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정우성(46)에게 13일 개봉하는 영화 ‘증인’은 새로운 도전이었다. 그는 살인 용의자의 변론을 맡아 사건의 유일한 목격자인 자폐 소녀 지우(김향기)를 법정에 세우려 하는 대형 로펌 변호사 순호를 연기했다. ‘아수라’(2016년), ‘더 킹’(2017년), ‘인랑’(2018년) 등 남성적 향기를 진하게 풍기던 전작의 이미지를 완전히 버렸다. 지난달 23일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만난 그는 “그동안 남자들과 으르렁대다가 향기 씨를 만나니까 포근한 안식처에 온 느낌”이라며 웃었다.
첫 자폐 연기는 배우 김향기(19)에게도 쉽지 않았다. 촬영 전 KBS 다큐멘터리 ‘엄마와 클라리넷’, 영화 ‘템플 그랜딘’ 등 자폐스펙트럼장애(ASD)와 관련된 영상을 찾아봤다. 실제 자폐아들을 만나 그들을 관찰하기도 했다. 이날 만난 그는 “처음 연기할 땐 자폐 장애를 가진 친구들이 봤을 때 상처받지 않을까 부담이 있었다”고 털어놨다.
사실 ‘증인’은 속물 변호사가 순수한 영혼을 만나 정의를 외치며 초심을 찾는다는 뻔할 수 있는 이야기다. “당신은 좋은 사람입니까?” “당신은 나를 이용할 것입니까?” 등 지우가 순호에게 던지는 질문들도 다소 투박하다. 그럼에도 두 배우는 “자신과 주변을 돌아볼 수 있는 영화가 됐으면 만족한다”고 개의치 않았다.
극 중 순호와 지우처럼 둘도 천천히, 조금씩 친해졌다고 한다. 2003년 한 제과 브랜드 CF에서 처음 만났지만 둘 다 그때를 기억하지 못한다. ‘삼촌’이라는 말도 이제야 섞어 쓰기 시작했다. 촬영장에서 정우성 특유의 ‘아재 개그’에 김향기가 무너진 적도 많았다고. 정우성은 “향기 씨가 말이 적지만 그래서 시간적 여유를 가지고 더 편안하게 연기할 수 있었다”고 회상했다.
어느덧 중년에 접어든 정우성은 아직도 하고 싶은 게 많다. 사극액션 영화감독으로서의 데뷔도 앞두고 있다. 물론 결혼도 항상 인생 목표다. 유니세프 활동이나 난민 등 사회문제에 소신을 밝히는 것도 배우에 대한 선입견을 깨기 위한 노력의 하나였다. 그는 “고등학교 중퇴로 제도권 밖으로 빨리 튀어나왔기 때문에 그만큼 사회를 더 일찍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영화 ‘신과 함께’ 시리즈를 통해 ‘국민 동생’ 수식어를 얻은 김향기는 올해 고교를 졸업했다. 아역과 성인 배우의 갈림길에 서 있는 만큼 착한 이미지가 굳어질까 고민이다. 단, 걱정을 하진 않는다고.
“억지로 큰 변화를 주는 게 오히려 맞지 않는 옷을 입은 것처럼 어색할 수 있을 듯해요. 현재에 충실히 연기하면서 이 시기를 보내고 싶습니다. 성인 돼서도 교복, 입을 수 있지 않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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