을 끼쳐 근대 미술의 문을 연 것으로 평가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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