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재 기자의 무비홀릭]대종상 본심 20편 뚫어져라 살펴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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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10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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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익∼총알탄 ‘최종병기 화살’무생물 배우 중 압도적 주연상

영화 ‘고지전’에서 중대장을 연기한 배우 이제훈. 그는 가공할 만큼 작은 머리의 소유자다.
영화 ‘고지전’에서 중대장을 연기한 배우 이제훈. 그는 가공할 만큼 작은 머리의 소유자다.
최근 막을 내린 제48회 대종상영화제 본심 심사를 맡으면서 본심에 오른 한국영화 20여 편을 다시 보게 됐다. 후보작들을 ‘뚫어져라’ 살피다 보니 개봉 당시엔 보지 못했던 숨겨진 묘미를 찾아내는 ‘발견의 재미’를 경험할 수 있었다.

▽압권대사 부문=단연 ‘풍산개’였다. 풍산개가 그려진 북한담배를 꺼내어 무는 윤계상을 바라보며 북에서 온 여자(김규리)가 날리는 한마디. “그러고 보니 동무래 그 개새끼를 많이 닮았습네다. 오래전에 주인을 잃은 듯한 거이….” 하지만 최고 대사는 121분 러닝타임을 통틀어 단 한마디 대사도 날리지 않던 윤계상이 클라이맥스에서 터뜨리는 딱 두 음절짜리 절규 세트다. “으아, 으아, 으아!”(아, 분단의 비극과 아이러니를 담은 얼마나 함축적인 대사란 말인가.)

‘쩨쩨한 로맨스’에서 “혹시 우간다 포르노 본 적 있어요?”와 “정력과 테크닉을 겸비한 섹스계의 호날두”도 귀에 착 달라붙는 ‘후크’성 대사. ‘최종병기 활’ 속 “불녕기슈타트커오?”도 관객을 환상 속 4차원세계로 이끄는 대사다. 이 말은 “붉은 화살을 쏘더냐?”는 뜻을 가진 만주어란다.

‘이층의 악당’에서 ‘작업남’ 한석규와 신경쇠약 김혜수가 주고받는 멘트는 최고로 느끼하다. “우울해하지 말아요, 연주 씨. 당신처럼 아름다운 여자는 삶을 즐길 권리가 있어요.” “목소리가 참 좋아요. 꼭 목욕탕에 온 거 같아요.”

▽가장 작은 머리 부문=‘고지전’과 ‘파수꾼’에 출연한 신인배우 이제훈의 머리 크기는 모든 후보작 속 남자배우 중 가장 작았다(멜론만 한 머리 안에 대뇌가 어찌 다 들어간단 말인가). 뛰어난 외모와 내면 연기력을 가진 이제훈은 ‘고지전’ 초반부에서 발가벗은 채 온몸에 물을 끼얹는 기름진 뒷모습을 보여주면서 ‘아찔 뒤태’ 부문도 석권.

▽감성 헤어스타일 부문=단순한 스토리가 실망스럽지만 화면만큼은 ‘때깔’이 줄줄 흐르는 ‘푸른 소금’에서 송강호와 신세경의 개성만점 헤어스타일은 단연 눈길을 끈다. 별로 신경을 안 쓴 듯하면서도 무지하게 신경을 쓴 듯한 두 사람의 수사자 갈기 같은 헤어스타일은 얼마나 유사한지, ‘두 배우가 같은 미용실에서 머리를 한 건 아닐까?’라는 생각 때문에 상영시간 내내 영화에 몰입하기가 쉽지 않다.

▽‘무생물 주연’ 부문=
영화 속 소품으로 쓰인 물건이지만 왠지 인성(人性)이 느껴지면서 주연배우에 버금가는 스토리나 정취를 담아내는 경우가 있다. ‘최종병기 활’에서 ‘쉬이이익’ 하는 살벌한 목소리를 내며 상대를 찾아 날아가 목을 관통해버리는 화살(애깃살)의 연기력(?)은 압권. ‘황해’에서 소 한 마리를 통째로 삶아 야수처럼 게걸스레 뜯어먹던 살인마 면가(김윤석)가 때마침 자신을 살해하려 몰려온 조직폭력배들을 향해 둔기 삼아 휘두르며 제압할 때 사용하는 소다리 뼈다귀도 살기 넘치는 ‘캐릭터’를 품고 있다.

지독하게 쓸쓸하고 미적인 영화 ‘만추’에서 살인죄로 수감된 지 7년 만에 이틀짜리 특별휴가를 나온 여주인공 탕웨이가 시종 걸치고 다니는 누리끼리한 트렌치코트도 단연 ‘여우주연상’ 감이다. 그녀의 코트는 안개 자욱한 미국 시애틀의 정지된 듯한 풍경과 찰떡궁합을 이루면서 뜨거운 본능을 애써 짓누르는 여자의 숙명적 고독을 뿜어낸다.(아, ‘색, 계’에서와 달리 옷을 ‘입은’ 탕웨이도 이토록 매혹적일 수가!)

이승재 기자 sjd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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