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원 환자에 “AI 기술 써보세요”… 의료적 판단인가 매출 꼼수인가 [홍은심 기자와 읽는 메디컬 그라운드]

  • 동아일보

AI 솔루션 등 의사 설명도 없이 원무과 직원이 입원 환자에 권고
비급여 AI기술, 1주일에 10만 원… 일부 병원선 입원 환자에 상용화
고정 매출 늘어 ‘새 수익원’ 인식

AI 의료기술 도입이 확산되면서 일부 비급여 제품이 병원 매출의 새로운 축으로 자리 잡고 있다. 홍은심 기자hongeunsim@donga.com
AI 의료기술 도입이 확산되면서 일부 비급여 제품이 병원 매출의 새로운 축으로 자리 잡고 있다. 홍은심 기자hongeunsim@donga.com
홍은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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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소재의 한 상급종합병원 A 교수는 최근 자신이 근무하는 병원에 입원했다가 원무과 직원으로부터 낯선 권고를 받았다. 금식과 진통제 투여를 하면서 간단한 경과 관찰이 필요한 입원이었지만, 직원이 “인공지능(AI) 기반 심정지 위험 예측 기술을 신청하라”고 안내한 것.

A 교수는 “처음 듣는 제품이고 필요하지 않다”며 거절했다. 의사인 그는 스스로 판단해 선택할 수 있었지만 해당 병원의 상당수 입원 환자가 동일한 권고를 받고 있었다.

언급된 제품은 AI를 활용해 입원 환자의 혈압·맥박·호흡·체온 등 활력징후를 분석하고 24시간 내 심정지 등 중증 악화 가능성을 예측하는 의료 솔루션이다. 정식 의료기술로 평가를 마친 제품은 아니며 현재는 ‘평가 유예 신의료기술’ 형태로 임시 사용이 허가된 상태다. 의학적 근거를 수집하는 단계로 예측 정확도, 임상적 유효성 등 구체적 데이터는 아직 충분히 공개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전국 140개 병원에서 입원 환자를 대상으로 처방이 이뤄지고 있다.

비용도 적지 않다. 입원 하루당 약 1만2000∼1만5000원 수준으로 환자에게 비급여로 청구된다. 일주일 입원하면 10만 원을 넘는다. 병원이 권고하면 환자는 ‘필요한 검사인가 보다’ 하고 받아들이기 쉽다. A 교수처럼 의사라면 거절할 수 있지만 일반 환자는 비용이나 근거에 대한 충분한 설명을 듣기 어려워 스스로 판단하기가 쉽지 않다.

전문가들은 임상적 근거가 충분히 마련되지 않은 임시 허가 기술이 병원에서 ‘루틴’처럼 환자에게 처방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 평가 유예 신의료기술은 혁신 기술을 조기에 도입할 수 있도록 만든 제도지만 어디까지나 검증 단계에서 제한적으로 사용해야 한다. 그럼에도 일부 병원에서는 이 기술을 입원 환자 대부분에게 일률적으로 적용하고 있어 사실상 상용 기술처럼 운용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한 대학병원 의사는 “환자에게 확실한 이득이 입증된 것은 아니지만 병원 수익에는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환자 설명과 동의 절차가 사실상 형식에 그치고 있다는 것도 문제다. 한 상급종합병원 의사는 “병원이 ‘현재 사용하는 AI 기술’이라며 필요성을 강조할 뿐 임시 허가라는 사실이나 임상 근거 수준을 충분히 설명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그는 “비슷한 형태의 AI 분석 프로그램 중 일부는 단일 사용 비용만 수만 원에 이르는 고가 제품도 있다”며 “이들 비급여 AI 제품이 병원 매출 구조의 새로운 축이 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현재 이 솔루션은 수년간 의료 현장에서 사용된 근거를 기반으로 내년 초 정식 평가 제출을 준비 중이다. 다만 그동안 환자에게 얼마나 충분한 설명이 이뤄졌는지, 병원은 어떤 기준으로 기술 활용 여부를 판단해 왔는지는 향후 더욱 면밀한 검증이 필요하다.

혁신 기술의 조기 도입은 의료 발전을 위해 필수적이다. 그러나 환자가 기술의 필요성과 비용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원무과 권고’ 수준에서 비급여 AI 기술을 수용해야 하는 구조는 개선이 필요하다. 임시 허가 기술이 병원 수익 중심으로 활용되는 듯한 현재의 관행 역시 제도의 취지를 약화한다.

AI 기술이 환자 안전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사용되기 위해서는 병원이 정확한 설명과 충분한 동의 절차를 갖춰야 한다. 규제기관은 임시 허가 기술의 실제 사용 행태를 면밀하게 관리해야 한다. 새로운 기술이 의료 현장에 자리 잡기 위해서는 환자가 충분한 정보를 바탕으로 선택할 수 있는 환경이 필수적이다. 신뢰가 확보되지 않은 의료기술은 혁신이 아니라 또 다른 부담이다.

#헬스동아#건강#의학#AI기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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