젤렌스키 위기는 트럼프의 기회? “27일까지 종전안 합의” 압박

  • 동아일보
  • 입력 2025년 11월 23일 19시 51분


돈바스 남기고 나토 가입 불가 등 합의 종용
‘정치적 위기’ 젤렌스키 압박해 휴전 합의 시도
유럽 국가-美 공화당 내부서도 반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왼쪽)과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 2025.2.28. AP뉴시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왼쪽)과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 2025.2.28. AP뉴시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1일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을 향해 미국이 제안하는 우크라이나 전쟁 평화계획에 27일까지 합의하라고 종용했다. 이 계획엔 우크라이나의 동부 영토를 러시아에 넘기고,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불가입을 헌법에 규정하는 등 우크라이나에 불리한 내용들이 담겼다.

트럼프 대통령이 이처럼 우크라이나에 부담이 큰 종전안을 강조하고 있는 건 최근 젤렌스키 대통령의 ‘정치적 위기’와 연관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최근 측근들이 부패 스캔들에 연루됐고, 주요 전선에서 우크라이나군이 위기를 겪으며 어려움에 처한 젤렌스키 대통령을 압박해 최대한 휴전을 달성하려 한다는 것. 로이터통신은 트럼프 행정부가 정보 및 무기 지원을 보류할 수 있다는 경고를 우크리아나 측에 보내고 있다고 전했다.

다만, 이번 종전안에 대해 우크라이나와 유럽 국가는 물론이고 미 공화당 내에서도 우려가 나온다. 이를 의식한 듯 22일 트럼프 대통령은 “최종 제안은 아니다”라며 조정 의사가 있음을 나타냈다. 마코 루비오 미 국무장관 등 미국 측 협상단은 23일 스위스 제네바에서 우크라이나와 영국, 프랑스, 독일 등 유럽 주요국과 고위급 회담을 한다.

트럼프 “젤렌스키 카드 없어, 받아들여야”

21일 트럼프 대통령은 폭스뉴스 라디오 인터뷰에서 우크라이나 전쟁 평화계획 합의 시점에 대해 “목요일(27일)이 적절한 시기라고 생각한다”며 “그(젤렌스키)는 그것을 좋아해야 할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계속 싸워야 할 것”이라고 했다. 앞서 트럼프 행정부는 28개 항으로 구성된 우크라이나 전쟁 평화계획을 우크라이나에 전달한 뒤 수용을 압박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올 2월 젤렌스키 대통령과의 백악관 정상회담을 거론하며 “얼마 전 집무실에서 내가 젤렌스키에게 ‘카드가 없다’고 말한 걸 기억할 것”이라며 “어느 시점에선 (종전안을) 받아들여야 할 것”이라고 했다.

이번 종전안에는 크림반도, 루한스크, 도네츠크 등 우크라이나 동부 돈바스 지역 대부분을 러시아에 넘겨주고, 헤르손과 자포리자 지역은 현 전선에서 동결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또 우크라이나는 나토에 가입하지 않을 것임을 헌법에 명시해야 하며, 군대 규모를 기존 80만 명에서 60만 명으로 줄여야 한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이런 내용은 지난달부터 접촉한 스티브 윗코프 백악관 중동 특사, 트럼프 대통령 사위인 재러드 쿠슈너 전 백악관 선임고문,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측근이며 특사인 키릴 드미트리예프 러시아 직접투자펀드(RDIF) 대표가 협의해 마련했다. 국무부 등의 관여가 불분명해 더욱 러시아에 유리한 내용이 담겼다는 분석도 나온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러시아에 유리한 내용이 담긴 이번 종전안에 대해 “자유도, 존엄도, 정의도 없는 삶”이라며 “논거를 제시하고, 설득하고, 대안을 제안할 것”이라고 밝혔다. 유럽 주요국들도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 공동성명을 내고 종전안에 대해 “추가 작업이 필요하다. 강제로 국경을 변경해선 안 된다”고 했다.

젤렌스키 정치 위기에 트럼프 압박 강화

지난달 푸틴과의 정상회담을 취소하고, 러시아 석유기업들을 제재하는 등 상대적으로 러시아에 대한 압박에 나섰던 트럼프 행정부가 다시 우크라이나 압박에 나선 건 젤렌스키 대통령의 지지세 하락 영향이 크다. 최근 우크라이나 국가반부패국(NABU)은 젤렌스키 대통령의 오랜 친구인 티무르 민디치가 국영 원전업체 에네르고아톰과의 계약에서 10~15%의 불법 리베이트 등 약 1억 달러의 뇌물을 수수했다고 밝혔다. 특히 젤렌스키 정부의 부총리, 법무장관, 에너지장관도 뇌물 스캔들에 연루됐다는 의심을 받고 있다. 이에 따라 야권을 중심으로 젤렌스키 대통령에 대한 반대 여론이 커지고 있다.

워싱턴포스트(WP)는 “부패 의혹은 이미 (미국과의) 협상 테이블에서 불리한 위치에 있는 젤렌스키의 입지를 더 약화시킬 수 있다”고 진단했다. 우크라이나 전쟁을 신속히 끝내 자신의 외교 성과를 강조하려는 트럼프 대통령이 젤렌스키가 처한 위기를 기회로 보고 있다는 것이다.

한편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우크라이나와 유럽 우방국들은 23일 미국과의 고위급 회담에서 돈바스 지역 영토를 러시아에 넘기는 것을 거부하는 입장을 전달키로 했다. 이들은 평화 합의 조건으로 현재 동결된 러시아 자산을 우크라이나 재건 및 배상금으로 사용하고, 전쟁 뒤 우크라이나에 나토 제5조 수준의 집단방위 제공을 요구할 방침이다.

#도널드 트럼프#볼로디미르 젤렌스키#우크라이나 전쟁#평화계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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