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벨 “미국유학 시절 가족사진 옆엔 항상 태극기”

  • Array
  • 입력 2013년 8월 8일 07시 00분


이사벨은 남학생들에게 음악을 가르치면서 자신에게 남자 톤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고 한다. 4옥타브를 넘나드는 강한 성대를 가진 이사벨의 능력은 무한대다. 사진제공|퓨리팬 이엔티
이사벨은 남학생들에게 음악을 가르치면서 자신에게 남자 톤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고 한다. 4옥타브를 넘나드는 강한 성대를 가진 이사벨의 능력은 무한대다. 사진제공|퓨리팬 이엔티
■ ‘무한대의 목소리’로 대한민국을 노래하다…팝페라 가수

동아시안컵 한일전서 애국가 부른 그녀
어린 나이 유학…그리움 달래준 애국가

美 최초 팝페라 그룹 ‘윈’ 리드싱어 출신
한국서 인정 받고자 공연 왔다 눌러앉아

아시아가수 첫 아카데미 시상식 공연 꿈

7월28일 서울 잠실에서 열린 2013년 동아시안컵 축구 한일전에서 청아한 고음으로 애국가를 부른 가수. 6월 종영한 MBC 드라마 ‘구가의 서’ 시청자의 귀를 맑고 깊은 목소리로 사로잡은 ‘마이 에덴’의 가수.

팝페라 가수 이사벨(조우정·33)의 이야기다. 이사벨은 “컨디션이 좋으면” 낮은음자리 솔에서 높은음자리 솔까지 인간이 낼 수 있는 최대 영역인 4옥타브를 구현한다. 세계적인 성악가 파바로티는 3옥타브, 대부분의 소프라노 전공자는 2옥타브 반에서 3옥타브 사이를 오간다. 6개월마다 검진하는 성대전문의는 “보통 사람들에 비해 상당히 크고 강하며 모양도 특이한 성대”라고 감탄했다. 이런 이사벨을 두고 음악계에선 “무한대의 목소리”라 평한다. 이사벨은 “이런 목소리를 주신 부모님에게 감사한다”며 수줍은 미소를 보였다.

더 놀라운 건 화려한 이력과, 또 이를 바탕으로 누릴 수 있는 안정을 포기하고 척박한 한국 팝페라 시장에 뛰어들었다는 점이다. 이사벨은 미국 뉴잉글랜드 음악대학을 졸업하고 보스턴 음악대학원을 거쳐 카네기홀 독창회로 이름을 알렸다. 미국 3대 오페라단 중 하나인 샌프란시스코 오페라단에서 프리마돈나로 활동하며 세계적 명성도 얻었다. 은사의 권유로 팝페라로 전향해 2006년 ‘윈’이라는 미국 최초의 팝페라 그룹 리드 싱어로 싱글도 냈다. ‘윈’으로 2008년 한국 공연을 왔다가 “눌러 앉았”다. 세계 성악계의 주목을 받던 유망주가 국내의 작은 무대에 오르는 걸 두고 여기저기서 “왜 사서 고생을 하느냐”고 물었다.

“주위에선 ‘미국에서 더 활동하다가 귀국하는 게 낫지 않느냐’고 했지만, 한국에서 먼저 인정받고 싶었다. 그 선택에 전혀 갈등은 없었다.”

이사벨은 7세 때 라디오에서 들었던 마리아 칼라스의 ‘어느 개인 날’(오페라 ‘나비부인’의 아리아)을 듣고 “하늘의 천사 같은 소리”라는 감탄 끝에 가수를 꿈꾸게 됐다. “오페라 문화를 빨리 알고 싶어” 부모를 졸라 조기유학에 올랐다.

12세 어린 나이에, 동양인이 거의 없는 지역(콜로라도)에서 유학 생활을 하며 이사벨은 가족과 고국에 대한 소중함을 가슴 깊이 새기게 됐다. 기숙사 벽에는 항상 가족사진과 태극기를 붙여 놓았고, 나지막이 애국가를 부르는 일이 일상이 됐다. 콜로라도 켄트고교 재학 중에는 한국인의 빈곤한 생활상을 담은 도서로 역사수업을 하는 학교 측에 분노해 사흘간 ‘결석투쟁’을 했고, 고도로 현대화한 최근의 한국의 모습을 담은 도서로 교체하게 만들었다. 애국가를 부르며 커다란 태극기 문양의 반지를 착용한 것도 평소 “태극기를 활용한 상품을 많이 만들어 전 세계가 친근감을 갖게 만들고 싶다”는 생각의 실천이었다.

이사벨은 한때 걸그룹 멤버가 될 뻔도 했다. 팝페라에 대한 기획자들의 이해도가 낮았고, 3인조 걸그룹으로 데뷔시키려는 과거 기획사의 결정에 마음고생을 했다.

“할 수만 있다면 아시아를 대표하는 팝페라 가수로서 충분히 능력이 있고, 월드투어도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다.”

이사벨의 올해 목표는 “국내 드라마 시상식 공연”이다.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 공연이란 목표의 첫 걸음이다.

“아카데미 시상식에선 크로스오버 가수들이 주로 공연을 한다. 아시아 가수로는 최초로 그 무대에 서고 싶다. 그러기 위해선 우선 대한민국에서 인정을 받아야 한다.”

소박하지만 논리적이고 단단한 꿈을 꾸고 있는 이사벨은 내년 봄 정규앨범을 발표한다.

“나만의 확실한 색깔을 가진 가수가 되고 싶다. 그리고 나의 무대에서 ‘대한민국’을 느낄 수 있도록 하겠다.”

김원겸 기자 gyummy@donga.com 트위터@ziodadi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