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남자야? 오빠잖아” 아슬아슬 금지된 사랑 자꾸만 눈이 가네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3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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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매간 사랑, 드라마 소재로 인기

시각장애인인 오영(송혜교)은 친오빠라며 갑자기 나타난 오수(조인성)와 함께 지내며 닫힌 마음을 열게 되고 그를 친오빠로 받아들인다. 이 가짜 남매의 달달한 대화들은 외줄타기처럼 위태로워 보인다. 셸위토크 제공
시각장애인인 오영(송혜교)은 친오빠라며 갑자기 나타난 오수(조인성)와 함께 지내며 닫힌 마음을 열게 되고 그를 친오빠로 받아들인다. 이 가짜 남매의 달달한 대화들은 외줄타기처럼 위태로워 보인다. 셸위토크 제공
“왜 같이 누워서 자면 안 되는데? … 너 남자야? 오빠잖아. … 만지면 안 돼?”

동생이 기어이 오빠를 옆에 누인다. 오빠의 긴 손가락이 잠든 여동생의 뺨을 스친다.

“오빠 가지 마….” 잠꼬대인가. 여동생이 가슴팍으로 파고들자 오빠의 눈빛이 흔들린다.

요즘 안방극장에서 가장 달달한 러브 스토리는 남매간의 애틋함을 그린 SBS 수목드라마 ‘그 겨울, 바람이 분다’이다. 재벌의 외동딸로 유일한 후계자이자 시각장애인인 오영(송혜교), 그리고 어릴 적 헤어졌다 나타난 친오빠인 척하며 그의 돈을 노리는 오수(조인성)의 야릇한 줄다리기를 그린 드라마다.

솜사탕을 사이에 두고 입맞춤을 하는 ‘솜사탕 키스’부터 한 침대에서 (손만 잡고) 자다 일어나 바닷가 해돋이를 함께 맞는 것까지 둘이 남매라는 것만 빼고는 여느 연인과 다를 바가 없다. ‘그 겨울···’의 시청자 게시판엔 “오빠와 동생 사이치곤 너무 달달하다” “아직까지 여동생은 친오빠라고 알고 있는데 뭔가 조금 그렇다” 등 남매간의 성적 긴장을 언급하는 글이 많다.

남매간 사랑 얘기는 1990년대 이후 잊을 만하면 등장하는 드라마의 주요 소재이다. KBS ‘사랑을 위하여’(1992년)와 ‘가을동화’(2000년), MBC ‘다모’(2003년), SBS ‘하늘이시여’(2005년)가 대표적인 사례. 이들은 모두 출생의 비밀을 모르는 이복 남매가 서로 사랑하다 한 핏줄임을 깨닫고 비극적 결말을 맞는다는 줄거리로 시청률도 높았다. ‘그 겨울···’은 남녀 주인공이 가짜 남매 관계로 설정됐지만 오영이 오수를 친오빠라 믿고 이성적 매력을 느낀다는 점에서 전작들과 같은 맥락이다. 지난주 시청률은 13.9%로 경쟁 드라마를 제치고 1위를 기록했다(AGB닐슨미디어리서치 자료).

인류학에서는 남매간 사랑 이야기의 원형을 오누이가 등장하는 전래설화에서 찾는다. 큰 홍수로 남매만 살아남아 결혼해 인류의 씨가 되었다는 남매혼 설화, 비에 젖은 누이의 몸을 보고 성적 충동을 느낀 오라비가 죄책감에 남근을 돌로 찍어 죽자 누이도 따라 죽었다는 달래고개 설화가 대표적이다. 강정원 서울대 인류학과 교수는 “남매가 인류의 기원이 되었다는 오누이 설화는 남방계통에서 흔하다. 오누이 설화가 한국 드라마의 모티프로 설정돼 이어져 왔을 수 있다”고 해석했다.

남매의 사랑을 다룬 이야기가 대중문화에서 끊임없이 변주되며 주목받는 이유도 남매 사이가 본능적으로 가장 가까운 관계이면서도 문화적으로 가장 강력하게 금지된 관계이기 때문이다. 신용욱 서울아산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남매간의 사랑, 그리고 그런 관계에 호기심을 갖는 것은 인간의 타고난 심리적 행동 유형인 ‘원형’으로 볼 수 있다”며 “사회적으로 금기시되어 억제됐지만 남매는 신체적으로 가장 닮아 있고 살아온 환경도 비슷해 서로를 잘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라고 설명했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남매간의 금지된 사랑이라는 금기를 깨는 드라마를 보면서 시청자들은 카타르시스를 느낀다”며 이 같은 드라마에 대한 시청자들의 관심을 “인위의 세계에서 근원적인 세계로의 귀환, 원초적 관계의 추구”라고 해석했다.

드라마 속에서 반복되는 남매의 사랑 이야기를 비판하는 목소리도 있다. 배국남 문화평론가는 “남녀 간 사랑을 극단으로 몰고 갈 수 있는 장치가 출생의 비밀, 금기에 대한 도전이다. 이런 스토리텔링이 계속 나오는 건 한국 드라마 속 극적 장치의 소재가 빈곤하다는 증거다”라고 지적했다.

전주영 기자 aimhigh@donga.com
#드라마#남매#그 겨울#바람이 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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