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0도 관계 반전, 맘다니가 트럼프를 사로잡은 5가지 비결 [트럼피디아] 〈51〉

  • 동아일보
  • 입력 2025년 11월 23일 08시 00분


21일 백악관 대통령 집무실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오른쪽)이 조란 맘다니 뉴욕시장 당선인의 팔을 치며 격려하고 있다. 워싱턴=AP 뉴시스
21일 백악관 대통령 집무실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오른쪽)이 조란 맘다니 뉴욕시장 당선인의 팔을 치며 격려하고 있다. 워싱턴=AP 뉴시스
‘민주 사회주의자’를 자처하는 조란 맘다니 뉴욕 시장 당선인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21일(현지 시간) 백악관 회동이 화기애애하게 진행되며 세상을 놀라게 했다. 맘다니의 요청으로 성사된 이번 만남에서 둘은 약 30분간 비공개 독대 후 기자회견을 가졌다.

맘다니를 향한 ‘아직도 트럼프를 파시스트라고 생각하냐’는 취재진 질문에 트럼프 대통령이 즉각 “괜찮다”고 말하며 “그냥 ‘예스’라고 답해라. 그 편이 간단하다”며 미소를 보내는 장면은 큰 화제가 됐다.

트럼프 대통령은 맘다니를 ‘공산주의자’라고 불렀다. 하지만 회동 전 폭스뉴스 라디오 인터뷰에서 “철학이 다르지만 잘 지낼 것이다. 우리는 같은 목표를 추구하고 있다”고 했다. 둘은 어떤 교감이 있었기에 180도 달라진 모습으로 취재진 앞에 나타난 것일까. 33분간 진행된 기자회견에서 힌트를 찾아봤다.

● 트럼프의 뿌리 ‘공공주택’
취재진이 맘다니를 향해 연방정부의 이민단속에 협조하겠냐고 묻자, 그는 즉답을 피했다. 기자단이 추가 질문을 던지려고 하자, 트럼프 대통령이 끼어들어 “엄밀히 말해 우리는 이민 단속 자체보다는 범죄 문제를 논의했다. 둘다 범죄가 일어나는 것을 원치 않는다는 뜻을 확인했다”며 노련하게 답변했다. 그러면서 “그가 매우 흥미로운, 정말 흥미로운 이야기들을 했다”며 “주택 건설”로 화제를 돌렸다.

“그는 집이 많이 지어지길 바란다. 정말 많은 주택과 아파트가 지어지길 바란다. 놀랄지 모르겠지만 나도 같은 생각이다.”

생활비 안정화를 이번 선거 핵심 전략으로 삼은 맘다니는 ‘공공주택 20만 호 보급’을 공약했다. 특히 주목할 점은 맘다니가 지난 4일 시장선거와 함께 실시된 주민 투표에서 주택 개발 승인 절차를 간소화하는 3가지 안건에 모두 찬성 입장을 냈다는 것이다. 당시 “예상 밖의 선택”이라는 평가가 나왔다.

맘다니가 21일 백악관 기자회견에서 밝은 표정을 짓고 있다. 워싱턴=AP 뉴시스
맘다니가 21일 백악관 기자회견에서 밝은 표정을 짓고 있다. 워싱턴=AP 뉴시스
기존에는 아파트를 지으려는 지역구의 시의원이 반대하면 개발 프로젝트가 무산되고는 했다. 시의원 측의 “아파트 내 임대주택 비율을 높여라” “건설 노동조합 인력을 사용해라”라는 식의 요구를 들어주기엔 사업성이 현저히 떨어진다고 판단한 개발업자가 프로젝트를 중단하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그러나 앞으로는 시장·시의회 의장·자치구청장으로 구성된 ‘항소 위원회’가 시의원의 거부권을 뒤집을 수 있고, 공공주택과 중소규모 프로젝트의 승인 절차도 간소화된다. 변화를 두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은 6일자 신문에서 “이번 선거는 뉴욕 개발업자의 승리”라고 평가했다.

돌아보면 맘다니가 선거 막판에 이 안건들에 찬성한다는 뜻을 밝힌 것은 트럼프 대통령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한 포석이었을 수 있다.

21일 백악관 집무실에서 맘다니와 악수하고 있는 트럼프 대통령. 워싱턴=AP 뉴시스
21일 백악관 집무실에서 맘다니와 악수하고 있는 트럼프 대통령. 워싱턴=AP 뉴시스
공공주택과 아파트는 트럼프 대통령에게 매우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뉴욕 맨해튼에 ‘트럼프 타워’와 ‘그랜드 하얏트 호텔’을 짓기 이전에 트럼프 대통령은 정부 지원금을 받아 공공주택을 보급해 백만장자가 된 프레드 트럼프의 아들로 자랐다.

프레드는 일생동안 공공주택을 포함해 아파트 총 2만7000호를 지은 뉴욕의 전설적인 자수성가 사업가였다. 트럼프 대통령 또한 아버지를 따라 아파트 공사장에서 유년 시절을 보냈고, 청년기에는 직접 월세를 거두러 다니며 세상의 거친 이면을 체험했다.

* 트럼프 부자의 대를 이은 부동산 사업기는 트럼피디아 40화에서 다뤘다.
https://www.donga.com/news/Inter/article/all/20250907/132334130/1

즉, 공공주택과 아파트는 트럼프 대통령의 뿌리를 건드리는 소재다. 기자회견 말미에 트럼프 대통령은 “나는 아주 합리적이며, 뉴욕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고 싶은 사람과 만났다”며 “그가 뉴욕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 수 있다면 나는 그를 응원할 것”이라며 맘다니를 칭찬했다.

맘다니는 “개발업자들이 아파트를 짓기 쉽게 만들겠다”는 뜻을 밝혔다. 노조에 불리한 정책을 지지한 것이기도 하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런 맘다니를 합리적인 인물이라고 인식했을 수 있다.

● 트럼프 발목 잡는 ‘전기요금’
맘다니의 승리 요인을 두고는 “높은 생활비를 낮추겠다”는 공약이 높은 물가와 월세에 지친 뉴욕 시민들을 투표장으로 나오게 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을 향한 거센 공격이 진보 성향 지지층 결집에는 효과적이었으나, 결국 중도층 표심 공략을 위해서는 경제 문제가 중요했다는 것이다.

폴리티코에 따르면 이날 비공개 면담에서 맘다니는 주로 생활비 문제를 거론했다고 한다. 기자회견에서도 생활비(cost of living, afford)를 25차례나 언급하며, 사실상 어떤 질문을 받든 “생활비 완화 대책을 의논했다”는 답변을 내놨다.

트럼프 대통령이 21일 백악관 기자회견에서 맘다니의 발언에 경청하고 있다. 워싱턴=AP 뉴시스
트럼프 대통령이 21일 백악관 기자회견에서 맘다니의 발언에 경청하고 있다. 워싱턴=AP 뉴시스
취재진이 ‘정치 진영의 반대편에 서 있지만 둘다 포퓰리스트인데 트럼프의 유세나 소셜미디어를 보며 영향을 받았냐’고 묻자 맘다니는 “우리 둘의 선거 캠페인이 ‘생활비 위기’에 초점을 맞췄다는 공통점을 대통령께 말씀드렸다”고 답했다. 그러면서 이렇게 말했다.

“대통령에게 투표한 뉴욕 유권자들에게 이유를 묻자 대답은 같았다. 생활비, 생활비, 또 생활비였다. 식료품 값, 집세, ‘콘에드’(Con Ed·전기요금), 보육 비용 같은 생활비를 이야기했다. 정치인들은 뉴요커에게 ‘뭘 중요하게 여겨야 하는지’ 훈계하려 들지 그들의 말을 듣지 않는다. 나는 대통령과 손잡고 생활비를 감당 가능하게 만드는 데 큰 기대를 걸고 있다.”

고개를 끄덕이며 맘다니의 말을 듣던 트럼프 대통령은 “콘에드 얘기를 했는데, 가격 문제를 손봐야 한다. 우리(트럼프 행정부)가 연료 가격을 크게 낮췄으니 콘에드도 요금을 내리기 시작해야 한다”고 했다. 콘에드는 ‘콘솔리데이티드 에디슨’의 준말로 뉴욕에 전기와 가스를 공급하는 민간 기업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은 비판의 화살을 콘에드로 돌리려는 시도로 풀이된다. 물가가 잡히지 않아 지지율에 타격을 입고 있는 가운데 콘에드가 정권의 발목을 잡고 있다고 보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앞서 4월 글로벌 상호관세 발표 당시에도 물가 인상에 대한 우려가 터져나오자 유통업계를 향해 “관세를 먹으라”고 공개 발언한 바 있다.

지난해 10월 뉴욕 브롱스에서 “매달 공과금 1만5000달러를 내고 있다”는 이발사의 말을 듣고 놀라는 트럼프 대통령. 사진 출처 X
지난해 10월 뉴욕 브롱스에서 “매달 공과금 1만5000달러를 내고 있다”는 이발사의 말을 듣고 놀라는 트럼프 대통령. 사진 출처 X
콘에드는 지난해 대선 기간에 트럼프 대통령에게 부정적인 인상을 남기기도 했다. 지난해 10월 뉴욕 브롱스에서 이발사들을 만난 자리에서 한 이발사는 “한달에 2100달러 정도 나오던 공과금이 7개월 전부터 1만5000달러가 됐다”며 지나치게 높은 전기요금을 두고 콘에드와 싸우고 있다고 말했다. 당시 트럼프 대통령이 매우 놀란 표정으로 “네?”라고 되묻는 장면이 화제가 됐다.

맘다니는 회동에서 ‘아웃사이더’와 포퓰리스트라는 트럼프 대통령과의 공통점을 파고드는 전략을 썼다. 기성 정치권을 “남을 훈계하려고 드는” 거만한 기득권으로 인식하고, 탐욕적인 기업을 정치적 목적 달성의 방해물로 보는 관점이 통한 것으로 보인다.

● 추수감사절에 닥칠 실망 완화
27일 미국은 추수감사절 연휴에 돌입한다. 이는 트럼프 대통령이 맘다니와 손을 맞잡고 “생활비를 해결하겠다”는 메시지를 낸 배경일 수 있다. 추수감사절은 온 가족이 둘러 앉아 진수성찬을 먹는 명절이어야 하나, 올해 미국인들은 가파르게 오른 식료품 가격을 생생하게 체감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미국인들은 트럼프 행정부 출범 후 살림살이가 더욱 팍팍해졌다고 보고 있다. 20일 공개된 폭스뉴스 설문조사에서 전체 응답자의 85%가 1년 전보다 식료품 가격이 올랐다고 답했다. 특히 전체 응답자의 60%는 식료품 가격이 ‘많이’ 올랐다고 봤다. 식료품 이외의 공과금과 의료비, 주거비가 올랐다고 답한 응답자도 66% 이상이었다.

10일 한 주민이 미국 펜실베이니아주의 슈퍼에서 식료품을 고르고 있다. 키태닝=AP 뉴시스
10일 한 주민이 미국 펜실베이니아주의 슈퍼에서 식료품을 고르고 있다. 키태닝=AP 뉴시스
올 4월 이후 오름세였던 미국 소비자물가지수(CPI)는 9월 전년 동월 대비 3% 오르며 3% 선을 넘겼다. 특히 커피와 소고기 등 수입품의 가격이 치솟자 트럼프 행정부는 급한 불을 끄기 위해 브라질산 커피 원두, 아르헨티나산 소고기 등에 관세 면제를 적용하기로 했다.

그러나 나빠진 여론을 되돌리기는 쉽지 않을 전망이다. 18일 로이터통신-입소스 공동 여론조사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지지율은 38%로 취임 후 최저를 기록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번 회동을 ‘미국인의 어려움을 인식하고 있고, 이를 만회하기 위해 노력하겠다’는 자연스러운 읍소의 기회로 활용한 것일 수 있다. 데이비드 마커스 폭스뉴스 칼럼니스트는 “맘다니가 추수감사절을 앞두고 분위기를 풀어주는 손주사위 역할을 잘 해냈다”고 평했다.

● 공손한 태도와 공통 롤모델
맘다니는 회담 내내 트럼프 대통령을 띄우고, 공손한 태도를 유지했다. 집무실 책상에 앉아있는 트럼프 대통령 옆에 서서 “트럼프는 생활비 문제에 집중하는 대통령”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CNN은 “두 손을 가지런히 모은 맘다니가 트럼프보다 살짝 뒤에 서있었다”고 전했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은 맘다니가 비공개 회담에서 자신을 ‘Sir’(어르신, 각하)라고 호칭했다고 밝혔다. ‘진보 투사’ 이미지의 맘다니가 트럼프 대통령에게 손윗사람을 대하는 존칭을 쓰며 몸을 낮췄다는 의미다.

맘다니가 트럼프 대통령의 마음을 움직인 마지막 비결은 프랭클린 루즈벨트 대통령에 대한 존경심이다. 민주당 출신이지만 ‘강한 대통령’을 추구했던 루즈벨트 대통령은 여러모로 트럼프 대통령과 닮은 점이 많은 대통령으로 꼽힌다. 루즈벨트는 의회를 통과한 법안에 635회의 거부권을 행사하고, 사법부 권한을 약화하기 위해 대법관 수를 늘리려고 시도하고, 라디오를 통해 국민과 직접 소통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의 초상화를 백악관 내 내각회의실에 걸어뒀다. 맘다니는 루즈벨트 초상화 앞을 지나자 “여기서 사진을 찍어도 되겠냐”며 루즈벨트에 대한 존경심을 표했다고 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기자회견에서 이 일화를 소개하다 고개를 돌려 맘다니를 바라보며 “훌륭한 초상화다. 사진이 잘 나왔길 바란다”고 했다.

21일 저녁 트루스소셜에 맘다니와 찍은 사진을 올린 트럼프 대통령. 트럼프 대통령 트루스소셜 캡
21일 저녁 트루스소셜에 맘다니와 찍은 사진을 올린 트럼프 대통령. 트럼프 대통령 트루스소셜 캡
기자회견을 마친 뒤 트럼프 대통령은 트루스소셜에 루즈벨트 초상화 앞에서 둘이 찍은 사진과 함께 맘다니의 독사진을 올렸다. 자존심 때문이었을까, 맘다니는 트럼프 대통령과 나란히 서서 ‘엄지척’ 포즈는 하지 않은 채로 두 손을 모으고 사진을 찍은 모습이었다.
#트럼피디아#도널드 트럼프#조란 맘다니#뉴욕 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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