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한 미장센 vs 평범한 B급액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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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3년 3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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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욱-김지운 할리우드 진출작 비교

첫술에 배 안 불렀다. 적어도 흥행 면에서는 그렇다. 나란히 할리우드 진출 작품을 선보인 박찬욱, 김지운 감독. 제작비 1200만 달러(약 131억 원)를 들인 박 감독의 ‘스토커’(지난달 28일 국내 개봉)는 3일까지 24만641명을 모았다. 박 감독의 명성에 비하면 초라한 수치다. 김 감독의 3000만 달러짜리 ‘라스트 스탠드’는 더욱 비참하다. 지난달 21일 개봉한 ‘라스트…’는 6만4989명을 모으는 데 그쳤다.

미국에서의 성적도 마찬가지다. 1일 개봉한 ‘스토커’는 현재 흥행순위 20위권 밖으로 밀려 있다. ‘라스트…’는 1월 18일 개봉해 3일까지 1205만 달러를 벌어들였다. 초반 흥행순위는 5, 6위였지만 첫 주말을 지나며 순위가 뚝 떨어졌다. ‘라스트…’는 극장 수익만으로는 손익분기점을 넘기 어려워 보인다.

블록버스터 액션 영화에 비하면 두 영화는 작은 작품이다. 할리우드에서 중하위 수준이다. 수억 달러에 이르는 작품이 흔한 미국에서 작은 예산으로는 흥행에서 불리한 것이 사실이다. 이런 점에서 두 감독의 성과는 작품의 ‘질’로 평가해야 할 것 같다.

○ 박찬욱스러운 ‘스토커’

‘스토커’에서 인디아가 호감을 느끼는 삼촌과 피아노를 치는 장면. 두 사람 사이의 성적 긴장감이 극에 달한다. 이십세기폭스코리아 제공
‘스토커’에서 인디아가 호감을 느끼는 삼촌과 피아노를 치는 장면. 두 사람 사이의 성적 긴장감이 극에 달한다. 이십세기폭스코리아 제공
박 감독은 할리우드 데뷔작이지만 주눅 들지 않고 자신만의 색깔을 냈다. ‘스토커’는 화려한 색채감과 미장센(화면 속 등장인물이나 사물의 주도면밀한 배치를 통한 연출)으로 “역시 박찬욱”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박 감독의 진가가 드러나는 몇 장면이 있다. △인디아 스토커(미아 바시코프스카)가 학교 수업을 마치고 걷는 길이 다른 길과 오버랩되며 시간의 흐름을 나타내는 장면 △인디아가 빗겨 주던 엄마(니콜 키드먼)의 머리가 숲으로 변하는 장면 △침대에 누워 팔다리를 아래위로 흔드는 인디아와 피아노 위 어지럽게 움직이는 메트로놈이 겹쳐지는 장면은 누가 봐도 ‘박찬욱스럽다’.

‘스토커’는 섬세하고 여성적인 영화다. 위 장면들은 소녀에서 여자로 성장통을 겪는 인디아의 욕망과 두려움을 잘 표현한다. 거부할 수 없는 운명 앞에 무기력한 인간 내면의 갈등을 깊이 있게 파고든다. 박 감독 특유의 잔인한 장면들이 있지만 여성 관객이 영화를 호평하는 이유다.

이승무 한국예술종합학교 영화과 교수는 “박 감독은 감독의 특수성을 인정하고 스카우트를 한 경우로 보인다. 그래서 (감독의) 색깔이 나온 것 같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한국, 미국 합작 ‘워리어스 웨이’를 연출하며 할리우드를 경험한 바 있다.

○ ‘라스트 스탠드’는 무채색

대도시의 유능한 경찰에서 시골의 보안관이 된 아널드 슈워제네거. ‘라스트 스탠드’는 슈워제네거의 원맨쇼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CJ E&M 제공
대도시의 유능한 경찰에서 시골의 보안관이 된 아널드 슈워제네거. ‘라스트 스탠드’는 슈워제네거의 원맨쇼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CJ E&M 제공
‘달콤한 인생’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 ‘장화, 홍련’…. 김 감독이 선보였던 스타일리시한 작품들이다. 하지만 ‘라스트 스탠드’에서는 아널드 슈워제네거만 보이고 김 감독은 안 보인다.

‘라스트…’의 스토리는 단순하다. 스스로 “나는 늙었다(old)”고 말하는 시골 보안관(슈워제네거)이 헬기보다 빠른 슈퍼카를 타고 국경을 넘어 도망치려는 마약왕을 저지하는 이야기다. 성공의 관건은 단순한 스토리로 얼마나 그럴듯하게, 색다르게 만드느냐는 것이었다. 아쉽게도 김 감독의 장기인 유머와 미술적 감각이 돋보이는 화면은 영화에서 찾아볼 수 없다. 평범한 B급 액션물에 그친 느낌이다.

정지욱 평론가는 “감독은 어떤 상황에서도 시스템을 장악하고 자기 색깔을 내는 게 생명”이라며 “이 정도라면 굳이 한국 감독을 스카우트할 이유가 없을 것 같다”고 평가했다.

민병선 기자 bluedot@donga.com
#박찬욱#김지운#스토커#라스트 스탠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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