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민수 “여우주연상? 심사위원 눈빛으로 받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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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9월 24일 07시 00분


영화 ‘피에타’로 재조명받고 있는 배우 조민수. 베니스 국제영화제의 유력한 여우주연상으로 거론됐던 그는 “거품은 금방 빠지지 않겠느냐”며 겸손해 했다. 김민성 기자 marinboy@donga.com 트위터@bluemarine007
영화 ‘피에타’로 재조명받고 있는 배우 조민수. 베니스 국제영화제의 유력한 여우주연상으로 거론됐던 그는 “거품은 금방 빠지지 않겠느냐”며 겸손해 했다. 김민성 기자 marinboy@donga.com 트위터@bluemarine007
■ 베니스영화제 황금사자상 ‘피에타’의 여인 조민수

해외영화 관계자들 높은 관심 뿌듯
호텔 로비에서도 고개 쳐들고 다녀

김기덕 ‘불편한 감독’ 편견 있었는데
맑은 미소에 17년만의 복귀작 수락

신바람 난 김감독, 어찌나 말 많은지
영화자랑은 내가 할테니 그만…하하

“힘들 때마다 생각하는 문구가 있죠. ‘잔잔한 바다는 훌륭한 뱃사공을 만들 수 없다’. 이 말로 위로하고 살 때가 많아요.”

배우 조민수(47)에게 ‘연기한 지 30년이 되어 간다’고 물었더니 이런 대답이 돌아왔다. 물음이 끝나자마자 “30년? 아니야 26년인데”라고 선을 긋더니 “30년은 너무 늙어 보이잖아”라며 얼굴을 찡그렸다.

새삼스레 발견되고 조명받는 게 배우의 숙명이라 해도 최근 조민수에게 쏟아지는 스포트라이트는 강렬하다. 17년 만에 출연한 영화 ‘피에타’(감독 김기덕)로 베니스 국제영화제 황금사자상을 받은 뒤 한층 고조된 관심이다.

영화제 기간 외신을 통해 조민수가 여우주연상의 강력한 후보라는 보도와 전망도 쏟아졌다. 폐막 뒤에는 ‘영화제 규정 탓에 황금사자상은 받고 여우주연상은 놓쳤다’는 평가까지 나왔다. 결과야 어찌됐든 조민수는 “심사위원들의 눈빛으로 모든 걸 받았다”고 했다. 그러면서 “베니스 여우주연상을 받으려다 못 받은 사람인데 또 어떤 상을 바라겠느냐”고도 했다.

● “코카콜라에서 펩시로 확 몰리는 것처럼”

조민수는 1995년 ‘맨’ 이후 영화 복귀작으로 ‘피에타’를 택하며 고민의 과정을 거쳤다. “너무 작가주의 감독”이라고 생각할 만큼 조민수도 김 감독에 대한 ‘선입관’ 혹은 ‘평가’를 갖고 있었다.

“내겐 너무 불편한 감독이야. 영화도. 일단 감독 얼굴부터 보겠다고 했는데, 영화에서 보이는 그런 사람이면 할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런데 감독이 맑게 다가왔다. 시나리오는 또 그게 아니고…. 불편해서 ‘이런 식이면 못 한다’고 한 뒤 의견을 나눴다.”

시작할 때는 결과를 예측할 수 없었다. 한국영화사에 처음 일어난 일을 몸소 겪은 덕분에 조민수는 재조명받고 있다. 그래도 지금의 상황을 냉정하게 정의했다.

“그동안 잊혀진 것도, 연기를 멈춘 것도 아닌데. 다만 관심이 없었던 거지. 코카콜라 먹다가 펩시 나오면 펩시로 확 몰려가잖아. 어쩔 수 없는 걸 잘 알고 있다. 거품이지. 그래서 빠지겠지. 살면서 커다란 추억이 생긴 것, 하나다. 그래도 우리를 상품으로 본다면 내 상품가치는 좀 올라갔구나. 그 정도?”

황금사자상 수상 무대에 올라 조민수의 머릿속을 채운 생각은 하나였다.

“아싸! 우리가 해냈어!”

해외 영화 관계자들이 몰려들어 감독과 자신을 바라봤다. “국가대표 같았다는 표현은 거짓말이 아니다”고 조민수는 말했다.

“호텔 로비에서 사람들이 쳐다보면 고개를 쳐들고 다녔다. 우스갯소리로 ‘베니스 놀이’한다고 했는데 무조건 당당하게 보이고 싶었다.”

● 김기덕 감독과는 또 작업하고 싶은데…

베니스 국제영화제에서 돌아온 뒤 김기덕 감독은 조민수에게 차기작 출연을 다시 제의했다. ‘시나리오부터 읽어보라’는 감독의 제안을 그는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너무 빨리 들여가려고 하니까. 하하! 지금 나는 정신이 없고, 다시 ‘피에타’를 돌아보고 싶다. 어떻게 보면 전부 거품일 수 있고 자세히 돌아보고 싶은데, 갑자기 또 하자니까 ‘시나리오 안 본다’고 했지, 뭐…. 시간이 지난 뒤에 좋은 시나리오가 있다면 함께 하고 싶다.”

김기덕 감독을 ‘꽉 잡고 있다’는 세간의 평가에 대한 입장도 유쾌했다.

“죄송하다.(웃음) 내 눈에는 (감독에게)쌓여 있는 게 많이 보인다. 외국에선 대단히 대접받는 감독인데, 한국에서는 부모들이 칭찬해 주지 않는 것 같고. 이번엔 너무 말을 많이 하려고 하고, 자랑도 자기 입으로 하려고 하니까. 자랑은 내가 대신해 주겠다고 말려도 참….”

영화제가 끝난 뒤 조민수는 김 감독에게 “책임감이 더 따르는 감독이 됐다”고 말해주었다. 이제 감독과 배우의 관계를 넘어 영화를 함께 만들고 생각을 나누며 응원하는 ‘동지’가 된 셈이다.

이해리 기자 gofl1024@donga.com 트위터@madeinhar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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