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日-동남아 K-pop 유학생 한국행 러시

강남 학원 다니는 스즈키 “연예인 양성 시스템, 日보다 한국이 더 체계적”
중국서 온 가오산 “기획사 오디션 준비하며 한국 대학 연극영화과 목표”

스즈키 사토코 씨는 “한국에는 노래 잘하는 사람이 워낙 많아서 기획사 오디션에 통과하기 위해서는 학원에 다니면서 준비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난 힘이 둘 때 미욘∼ ‘로키 인 마이 라이프(Lucky in my life)’∼, 구대가 꿈초로무 다가오네요….”

연예인 지망생들이 많이 다니는 서울 강남구 신사동의 한 학원. 7일 일본인 스즈키 사토코(鈴木怜子·23·게이오대 생명정보학부 신경과학과) 씨는 이 학원에서 첫 보컬 레슨을 받았다. 곡명은 그가 좋아하는 드라마 ‘꽃보다 남자’의 OST 수록곡 ‘Lucky’. 강사는 “발음은 조금 서툴지만 고음이 매끄럽다”고 평가했다.

스즈키 씨의 꿈은 한국에서 육성돼 한국에서 스타로 뜬, 그런 가수다. 그는 중학생 때 이미 일본 아이돌그룹 ‘에인절 아이스’ ‘하라주쿠 론차즈’에서 활동했다. 지난해 8월 연세대에 교환학생으로 온 뒤 국내 케이블 방송 오디션 프로그램에 지원하기도 했다. 보컬 트레이닝을 받으면서 현재 신촌에 있는 학원에서 댄스 교습도 받고 있다. 두 가지 교습에 매달 30만 원 정도가 들어간다. 그는 “한국 연예인 양성 시스템이 일본보다 체계적”이라며 “학원에 다니면서 SM, JYP, YG 등에서 오디션을 볼 계획”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케이팝 유학을 온 가오산 양. 타국에서 혼자 지내는 게 외롭고 연습도 힘들지만 가수의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넘어야 할 과제다.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나이 때문에 한국에서의 도전을 마지막 기회로 여기고 있다는 그는 “이번 도전에 실패하면 전공을 살려 취업하거나 결혼하라는 집안의 ‘압력’도 있다”며 웃음 지었다.

스즈키 씨는 케이팝(K-pop·한국대중가요)이 해외에서 인기를 얻으면서 생겨나고 있는 이른바 ‘케이팝 유학생’의 한 사례다. 유명 연예인이 다녔다는 학원마다 요즘 ‘제2의 소녀시대’ ‘제2의 빅뱅’을 꿈꾸는 중국과 일본, 동남아시아 출신 수강생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과거에도 국내에서 활동하는 해외 국적 연예인들이 없진 않았지만 기획사가 해외에서 캐스팅하는 형태가 일반적이었기 때문에 요즘 외국 케이팝 유학생들의 ‘자발적 기획 유학’과는 차이가 있다.

이솔림 SM아카데미 원장은 “케이팝이 뜨면서 해외 언론을 통해 한국 고유의 연예인 양성 시스템으로 기획사뿐 아니라 학원이 함께 부각됐다”고 말했다. 이지영 JYP 신인발굴팀장은 “본사에서 한 달에 두 번 여는 정기 오디션 참가자의 10%가 외국인”이라며 “일본이나 중국, 대만, 동남아 등에서 자비를 들여 오디션을 받기 위해 찾아온다”고 전했다.

국내 기획사가 10대 위주로 연습생을 뽑기 때문에 케이팝 유학생 중에는 10대들도 적지 않다. 올해 18세인 중국인 가오산(高)) 양도 그중 한 명. 지난해 6월 한국에 유학을 온 그는 한국어를 배우기 위해 경희대 국제교육원에 다니며 월 40만원 정도를 들여 연예인 양성학원에서 일주일에 3번 보컬과 댄스교육을 받고 있다. 학교를 자퇴하고 한국으로 가겠다고 하자 집안의 반대가 심했다. 그는 “한국에서 가수가 되려면 10대에 데뷔를 해야 한다”며 부모를 설득했다.

“소녀시대의 태연처럼 보컬과 댄스를 다 잘하는 가수가 되고 싶습니다. 기획사 오디션을 준비하면서 한국에 있는 대학의 연극영화학과나 실용음악과에 진학하겠습니다.” 가수가 되기 위해 한국행을 선택한 가오 양의 당찬 포부다. 그러나 연예인이 되는 길은 케이팝 유학생들에게도 ‘좁은 문’이긴 마찬가지다.

구가인 기자 comedy9@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