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승의 恨 품고… LA올림픽 金 메친다

  • 동아일보
  • 입력 2025년 11월 21일 03시 00분


‘유도계 마석도’ 황희태 감독과 수제자 ‘천둥 번개맨’ 이준환
황, 강력계 형사 거친 ‘유도 레전드’… 세계선수권-亞대회 연달아 제패
유독 올림픽 금메달과는 인연없어… 2021년 감독부임후 “한 풀어달라”
이, 파리올림픽 동메달리스트… 세계유도연맹, ‘번개맨’ 별명 지어줘
동급 최강 나가세 연파하며 유명세… “내년 생애 첫 메이저대회 金 도전”

황희태 한국 남자 유도대표팀 감독(왼쪽)과 2024 파리 올림픽 81㎏ 이하급 동메달리스트 이준환이 최근 전남 순천시 팔마체육관에서 카메라 앞에 섰다. 이준환은 황 감독의 지도 아래 구슬땀을 흘리며 내년 아이치-나고야 아시안게임을 준비하고 있다. 순천=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황희태 한국 남자 유도대표팀 감독(왼쪽)과 2024 파리 올림픽 81㎏ 이하급 동메달리스트 이준환이 최근 전남 순천시 팔마체육관에서 카메라 앞에 섰다. 이준환은 황 감독의 지도 아래 구슬땀을 흘리며 내년 아이치-나고야 아시안게임을 준비하고 있다. 순천=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최근 한 TV 예능프로그램에 출연해 거구의 몸집에 어울리지 않는 해맑은 미소로 시청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인물이 있다. ‘유도 레전드’ 황희태 한국 남자 유도대표팀 감독(47)이다.

“돼지가 방귀를 뀌면? 돈가스….” 최근 전남 순천시 팔마체육관에서 만난 황 감독은 인터뷰 중간에도 수시로 ‘아재 개그’를 던지며 타고난 예능감을 숨기지 못했다. 영화 ‘범죄도시’의 주인공 마석도(마동석)를 닮아 ‘유도계 마석도’로 불리는 황 감독은 실제로 2015년부터 2019년까지 강력계 형사로 활동한 이력이 있다. 경찰차 탑승을 거부하는 범인을 ‘반으로 접어’ 태웠다거나 그가 등장하자 다급히 “잡힐게요!”를 외치며 도망을 포기한 범인이 있었다는 얘기는 유명하다. 하지만 황 감독이 진짜 존재감을 발휘하는 무대는 방송 스튜디오도, 범죄 현장도 아닌 유도 매트다.

2003 오사카 세계선수권대회 90kg 이하급에서 정상에 오르며 혜성처럼 등장한 황 감독은 2006년 도하 아시안게임과 2010 광저우 아시안게임을 연달아 제패했다. 그런 황 감독도 선수 시절 유독 올림픽 금메달과는 인연이 없었다. 2021년 대표팀 감독에 부임한 후 선수들에게 “너희가 꼭 내 한을 풀어줬으면 좋겠다”고 당부한 이유다.

황 감독이 초점을 맞춘 건 체력 보강이었다. 선수들은 새벽부터 산을 타고 200m 언덕을 뒤로 기어오르는 고강도 체력 훈련을 소화했다. 한국 유도는 지난해 파리 올림픽에서 2000 시드니 대회 이후 가장 많은 5개의 메달(은 2, 동메달 3개)을 수확하는 성과를 거뒀다.

선수들의 신뢰는 대표팀 벤치에서도 드러난다. 황 감독은 경기를 앞둔 선수들의 등을 사정없이 두드리고, 머리를 쥐어짠다. 거칠어 보일 수 있지만 선수들 사이에서는 긴장을 풀기 위해 거치는 ‘필수 의식’으로 줄을 서 기다릴 정도로 인기다.

그의 지도 아래 가장 두드러지게 성장한 선수는 파리 올림픽 남자 81kg 이하급 동메달리스트 이준환(23·사진)이다. 세계유도연맹(IJF)은 신인 시절 재빠르고 과감하게 기술을 시도하는 이준환을 두고 ‘번개맨’이란 별명을 지어줬다. 황 감독은 “이제는 근력과 힘을 갖춰 더 탄력 있고 임팩트 있게 기술을 사용할 수 있게 됐다”며 “‘천둥 번개맨’ 정도는 되어야 하지 않나 싶다”며 웃었다.

이준환은 이 체급 세계 최강자이자 올림픽을 2연패(2021년 도쿄 올림픽, 지난해 파리 올림픽)한 나가세 다카노리(32·일본)를 잇달아 제압하면서 이름을 알렸다. 2022년 울란바토르 그랜드슬램 준결승, 2023 카타르 도하 세계선수권 8강에서 나가세를 꺾었고, 올해 5월 열린 카자흐스탄 바리시 그랜드슬램 결승에서도 나가세를 누르고 정상에 섰다. 상대 전적에서 3승 1패로 앞서고 있는 이준환은 “올림픽에서 이긴 게 아니기 때문에 큰 의미를 두지 않는다”고 했다.

이준환은 아직 메이저대회에서 금메달을 손에 쥔 적이 없다. 세계선수권에서도 3년 연속 동메달(2023∼2025년)에 만족해야 했다. “솔직히 메달 색에 대한 아쉬움이 있다”고 토로한 그는 ‘일체유심조’(모든 것은 오직 마음이 지어낸다)란 말을 가슴속에 품고 몸 만들기에 매진하고 있다. 훈련을 너무 열심히 한 탓에 손가락이 아파 취미로 즐기던 피아노와 기타도 내려놓았을 정도다.

내년에는 메이저대회인 아시안게임과 세계선수권이 열린다. 이준환은 내년 5월 열리는 아시안게임 국가대표 최종 선발전에 참가해 태극마크를 달기 위한 시험대에 오른다. 이준환은 “내년 아이치-나고야 아시안게임에서 생애 첫 메이저대회 금메달에 도전하겠다. 최종 목표는 2028 로스앤젤레스(LA) 올림픽 금메달”이라고 강조했다. 황 감독은 “호랑이는 토끼 한 마리를 사냥할 때도 최선을 다한다. 방심하지 않는 마음가짐을 유지하면 무관의 제왕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두 사람의 올림픽 금메달 꿈이 걸려 있는 LA 올림픽까지는 3년도 남지 않았다.

#황희태#이준환#유도#한국 남자 유도대표팀#올림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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