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홍진 감독 “죽고 사는 근원의 문제 센 장면에 웃음코드 넣었죠”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5월 1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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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홍진 감독의 ‘곡성’ 11일 개봉… 칸 영화제 초청 받아

나홍진 감독은 “애초에 생각했던 결말에서 몇 장면을 삭제한 버전이라고 보면 된다”며 “종구 같은 사건의 피해자 혹은 피해자 가족들에게 ‘네 잘못은 없다, 계속 살아가도 괜찮다’는 말을 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김경제 기자 kjk5873@donga.com
나홍진 감독은 “애초에 생각했던 결말에서 몇 장면을 삭제한 버전이라고 보면 된다”며 “종구 같은 사건의 피해자 혹은 피해자 가족들에게 ‘네 잘못은 없다, 계속 살아가도 괜찮다’는 말을 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김경제 기자 kjk5873@donga.com
외지인(구니무라 준)이 나타난 뒤 시골 마을에서 연쇄 살인사건이 벌어진다. 사건을 수사하던 경찰 종구(곽도원)는 딸 효진(김환희)이 사건 피해자들과 비슷한 증상을 보이며 아프기 시작하자 점점 초조해진다. 여기에 의문의 여인 무명(천우희)과 효진을 고치기 위해 데려온 무당 일광(황정민)까지 얽히며 종구는 더욱 혼란 속에 빠진다.

11일 개봉하는 나홍진 감독(42·사진)의 ‘곡성’(15세 이상)은 종잡을 수 없는 영화다. 스릴러의 뼈대 위에 블랙코미디, 오컬트(초자연적 현상을 다루는 장르), 좀비물에 아빠와 딸의 애틋한 드라마까지 얹었다. 나 감독은 자칫 덜컥거릴 수도 있는 영화의 이음매를 단단히 틀어쥔 채 결말까지 숨 쉴 틈 주지 않고 관객을 몰아붙인다.

이렇게 강렬한 에너지를 담은 영화를 연출한 그이지만 개봉을 앞둔 긴장감은 어쩔 수 없는 듯했다. 9일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만난 나 감독은 “잘 자지를 못한다. 피곤하니 기절하듯 잠들긴 하는데 다시 깬다”고 했다.

―전작 ‘추격자’(2008년)와 ‘황해’(2010년)에서도 살인사건이 소재였지만 ‘곡성’은 초점이 다르다. 사건의 피해자라 할 수 있는 종구의 심경이 영화의 중심이다.

“이번엔 피해자의 이야기를 좀 더 집중적으로 다루고 싶었다. 사건 피해자들은 대체 왜 이런 일을 당하는가,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설명 이상의 근원을 파고들다 보니 인간의 죽고 사는 문제, 인간과 신의 문제까지 가게 됐다.”

―주제는 철학적이지만 영화의 외양은 공포물에 스릴러다. 웃음이 터지는 장면도 많다.

“진지한 주제인 만큼 재미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나홍진 영화라고 하면 일단 관객이 공격적으로 되는 것 같다. 앉아서 ‘한번 해봐’ 하고 팔짱을 끼는 느낌이랄까. 관객의 반응, 그 반응의 비율까지 계산했다. 이전에는 센 장면을 묘사하며 스릴을 만들어 냈다면 이번에는 센 장면을 보여줄 만한 순간에 웃음을 주자, 이완시킨 뒤에 낙차를 주자고 생각했다.”

―그렇게 스타일을 바꾼 이유가 있나.

“‘황해’ 이후 3년 정도 잠을 못 잘 정도로 속이 상해 있었다. 여러 가지 이유로 나 자신에게 화가 났다. (‘황해’는 촬영 기간만 1년여에 제작비 약 100억 원이 들었지만 관객 약 230만 명을 모으는 데 그쳤다.) 수없이 작품을 해체하고 과정을 복기했다. 그런 뒤인 만큼 ‘곡성’은 시나리오를 쓰는 데만 2년 8개월이 걸렸다. 결말 30분 분량은 뭘 써도 불만족스러워서 7개월 정도 손을 놓고 있기도 했다. 장르영화가 이럴 수도 있다는 것을 보여주면서 남들이 참고할 만한 영화를 찍고 싶었다.”

―효진 역의 김환희(14)가 특히 인상적이었다. 어린 나이에 힘든 장면을 많이 소화했다.

“촬영 전에 6개월 정도 체력적, 정신적으로 철저히 준비를 했다. 시나리오도 전체를 보여주기보다는 부모님이 걸러서 보여주도록 했다. 개인적으로 그 친구는 천재라고 생각한다. 쑥스러워하다가도 촬영만 들어가면 돌변하는데, 다들 ‘대체 우리가 뭘 본 거지’라고 할 정도였다. 그런 배우와 영화를 찍는 것이 영광스럽기까지 했다.”

―배우들이 하나같이 ‘결과에 만족한다’고 말하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바꿔 말하면 과정이 그만큼 힘들었다는 얘기다. 곽도원은 나 감독을 가리켜 ‘독하다’는 말도 했는데….

“평상시에는 보시다시피 좀 허술하고 게으르고 나태하고 실없는 소리만 한다. 그래서 영화를 할 때 바짝 집중할 수 있는 거 같기도 하다. 사실 이젠 뭐가 먼저인지 모르겠다. 현장에서 그만큼 긴장하기 때문에 평소에 이런 상태인지, 아니면 반대인지.”

―11일 개막하는 칸국제영화제 비경쟁부문에 초청됐다. 이번이 세 번째 초청인데….

“서양 사람들은 완전히 다르게 볼 것 같아서 궁금한데, 사실 지금은 칸이고 뭐고 개봉 전이라 정신이 없다. 영화를 ‘까기’ 전까지의 이 시간이 정말 고통스럽다.”

이새샘 기자 iamsam@donga.com
#곡성#나홍진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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