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칸&피플] 봉준호·변희봉, 17년의 아름다운 동행

  • 스포츠동아
  • 입력 2017년 5월 22일 06시 57분


변희봉(맨 왼쪽), 틸다 스윈튼, 안서현, 봉준호(왼쪽에서 네 번째부터 차례로) 등 제70회 칸 국제영화제 경쟁부문에 초청된 영화 ‘옥자’의 감독과 배우들이 20일(한국시간) 공식 상영에 앞서 레드카펫을 밟고 있다. 사진=ⓒGettyimages이매진스
변희봉(맨 왼쪽), 틸다 스윈튼, 안서현, 봉준호(왼쪽에서 네 번째부터 차례로) 등 제70회 칸 국제영화제 경쟁부문에 초청된 영화 ‘옥자’의 감독과 배우들이 20일(한국시간) 공식 상영에 앞서 레드카펫을 밟고 있다. 사진=ⓒGettyimages이매진스
데뷔작부터 환상호흡…칸 영화제까지
봉준호 “선배님은 캐도 캐도 뭔가 있다”
변희봉 “칸 무대 영광…평생 연기할 것”

영화 ‘플란다스의 개’의 변경비. ‘살인의 추억’의 구희봉 반장, ‘괴물’의 박희봉 노인…. 눈치 빠른 이라면 단박에 알아챘을 것이다. 봉준호 감독의 작품과 그 속에 등장하는 배우 변희봉의 극중 캐릭터 이름이다. 봉준호 감독은 변희봉과 작업하면서 늘 그의 실명을 작품에 등장시켰다. 제70회 칸 국제영화제 경쟁부문 초청작 ‘옥자’도 마찬가지다. ‘옥자’는 “돼지와 하마를 합친 듯한” 모습의 거대동물 옥자와 강원도 산골소녀 미자(안서현)의 이야기. 식량난을 해소한다는 명분 아래 슈퍼돼지 프로젝트를 감행해 탐욕스러운 자본의 논리를 관철시키려는 미국의 다국적 기업과 이를 저지하려는 비밀 동물보호단체 등이 엮이며 벌어지는 사건 속에서 옥자를 구하려는 미자의 모험을 그린다.

변희봉은 미자의 할아버지 조희봉 역이다. 이번에도 봉 감독은 그에게 실제 이름을 쓰도록 했다. “변희봉 선생님을 염두에 두고 시나리오를 썼다”는 뜻이다. 봉 감독은 어릴 때부터 변희봉을 “흠모했”고, 결국 감독이 되어 오랜 세월 지켜봐온 배우와 시시때때로 힘을 모아 왔다.

그런 두 사람이 21일(이하 한국시간) 프랑스 칸 칼튼호텔에서 한국 취재진을 만나 이 같은 오랜 우정에 서로 화답했다.

● “칸! 고목나무에 꽃 폈다”…“광맥 같은 배우”

두 사람은 봉준호 감독의 장편 데뷔 무대인 2000년작 ‘플란다스의 개’로부터 17년 동안 인연을 맺고 있다. 봉 감독은 21일 한국 취재진 간담회에서 변희봉을 처음 만난 순간을 떠올렸다. “1999년 ‘플란다스의 개’ 시나리오를 보시고는 탐탁치 않아 하셨다. ‘뭐? 역할이 경비원이야? 개를 잡는 이야기라고? 이게 영화감이야?’라고 말씀하셨다”고 추억했다. 자신이 초등학교 1학년 이후 그의 TV사극을 보며 얼마나 오랜 시간 존경해왔는지를 설명하며 설득했고 결국 변희봉은 마음을 녹였고, 이는 ‘옥자’에까지 이르렀다.

이들은 20일 새벽 ‘옥자’의 경쟁부문 공식 상영에 앞서 레드카펫 위에 섰다. 멋들어진 턱시도 차림의 변희봉을 바라본 봉 감독은 “영화 ‘킹스맨’ 콜린 퍼스의 상사, 아시아의 첩보원 같다”며 박수를 보냈다.

변희봉은 “칸 국제영화제는 배우의 로망”이라면서 “정말 영광이다. 배우생활을 오래 했지만 칸은 꿈에도 생각해본 적 없다. 벼락 맞은 것 같다. 70도 기운 고목나무에 꽃이 핀 기분이랄까, 봉준호 감독에게 정말 고맙다 말하고 싶다”며 벅찬 감회를 숨기지 못했다.

이에 봉 감독은 변희봉을 “광맥”이라고 가리켰다. “캐도 캐도 뭔가 있을 것 같아 더 궁금하게 하는 배우”라는 말로, 그는 “뭔가를 더 캐내고 싶다”며 선배이자 친구이자 동료인 변희봉에게 존경과 우정을 표했다.

● “죽을 때까지 할란다”…노배우의 열정

변희봉은 ‘옥자’에서 손녀 미자와 슈퍼돼지 옥자를 키우는 농민 출신의 산골 노인. 거대 자본으로 무장한 다국적 기업의 비정한 탐욕의 음모를 알지 못한 채 옥자를 받아 슈퍼돼지로 키워냈다.

이를 표현하며 거멓게 그을린 투박한 피부를 통해 산골 노인의 모습을 구현한 변희봉은 “내가 본래 시골사람이어서 돼지를 키워봤다. 그래서 (봉 감독이 날) 쓰지 않았나” 겸손해 했지만 그런 그를 바라보며 봉준호 감독은 오히려 “선생님에게 의지했다”고 말했다.

변희봉은 연기를 위해 TV프로그램 ‘나는 자연인이다’ 전체를 녹화해 봤다고 했다. 또 “봉 감독의 손 안에서 벗어나지 않고 연기했다”면서 “배우에게는 그것이 중요하다”고 거듭 말했다.

이처럼 궁합 잘 맞는 연출자와 노배우의 호흡은 칸 국제영화제 경쟁부문 상영이라는 성과를 안겨줬다. 변희봉은 레드카펫을 밟으며 “뭔가 소원을 이룬 듯, 이것이 행복인가 만감이 교차했다”면서 “이제 다 저물었는데, 뭔가 미래의 눈이 열리는 것 아니냐고 생각했다”며 감격의 순간을 돌이켰다. 이어 “기대감과 힘과 용기가 생겼다. 두고 보자. 이 다음에 뭘 또 할는지, 기대해 달라”고 밝혔다.

노배우는 “열심히 할란다. 죽는 날까지 할란다”고 힘주어 말했다. 그리고 봉준호 감독은 노배우의 이런 열정에 애정 어린 눈길을 보냈다.

간담회를 지켜보던 기자들은 누구 먼저랄 것 없이 힘찬 박수를 보냈다.


칸(프랑스)|윤여수 기자 tadad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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