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에 다가갈수록 마주치는, 사랑하는 사람들의 ‘두 얼굴’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2월 5일 03시 00분


코멘트

美영화 ‘혼스’와 日영화 ‘갈증’

영화 ‘혼스’(위쪽 사진)와 ‘갈증’(아래 사진)은 관객을 불편하게 만드는 작품들이다. 세상이 이 모양이라면 과연 연인을 만나거나 가족을 이루는 게 맞을지 의문이 든다. 허나 어쩌면 그걸 해결하는 단 하나의 대안 역시 사랑이 아닐까. 선택은 각자의 몫이다. 봉봉미엘·찬란 제공
영화 ‘혼스’(위쪽 사진)와 ‘갈증’(아래 사진)은 관객을 불편하게 만드는 작품들이다. 세상이 이 모양이라면 과연 연인을 만나거나 가족을 이루는 게 맞을지 의문이 든다. 허나 어쩌면 그걸 해결하는 단 하나의 대안 역시 사랑이 아닐까. 선택은 각자의 몫이다. 봉봉미엘·찬란 제공
“인간은 짐승이다. 솔직히 인간을 다른 동물보다 더 높은 위치에 올려놓을 아무런 근거가 없다.”(스티븐 로클리 미국 하버드대 의대 교수)

과연 그럴까. 미국 영화 ‘혼스’와 일본 영화 ‘갈증’을 보면 인간이 짐승보다 훨씬 못할지도 모른단 생각이 든다. 둘 다 동명소설이 원작이다. 어느 날 갑자기 주인공 머리에서 ‘뿔’이 자라는 혼스, 역시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진 딸을 찾아 나선 아버지를 다룬 갈증. 두 영화는 진실에 다가갈수록 사랑하는 사람들의 ‘실체’를 마주하는 가혹한 운명을 그렸다는 공통분모를 지녔다. 모두 18세 이상 관람가.

○ 혼스, 사랑이란 이름의 무게

“죽을 때까지 사랑할게.”(이그·대니얼 래드클리프)

“내가 죽을 때까지만 사랑해줘.”(메린·주노 템플)

영화 서막을 여는 대사는 여러모로 의미심장하다. 어릴 때부터 서로만 바라본 커플 이그와 메린. 하지만 메린이 시체로 발견되며 정말 ‘죽음’이 그들의 사랑을 파고든다. 사건 전날 메린과 다툰 뒤 만취했던 이그는 용의자로 지목되고, 억울해하던 이그는 어느 날 아침 머리에서 뿔이 나기 시작한다.

모두가 악마라 비난한 남자가 진짜 악마처럼 뿔이 솟는 혼스는 얼핏 황당무계하다. 게다가 뿔이 생긴 뒤 사람들은 뭔가에 홀린 듯 그에게 감춰뒀던 흑심을 털어놓는다. 심지어 아버지와 어머니조차. 그들의 속내를 알게 되며 고통에 몸부림치는 이그. 조금씩 드러나는 무거운 진실을 그는 감당할 수 있을까.

이 작품의 묘미는 의외성이다. 농담 같은 설정인데 무겁고, 사랑 얘긴데 잔혹하다. 더 뜻밖인 건 주연을 맡은 래드클리프다. ‘해리 포터’ 잔상 탓인지 꽤 많은 후속작을 찍었는데도 이미지가 흐릿했는데, 혼스에서 제대로 ‘포텐’(포텐셜·가능성)이 터졌다. 어쩌면 아역배우 출신의 연기자가 대단한 배우로 발돋움하는 순간을 목격하는 기회일지도.

○ 갈증, 본능이란 위선의 그늘

전직 형사 아키카주(야쿠쇼 고지)는 전처인 기리코(구로사와 아스카)로부터 실종된 딸 가나코(고마쓰 나나)를 찾아 달란 부탁을 받는다. 착하고 예쁜 모범생 딸인지라 별걱정 없이 주위 사람들을 만나는데, 그들의 입을 통해 드러나는 딸의 실체는 충격을 넘어서 두렵기까지 하다.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2006년) ‘고백’(2010년)을 연출한 나카시마 데쓰야 감독의 세계관은 원래가 스산했다. 화면 구성이나 편집은 세련됐지만, 인간에 대한 시선은 불편하기 짝이 없다. ‘말종’이라 불러도 좋을 캐릭터가 쏟아지는데, 갈증 역시 그 범주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이 강력한 이야기를 완벽한 전율로 끌어올리는 건 아키카주와 가나코의 힘이다. ‘쉘 위 댄스’(1996년), ‘실락원’ ‘우나기’(이상 1997년)로 국내에도 친숙한 일본의 ‘국민배우’ 야쿠쇼야 믿고 보는 연기자니 패스. 고마쓰는 갈증이 데뷔작인데 엄청난 에너지를 뿜어낸다. 신인 배우가 천사와 악마를 이리도 매끄럽게 넘나들다니, 물건 하나 나왔다 싶다. 여기에 오다기리 조와 쓰마부키 사토시, 나카타니 미키의 출연은 보너스.

이런 좋은 배우들을 데리고 감독이 완성한 현대사회는 말 그대로 약육강식의 정글이다. 여기엔 규칙이란 게 없다. 강자의 놀음에 약자는 휩쓸릴 뿐. 그 속에서 아버지, 그리고 가족은 어떤 선택을 해야 하나. 그 끔찍한 갈림길에다 감독은 관객들을 내동댕이친다.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혼스#갈증#미국 영화#일본 영화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