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기자의 인증샷] ‘조로’ 박건형 “나는 매일 무대에서 목숨을 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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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11월 28일 15시 5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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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퍼드리겠습니다. 있는 거 없는 거 싹싹 긁어서 대접할 테니, 맛있게 들고 가세요.”

맛집 식당 사장님 말처럼 들리지만 이는 배우 박건형의 당당한 출사표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이후 거의 1년 만에 뮤지컬 ‘조로’로 무대에 선 박건형. “1년 동안 무엇을 했나”라는 질문에 그는 “재충전으로 부족해 아예 엔진을 싹 갈았다”라고 했다. ‘조로’는 박건형이라는 배우의 새 출발과도 같은 작품이다.

올드 세대에게는 ‘쾌걸 조로’로 더 익숙한 ‘조로’는 한국 초연되는 외국 라이선스 뮤지컬이다. 박건형은 뮤지컬계 최강의 티켓파워 조승우, 일본 명문 극단 ‘사계’ 출신인 김준현과 함께 ‘조로’에 캐스팅됐다.

평소에는 쾌활하고 자유분방한 청년 디에고로 살아가지만, 일이 벌어지면 조로로 변신해 악당들의 배에 힘찬 ‘Z’를 새기고 다니는 쾌걸. 박건형은 “일상의 박건형이 디에고라면, 배우로서의 모습은 조로”라고 비유했다. 명쾌하다.

캐스팅이 발표되기 전부터 팬들은 박건형을 ‘조로에 어울리는 배우 1순위’로 꼽았다. 굉장히 기뻤을 것 같지만 사실은 그렇지도 않았단다.

“그런 얘기가 나왔을 때는 이미 조로 캐스팅이 확정된 상태였거든요. 만약 제가 조로를 하지 않았다면 기분이 좋았겠죠. 하지만 하게 됐으니 엄청나게 부담이 될 수밖에요.”

문근영과 함께 출연했던 영화 ‘댄서의 순정’ 때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 사람들은 “뮤지컬 배우니까 당연히 춤을 잘 출 것”이라고 생각했다. 두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하루 16시간씩 춤 연습을 했다. 같이 연습을 하지만, 문근영은 초보자였고, 자신은 댄스 챔피언 역할이었다. 외롭고, 무서웠다.

박건형을 아는 사람은 안다. 평소에는 술도 잘 먹고, 자유롭게 지내지만 일단 작품에 들어가면 캐릭터처럼 산다. ‘조로’로 살고 있는 박건형은 어떨까.

“감추고 있던 걸 좀 더 오픈하는 생활이랄까요. ‘조로’는 액션이 많아요. 고공 와이어 장면도 있죠. 사실 전 고소공포증, 폐쇄공포증이 있어요. 와이어를 탈 때 무서워하는 모습을 배우들에게 보여주었습니다. 옛날 같았으면 티를 안 냈을 거예요.”

조승우가 다소 코믹하면서도 애틋한 ‘조로’라면 김준현은 세련되면서 심각한 분위기를 풍긴다. “박건형은 어떤 ‘조로’인가”라고 묻자 “분명한 것은, 전 조승우와 김준현 사이에 놓여 있지는 않습니다”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조로’라는 교과서를 보여주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라고 했다.

박건형에게 ‘지금까지 본인 최고의 공연’을 묻는 것은 우문이다. 그는 “오늘 공연이 최고”라고 대답한다. 무대에서 최선을 다하고, 내려와서는 생각한 점을 포스트잇에 적는다. 박건형은 “내일은 내일 공연이 최고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내일은 오늘과 또 다른 공연이 될 것이다.

박건형은 공연을 할 때마다 생각한다. ‘저 맨 뒤, 제일 싼 좌석에 앉은 관객이 어쩌면 100원, 200원 모은 저금통을 털어 오늘 처음으로 뮤지컬이란 걸 보러 온 사람일지도 모른다’라고.

단순한 볼거리가 아닌, 뭔가를 더 보여줘야 할 의무가 있기에 “매일 목숨을 걸고 무대에 오른다”고 했다. 그리고 공연이 끝나면, “오늘도 살아남았구나”하고 안도의 숨을 내쉰다.

뮤지컬 ‘조로’는 2012년 1월 15일까지 서울 한남동 블루스퀘어 삼성전자홀에서 공연한다.
어떤 공연을 보든 걱정하지 말 것. 그날 당신은 박건형 일생 최고의 공연을 보게 될 테니까.

○ ‘양기자의 인증샷’에서만 볼 수 있는 못 다한 이야기

박건형 배우와의 인터뷰는 서울 삼청동의 칼국수집(꽤 유명한 곳이라고 합니다)에서 진행되었습니다.

박건형 배우가 “칼국수 먹으면서 인터뷰하기는 처음”이라며 웃더군요. 하~! 사실은 기자도 처음입니다.

- 뮤지컬 ‘삼총사’에서 ‘달타냥’을 했다는 것이 좋은 점도 있겠지만 단점도 있을 것 같습니다. ‘삼총사’ 배우들이 “틀림없이 눈만 가린 달타냥일 것”이라는 말도 했죠. 부담은 없었나요?

상관없어요. 그런 것까지 부담을 느끼면 어떻게 하겠어요. 형님들(신성우, 김법래, 민영기)이 트위터에서 하신 얘기인데, 전 그럼 그래요. “형들이 뭘 알겠어. ‘조로’도 안 해봐 놓구선”. 흐흐흐

‘삼총사’ 때와 비교하면, 그때는 ‘달타냥까지 있으니까 적이랑 만나도 4 대 4잖아요. 우리 편이 있잖아요.조로는 혼자죠. 더 힘들어요. 1 대 10이 기본이니까. ‘삼총사’는 내가 못 하면 삼총사가 있어서 채워줄 수 있지만, ‘조로’는 제가 쓰러지면 10명이 달려들 테고, 경비병은 적이니까 봐주지도 않을 뿐더러 … 그게 외로움인 거죠.

- 연인 ‘루이사’와 집시여인 ‘이네즈’ 중 개인적으로 어떤 타이프의 여성에게 마음이 가는지 궁금한데요.

전 이네즈랑 루이사가 같은 인물이라고 생각해요.조로와 디에고가 같듯.한 인물에게 두 개의 자아가 있자면, 그걸 나누어 놓은 거죠.말괄량이고 모험심이 있는 루이사, 거기서 나아가서 솔직하게 사는 사람이 이네즈.

그나저나 ‘조로’에서는 처음 만난 배우가 많아요. 조정은도 처음이고 구원영, 이영미, 문종원, 최재웅, 조승우, 김준현 그리고 앙상블 배우들이 다 처음이에요. 김선영, 유미, 이수현 정도가 함께 했던 배우들이죠. 유미는 처음 뮤지컬(‘더 리허설’이라는 작품이었다)할 때 막내였어요. 제가 바로 그 위였고. (김)선영 누나는 ‘토요일밤의 열기’ 때 같이 했고.

- “사진을 찍을 때 왼쪽 얼굴이 잘 나온다고 계속 왼쪽 얼굴만 들이대면 사람들은 내 왼쪽 얼굴밖에 보지 못한다”라는 말을 언젠가 인터뷰에서 했습니다. 개인적으로 감동 받았어요. 사실 그 반대의 의견을 피력하는 배우도 만나 본 적이 있습니다. 잘 안 나오는 ‘오른쪽 얼굴’을 보여줄 수 있다는 건 용기겠지요?

두려움 극복프로젝트의 하나일 수도 있죠. 왼쪽만 자꾸 들이대면, 오른쪽이 너무 그늘지지 않을까요. 진짜로 못 생겨지지 않을까요. 두려운 것들을 자꾸 드러내야, 거기서 자유로워지지 않을까. 그런데 방송, 드라마하다보니까 그런 걸 계산은 좀 하고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하하하!좋은 감독을 만나면 그런 것까지 체크를 해준다는 거죠. 여하튼 이런 말을 하면, ‘네 얼굴에 그렇게 자신감이 있냐’하고 받아들이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 오늘 인터뷰를 하다보니 굉장히 진지한 인물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제가 가벼운 이미지가 좀 있잖아요. 유쾌하게 있으려고 하다 보니까. 저 사람한테는 고민도 없나보다 … 이런 거. 일부에게는 제가 무슨 ‘클럽 죽돌이’ 이미지도 있다고 …. 사실 전 전혀 모른다는 축인데. 전 포장마차같은 데를 좋아하는데 말이죠.

그런 얘기 들을 때마다 ‘세상 살기 정말 어렵다’싶어요. 나름 전 생각이 굉장히 많은 사람이에요. 진지한 쪽이죠. 좀 더 나이가 들면 그 진지함조차 유쾌하게 풀 수 있겠지만, 아직까지는 진지함을 진지하게 풀 수밖에 없어요. 기본적으로 저와 대화하는 사람들은 다섯 살 이상 형들이 많아요.

한번은 그랬죠. “형들하고 이제 못 놀겠어. 기 빨리는 거 같아. 형들은 나랑 놀면 좋겠지만”이라고. 그런데 언제 한 번은 (김)준수가 축구하자고 해서 나갔어요. 축구단 만들 테니까 나오라고 했죠. 가니까 제가 제일 큰 형인 거예요. 비스트, SS501 … 거의 다 아이돌이더라고요. 상대팀 단장이 (김)용만이 형이었는데, 형이 “네가 여기서 제일 큰 형이야?”하고 웃더군요.

끝나고 식당에 갔는데 “형님, 자리 여깁니다”하더라고요. 외롭고, 어색하고 ….‘내 또래나 어린 친구들과의 교류가 적었구나 … 그 또한 밸런스를 맞춰야겠구나’하는 생각이 확 들었죠.

사진제공|나무엑터스
스포츠동아 양형모 기자 ranbi@donga.com 트위터 @ranbi3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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