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수정 “색깔있는 나쁜여자 역에 끌려요”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6월 4일 03시 00분


코멘트

4일 개봉 ‘은밀한 유혹’의 임수정

멜로와 스릴러가 섞인 신작 영화 ‘은밀한 유혹’에서 빚에 쫓기다 위험한 거래를 하고 ‘공주’로 변신하는 지연 역을 맡은 임수정. 후반 스릴러 부분에서 지연은 어두운 방에 갇힌 짐승처럼 행동한다. 임수정은 “현장에서 튀어나오는 감정에 따라 연기한 장면이 많다”며 “감독도 일부 장면을 배우의 동선에 맞춰서 찍을 정도로 열어 놨다”고 말했다. 키이스트 제공
멜로와 스릴러가 섞인 신작 영화 ‘은밀한 유혹’에서 빚에 쫓기다 위험한 거래를 하고 ‘공주’로 변신하는 지연 역을 맡은 임수정. 후반 스릴러 부분에서 지연은 어두운 방에 갇힌 짐승처럼 행동한다. 임수정은 “현장에서 튀어나오는 감정에 따라 연기한 장면이 많다”며 “감독도 일부 장면을 배우의 동선에 맞춰서 찍을 정도로 열어 놨다”고 말했다. 키이스트 제공
배우 임수정은 카페 뒤쪽 출입구로 슬쩍 들어왔다. 매니저에게 “잠깐만, 여기 앉아 있다가 갈게요” 하더니 1층 창가에 앉아 통유리창 너머를 한동안 내다봤다. 한적하고, 특별할 것 없는 거리였다. 카페에 앉아 햇볕을 쬐는 것도 여배우에게는 쉬운 일만은 아닌 듯했다.

“볕이 정말 좋은데, 마침 사람도 별로 없어서요. 6월 햇볕이 이렇게 사랑스럽구나. 그래서 (연예인들이 요즘) 결혼들을 하나? 결혼한 중학교 친구가 있거든요. ‘소박한 결혼’ 얘기가 나왔는데, 저한테 ‘너는 드레스 자주 입잖아!’ 그러더라고요. ‘그럼 결혼을 여러 번 하든지!’ 그랬죠. 차 한잔 하실래요?”

2일 서울 종로구 소격동의 행인의 시선이 닿지 않는 카페 지하에서 그녀는 묻지도 않은 얘기를 재미있다는 듯이 했다. 4일 개봉하는 영화 ‘은밀한 유혹’에서 임수정은 위험하지만 큰돈을 만질 수 있는 제안을 받아들이는 여자 지연 역으로 나온다. 지연은 요트 위에서 평소의 자신과는 다른 모습으로 누군가를 유혹하게 된다. 평범한 일상을 포기하고 관객을 유혹하는 여배우라는 직업과 지연의 모습이 겹쳤다.

“닮았네요. 배우도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지만 진짜 제 모습이 아닌 모습으로, 계속 다른 캐릭터로 사람들을 만나니까요. 내가 영화 속 지연이라면 그 제안을 받아들이지는 않았을 거 같은데. 나를 드러내면서 솔직하게 사는 게 가장 행복한 거 아닐까요. 저도 평소 돌아다니고 싶을 때는 돌아다녀요. 전시회도 보러 가고, 운동도 하고, 꽃꽂이도 배우러 가고. 20대에는 인정받고 싶은 욕망이 (양손을 한껏 펼치며) 이만큼 가득해서 진짜 나와의 괴리감이나 헛헛한 감정도 있었지만 지금은 마음에 여유가 생겼어요.”

임수정은 30대 중반이다. 캐릭터를 확장하며 ‘롱런’하는 배우와 대중의 기억 속으로 사라지는 배우가 갈리는 시기다. 그녀는 일찍부터 ‘사이보그지만 괜찮아’(2006년) ‘각설탕’(2006년) ‘김종욱 찾기’(2010년) ‘내 아내의 모든 것’(2012년) 등에서 정신질환자, 기수(騎手), 무대감독 등을 맡아 털털하거나 심지어 망가진 모습까지 연기해 왔다. 그러나 임수정의 연관검색어 1위는 아직도 ‘나이’다. 대중의 사랑을 받아 온 ‘동안 미모’가 역으로 다양한 배역을 맡는 데 걸림돌이 될 수도 있을 테다.

“‘임수정’ 하면 그래도 임수정만의 색이 있다는 말을 듣고 싶었어요. 나름 고군분투하면서 여러 장르를 넘나들고, 마냥 예쁘지만은 않은 캐릭터를 하면서 노력해 왔어요. 지금 인정받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3년 만의 복귀작인 ‘은밀한 유혹’도 멜로에 스릴러가 혼합돼 있다. 그러나 영화 전반부 멜로의 심리묘사가 촘촘하지 못하고, 남자 주인공 성열(유연석)에게 이끌려가는 지연의 속내가 보이지 않아 답답하다. 임수정은 “연기하면서 ‘욕망을 어디까지 드러낼 것이냐’가 가장 어려웠다”며 “지연의 욕망이 연기에서 튀어나오려고 하면 감독님이 자꾸 ‘내려라’라며 드러내는 것을 자제하기를 원했다”고 말했다.

임수정은 본인이 즐거워하는 배역과 대중이 원하는 캐릭터 사이에 차이가 있다고 말했다. 그녀는 “‘행복’(감독 허진호)은 지금 봐도 좋은데, 그 영화 속 은희처럼 여리면서도 포용하는 모성적인 캐릭터를 대중이 나에게 원하는 것 같다”며 “하지만 누군가를 흉기로 ‘훅’ 찌르고 쓱 닦아낸 뒤 백에 넣고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얌전히 앉아 있는 그런 ‘진짜 나쁜 여자’ 캐릭터를 해보고 싶다”고 말했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은밀한 유혹#임수정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