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2칼럼/구가인] 루저스피릿⑥ ‘백두산’ 기타리스트 김도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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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4월 15일 15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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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산 2집 활동 시절 사진
백두산 2집 활동 시절 사진
“추억 속 전설이 아닌, 한국 록의 프론티어로 기억되고 싶다”

● 기타 들고 방황 시작한 대구 부잣집 아들
● "헤비메탈은 언제나 최첨단의 아름다운 음악이었다."
● "이제는 70살 제프벡의 활동에 큰 위안을 받는다."

김도균(45)을 인터뷰해야겠다고 마음먹은 건 순전히 MBC '놀러와' 때문이었다. 지난주(4월 5일) 놀러와 '록의 전설' 편에는 국내 록그룹의 선구자라고 할 수 있는 부활과 백두산이 출연했다.

예능 프로그램에서 활동 중인 부활의 리더 김태원과 백두산의 리더 유현상을 제외하곤 모두 '예능 초짜'. 록음악 팬이 아니라면(혹은 록 음악 팬이라도 나이가 어리다면) 많이 낯설었을 출연진이었지만, 재미가 덜하진 않았다. 특히 1970~1980년대 록 음악을 들으며 청년기를 보낸 사람이라면 적잖은 향수에 젖었을 터다.

방송 후 일부 출연자의 이름이 포털 실시간 검색어에 오르기도 했다. 김태원, 그리고 그와 함께 기타 잼(Jam)을 선보인 김도균이었다.

김도균은 그룹 백두산의 기타리스트며, 김태원(부활), 신대철(시나위) 등과 함께 국내 3대 록 기타리스트로 손꼽히는 인물이지만 그에 대해 알려진 것은 많지 않다. 그가 참여했던, 한국록의 기념비적 앨범이라고 평가를 받은 'Rock In Koera' 앨범이나 국악과 록을 접목해 호평을 받은 '정중동' 같은 앨범은 주요 음원 사이트에서도 찾기 힘든 것이 됐다.

오랜만에 TV에 등장한 '전설'의 기타리스트에 대한 세간의 관심이란 "김도균, 미스코리아 출신 전혜진이 사촌동생" 정도다. 고집스럽게 음악의 깊이에 파고들었던 기타리스트는 요즘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지 궁금했다.

서울 상수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김도균은 190cm은 될 것 같은 큰 키에 긴 파마머리를 풀어헤친 록 뮤지션이었다.

그러나 그는 2시간 가까운 인터뷰 내내 소파에 기대지도 않은 채 반듯하게 앉아 질문 하나하나 숙고하며 답변하고, 건물 안팎을 드나들 땐 다른 사람에게 먼저 문을 열어 양보하는 한국에서 흔치 않은 '신사'이기도 했다. 그와의 인터뷰는 엄밀히 말하면 '루저스피릿' 보다는 '장인열전' 류의 타이틀과 더 어울릴 듯 하다.

▶ 백두산 마지막 팬들, 어느새 30대 후반에 접어들어

- 저는 사실 백두산 세대가 아니에요. 보니까 주로, 80년대 초 학창시절을 보낸 분들이 좋아하시는 거 같더라고요.

"그렇죠, 저희 팬들은 1974~5년생 이전으로 구분이 되는 것 같아요. 저희 옛날에 한창 활동할 때 중학생이나 초등학교 6학년 정도였던 친구들이 딱 그 나이(1974~5년생)더라고요."

- 그래도 라디오 방송 같은 데선 다른 뮤지션들이 백두산에 대해 얘기하는 건 종종 들었어요. 예를 들면 콘서트에서 기타줄 뜯으시거나 기타를 부수시는 퍼포먼스 같은 거….

"아, 이제 후배들이 뭔가 저희를 대변해주는 역할을 하는 것 같아요. 사실상 저희는 그 때도 대중적으로 인기가 있던 건 아니었어요. 젊은이들 그룹에서 새로운 음악을 시도했던 정도로만 알려졌던 정도니까. 대중문화를 주도했던 건 조용필 씨나 그런 분들이었고, 젊은 친구들 사이에서도 정수라, 김승진, 박혜성, 김완선 씨 등 이런 부류가 인기가 있었고. 저희는 거기에 속하지 않는 독특한 세계가 있었으니까. 뭔가 다른 부류로 여겨진 거죠."

대구가 고향인 김도균은 중학교 때 처음 통기타 보다 먼저 전기기타를 접하게 된다. 중학교 시절 그가 꾸렸던 첫 번째 팀 이름은 중성자. 하지만 김도균은 자신의 음악적 시작을 그보다 앞선 초등학교 시절이라고 말한다.

"저희 학교가 당시 리코더 시범학교라 합주 같은 걸 많이 했는데, 제가 어쩌다보니 상도 받고 경연대회까지 나가게 됐어요. 그 때 연주했던 곡들이 주로 세바스찬 바하, 헨델, 헨리 퍼셀 같은 바로크 음악이었는데… 그 때 그 음악들을 연주하면서 초강력한 뭔가를 체험하게 된거죠. 예컨대, 피아노 전주에 맞춰서 리코더를 부는데, 이전까지 동요만 하다가 새로운 세계를 접하게 된 거고요. 저는 그때를 제 연주생활의 시작으로 봐요."

- 그러면 중학교 때 전자기타를 연주 하게 된 계기는?

"록음악을 중학교 때 처음 들었어요. 우연히 경북대 학생들이 연습하는 지하실에 놀러갔는데 레코드판에서 록 음악이 나왔거든요. 그 음악을 듣는 순간, 바로크 음악을 들었을 때와 같은 충격 같은 게 오더라고요."

- 그게 무슨 노래였는지 기억나세요?

"딥퍼플이었죠. 딥퍼플의 '차일드 인 타임'. 그 때 중학생이 돼서 머리를 밀고, 교복에 모자를 써야하고, 복장 검사를 받고… 그런 때였는데, 록 음악을 듣는 순간 마치 알라딘의 램프를 여는 것 같은 느낌이었어요. 새로운 세계가 발현하고, 그 때까지 뭔가에 속아 살아왔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진실이 지금껏 살아온 세계가 아니라, 이 (음악의) 세계에 더 있다고 느꼈을 정도로 충격을 받은 거죠."
국악과 록의 접목 시도한 김도균 그룹 '정중동' 앨범
국악과 록의 접목 시도한 김도균 그룹 '정중동' 앨범

▶ 기타 들고 방황 시작한 대구 부잣집 아들

그 후 부모님을 졸라 당시 4만 원 짜리 전자기타를 얻게 된 김도균은 이 후 30년을 다른 세계 속에서 살아왔다. 고등학교 때는 기타를 들고 가출을 하기도 여러 번. 대구에서 내로라하는 부잣집이었던 그의 집에서는 하나뿐인 아들 때문에 골머리를 앓았다.

"집안하고 충돌도 벌어지고, 친구들도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제가 그 세계에 깊이 들어간 거죠. 결국 고등학교를 안 마치고 디스코장 같은 데서 기타연주를 하다가, 나중엔 서울로 올라와버렸죠. 그 때 정말 연습을 많이 했는데, 20살을 한 달 남겨둔 겨울에는 설악산에 가서 저 나름대로 하드트레이닝도 했어요. 눈 속에서 동상도 걸리고, 기타 피크 2봉지 가져가서 2개월에 다 떨어질 정도로 연습했죠."

- 그 때, 무엇을 바라고 그렇게 열심히 연습하셨나요?

"처음 전기기타를 쳤을 때부터 세계적인 기타리스트가 되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음악을 듣고 잡지 같은 거 보고 그러면서 나도 저렇게 되어야 겠다는 생각을 한 거죠."

- 그 꿈은 지금도 마찬가지인가요?

"그렇죠, 음악의 길을 향해서… 오솔길을 향해서 가고 있는 거죠(웃음)."

스무 살이 채 안돼 기타 하나 들고 서울로 올라온 김도균은 얼마지 않아 기타리스트로 인정받기 시작했다. 신중현이 운영하는 음악감상 클럽 '라이브'에서 우연한 계기로 기타를 칠 기회를 얻게 됐고, 고정 연주자가 됐다. 백두산의 리더 유현상과 만난 것도 이 때다.

"제가 연주를 마친 다음에 누군가 흥분해서 콜라를 들고 뛰어올라오더라고요. 현상이 형이 었죠. 그 때 서라벌레코드 사장님과 같이 와서 같이 음악을 해보자고 제의를 했어요. 저 역시 그 뒤에 데뷔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음반사로 찾아갔죠. 그게 1984년 쯤 됐을 때 일이에요."

- 백두산 1집이 나온 게 1986년인데 많은 분들이 그 시기를 중요하게 보시더라고요.

"록 음악의 꽃이 피었던 시기죠. 그 즈음에 들국화, 부활 등도 다 함께 나왔으니까. 대략 84년부터 시작해서 87년, 88년까지 그런 분위기가 무르익었어요. 공중파 텔레비전에도 출연하고…."

- 듣기로는, 1집은 유현상 씨 곡이 대부분이고, 2집에는 김도균 씨의 색이 강해졌다고 하던데요. 평론가들은 특히 2집에 대한 평가가 좋더라고요. 예컨대, '업 인 더 스카이' 같은 곡들….

"같이 만들었는데 제가 2집에서 좀 주도적으로 곡이랑 가사를 쓰고 했어요. 백두산은 시나위랑 같이 우리나라에 헤비메탈을 소개하는 대표주자 역을 담당했어요."

- 좀 더 대중적인 음악을 하실 수도 있었을 텐데… 왜 헤비메탈을 고집하셨나요?

"그 때 헤비메탈은 최첨단 음악이었어요.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려고 정진하듯, 미국이건 일본이건 다들… 헤비메탈을 했으니까. 당시 저는 인기를 얻기보단 음악적인 완성도를 추구하고 싶었어요. 예술을 건축물에 비유하면, 저는 가장 아름다운 집을 짓고 싶은 욕망이 강렬했죠."

- 좌절하신적은 없나요?

"꿈에서 일찍 깨야 했죠. 요즘이야 홍대씬에 라이브 공연장이 생기고 있지만, 당시 한국은 라이브가 활성화가 안됐을 때죠. 그 당시에는 두 사람 이상이 라이브 공연장 무대에 허가 없이 오르는 건 불법이었어요. 규제도 많았고요."

▶ 좌절한 세계시장 진출의 꿈, 그러나…

그의 말대로 1980년대는 대중음악에 대한 규제가 많은 시기였다. 외국진출을 계획하며 대다수 영어로 만들었고, 그로 인해 일본에서 상당한 반응을 얻기도 했던 백두산의 2집은 국내에선 영어가사가 많다는 이유로 방송 및 공연 금지처분을 받았다. 여기에 대마초 사건까지 터지면서 록 뮤지션이 활동할 수 있는 범위는 더욱 줄어든다. 당시, 백두산은 김도균의 영국유학을 계기로 해체된다. 더불어 리더 유현상은 음반 기획자로 나서게 된다.

- '놀러와'에서 보니까, 백두산이 해체된 이유가 2집 내고 영국으로 도망가셨기 때문이라고 하더라고요.

"네, 2집 마치고 영국에 간 건 1988년이었죠. 세계시장에 도전해보고 싶었어요. 대구에서 서울로 기타하나 들고 왔듯, 영국에서도 기타하나 들고 가서 인정받고 싶었죠. 영국에서 우리말을 그대로 사용해서, SARANG이라는 팀을 했어요. 처음엔 드럼, 베이스, 기타 세 명이 했는데 나중에 임재범 씨도 함께하게 됐죠. 거의 6개 월 가량 준비해서 앨범 내고, 재범이 와서 더 6개월 활동했죠."

- 왜 돌아오셨어요? 세계시장에 진출하는 게 꿈이셨잖아요.

"그 때 갑자기 재범이가 향수병에 걸렸어요. 당시에는 언어문제도 있었고, 벽이 많았나 봐요. 재범이가 한국으로 돌아가겠다고 하니까 저도 돌아가야겠더라고요. 날 믿고 친구 따라 강남 왔는데 보낼 때 혼자가라고 할 수 없어서요. 게다가 마침 서라벌레코드에서 해외공연 사업을 시작했는데, 라우드니스라는 일본 헤비메탈팀하고 당시 같이 공연할 기회가 생겼어요. 한국 공연을 한 뒤 같이 세계 투어를 다닐 계획이었는데, 결국에는 서로 소속사 사장님들의 의견차이로 무산되고 말았죠."

영국에서 돌아온 김도균이 시나위 출신 보컬리스트 임재범과 베이시스트 김영진 등을 모아 만든 메탈밴드 아시아나는 최고 실력파들의 만남으로 주목 받았다. 국내에서는 최초로 영국에서 레코딩을 해오는 등 아시아나의 음반은 "국내 헤비메탈의 역량을 한 단계 높였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1년 남짓한 활동을 끝으로 막을 내린다.

▶ "트로트로 전향한 유현상에게 사실 미안했다."

"아시아나는 정말 국제적 수준에 맞추려 한 앨범이에요. 제대로 된 오리지널 록 사운드를 보여줬다고 생각하는데 오히려 그게 우리나라에서는 장애가 된 거 같아요."

이후 김도균은 1992년 유현상이 트로트 가수로 나간 상태에서 다시 백두산 3집을 들고 나온다. 하지만 그새 메탈 록의 시대가 저물고 모던 록이 등장했으며, 힙합과 댄스음악이 인기를 얻고 있었다.

"그 때 제가 슬럼프였던 거 같아요. 저 나름대로는 대중성을 살려서 백두산으로 돌아왔는데, 이미 트렌드가 바뀌어 있으니까. 그 때부터는 대중적인 것은 포기하고, 정말 개인적인 색깔을 살리는 방향으로 나가게 됐죠."

- 트로트 가수가 된 유현상 씨에 대한 아쉬움 같은 건 없으셨어요?

"사실 그 때 록을 좋아하는 많은 사람들이 충격을 받았었죠. 그런데, 저는… 저 때문에 백두산이 해체됐었던 거니까. 사실 현상이 형은 좀 대중적으로 나가고 싶어 했어요. '가요톱10'에도 오르고. 근데 저는 지나치게 순수한 음악만 추구하고 싶어 했던 거고. 좀 미안하죠."

- 그런 것들에 대해 후회하세요?

"대가를 많이 지불했죠. 그러나 저는, 그 덕에 깊이 있게 록음악의 본질까지 접근할 정도로 여행을 했으니까 후회는 없어요. 다만 우리가 그 때 여세를 몰아 대중적으로 나갔으면 한국에서 록도 대중적인 자리를 잡았을 텐데… 예컨대 일본의 'X-Japan' 같이. 그렇게 되지 못한 점은 많은 사람에게 미안하죠."

이후 김도균은 국악과 일렉트릭 음악의 접합을 시도 한다. "영국에 다녀 온 후 우리 음악에 대한 관심이 오히려 늘었다"는 그는 1988년 첫 번째 독집앨범 'Center of the Universe'로 국악 록을 선보였고, 대표적인 국악퓨전 그룹 '슬기둥'과 꾸준히 작업을 이어갔다. 2001년 포크록의 대부 한대수와 재즈 피아니스트 이우창과 함께한 삼총사 앨범(2001)이나 베이시스트 배찬우 드러머 박동식과 함께 결성한 김도균 그룹의 앨범 '정중동'(2002) 등은 한국음악과 록을 접목하고자 했던 그의 고집스런 노력의 결과다.

"동양인의 특징을 살린 음악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면서, 다시 국악 공부를 시작했어요. 가야금 산조, 사물놀이를 듣는데 처음엔 하나도 모르겠더라고요. 계속 반복해서 들었죠. 기타 공부 독학하듯. 보통 국악과 서양음악의 접목이라 하면, 원래 있던 서양음악에 우리 음을 첨가하는 식의 무대가 많았어요. 그런데 저희 음악은 우리장단에서 시작해요. 언젠가 아프리카에서 공연을 한 적이 있었는데, 리듬에 민감한 그 쪽 사람들도 반응이 좋으니까 뭔가 제대로 만들었다는 확신이 들었죠."

그는 지난해 유현상과 다시 의기투합해 백두산 4집을 냈다. 1992년 3집 발매 이 후 17년 만의 앨범. 그러나 4집에 대한 평가는 엇갈렸다. 팬들은 환영하고 나섰지만, 일부 평론가나 마니아들은 예전 같은 힘이 느껴지지 않는 것을 아쉬워했다.

"마니아들은 저희 2집처럼 100m를 전속력으로 질주하는 걸 원하기도 하는데… 4집 앨범이 깊이를 추구한 건 아니었거든요. 적절한 균형을 유지하면서, 대중과 폭넓게 만날 수 있는 음악이에요."

- 5집도 내고, 계속 활동하실 건가요?

"네, 한국의 록은 아직 좀 아쉬워요. 좀 더 활발히 움직여야 하거든요. 그래서 각 세대가 담당할 역할이 있어요. 신중현 선생님은 신중현 선생님대로, 사랑과 평화나 산울림은 그 세대의 의무가 있고, 저희는 저희 세대에 대한 의무가 있을 것 같아요. 동시대의 사람들이 즐길 수 있는 음악을 만들어 주는 거죠."
김도균은 신대철(왼쪽), 김태원(오른쪽)과 함께 3대 록 기타리스트로 꼽힌다. 이들은 2003년 프로젝트 음반 'D.O.A'를 내기도 했다.
김도균은 신대철(왼쪽), 김태원(오른쪽)과 함께 3대 록 기타리스트로 꼽힌다. 이들은 2003년 프로젝트 음반 'D.O.A'를 내기도 했다.

▶ "제프 벡의 활동에 큰 위안을 받았다. 우리도 그들처럼…"

- '놀러와'에 출연한 다음 반응이 뜨거웠어요. 요즘엔 록 뮤지션들이 연예오락프로그램에 자주 나오는데 그거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좋게 봐요. 록음악은 사실 대중음악이잖아요. 같은 분야죠. 예능을 통해 위안과 기쁨을 주면 그 이상의 것은 없는 거죠."

- 결혼도 안하셨어요. 이유가 있나요?

"결혼 생각을 몇 번 하긴 했는데, 번번이 기타가 질투를 해서 안 되더라고요. 여자친구를 만나려고 하면 또 기타소리가 안 나더라고요(웃음).

- 나이가 들수록 감각이 무뎌지기 마련인데, 예술가로서 그런 변화가 두렵진 않으세요?

"그 감각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을 많이 했죠. 결혼 안하고 음악 한다는 것도 어쩌면 그 세계를 잃지 않으려다보니까, 여자를 사귀어도 잘 안 되는 거 아니겠어요?"

- 내셨던 몇몇 앨범들은 한국 록 음악사에서 기념비적이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습니다. 실제로 굉장히 노력을 쏟아 부으셨던 것 같습니다. 그런 것들이 대중적으로 충분히 인정받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은 없으세요?

"그런 아쉬움은 크게 없는 것 같아요. 그렇게 제가 원하는 앨범을 만들 수 있다는 것 자체에 감사했던 거죠. 다만 이제는 내면에만 몰두하기 보다는 좀 더 대중적으로 나눌 수 있는 음악들을 만들어야 할 것 같아요."

- 어떤 기타리스트로, 혹은 백두산이 어떤 그룹으로 남길 바라세요?

"저희가 롤링 스톤즈나 제프 벡 등을 보면 상당히 위로를 받거든요. 일흔 살이 다 됐는데 많은 사람에게 사랑받고 있는 걸 보면서 힘을 얻어요. 저희도 후배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는 그런 역할을 하고 싶어요."

■ 김도균이 추천하는 백두산 그리고 김도균의 음악

1. 어둠 속에서 (백두산 1집 Too Fast! Too Loud! Too Heavy! 수록곡)
2. Up In The Sky (백두산 2집 King Of Rock 'n' Roll 수록곡)
3. 아리랑 (김도균 솔로 앨범 Center Of The Universe 수록곡)
4. 주연배우 (백두산 2집 King Of Rock 'n' Roll 수록곡)
5. Rock in Korea (프로젝트 앨범 Rock in Korea)

구가인 기자 comedy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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