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2칼럼/황윤정] 충무로 백여우(百女優)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2월 18일 16시 1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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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근히 닮은 꼴 인생, 정윤희와 심은하---②

오늘날의 심은하를 만든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 이 영화를 찍을 당시만 해도 심은하는 연기의 참 맛을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오늘날의 심은하를 만든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 이 영화를 찍을 당시만 해도 심은하는 연기의 참 맛을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이렇게 축복받은 배우가 또 있을까?

1994년 한편의 드라마로 혜성과 같이 등장해서 2000년에 은퇴를 하기까지, 불과 7년간 정확히 8편의 드라마와 7편의 영화에 출연했을 뿐이다. 게다가 은퇴한 뒤 강산이 변한다는 10년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일거수일투족이 온 국민의 관심을 모으며 최고의 뉴스메이커가 되는 그녀, 바로 배우 심은하(38)다.

어쩌면 그녀에겐, 그녀가 연기 생활을 했던 7년이 마치 70년을 살아온 것 보다 더 힘겨웠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대중에게는 겨우 7년 동안 평생을 잊지 못할 멋진 추억을 각인시켜 주었으니 이것이 어찌 축복이 아니겠는가.

물론 여기에는 그녀의 천부적인 영민함과 악바리같은 근성이 주효했다.

▶ 은퇴한 지 10년, 아직도 영화인들이 가장 기다리는 배우


농구 열풍은 물론 ‘다슬이 열풍’을 몰고온 1994년 MBC ‘마지막 승부’
농구 열풍은 물론 ‘다슬이 열풍’을 몰고온 1994년 MBC ‘마지막 승부’
TV에서는 '마지막 승부'(1994)를 통해 일명 '다슬이 열풍'이라 일컬어질 정도로 화려하게 데뷔했던 그녀이지만, 사실 영화판에서는 그녀가 처음부터 큰 호감을 얻은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TV에서 반짝 뜬 인지도를 바탕으로 충무로에 진출하는, 조금은 오만한 신세대 TV스타의 충무로 입성경로를 밟은 셈이었다.

데뷔작 또한 모두의 예상대로 평범했다. '아찌아빠'(1995) '본투킬'(1996). 이 두 편의 영화를 통해 흔히 TV스타가 영화로 무대를 옮기면서 겪게 되는 진통을 그녀도 똑같이 겪으며 '영화 잡아먹는 배우'로 인식되던 시절이 있었다. 곧 반전이 찾아왔다. 그게 어느 시점이었을까?

이제는 그녀의 대표작이 되어버린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1998)에 얽힌 몇 가지 에피소드를 보면, 당시의 상황을 여실히 알 수 있다.

처음 시나리오가 나오고 캐스팅이 한창일 때, 남자주인공은 당시 출연작마다 흥행가도를 달리며 '마이다스의 손'으로 추앙받던 한석규로 결정됐다. 한석규가 출연하는 마당에 상대 여주인공의 1순위는 당연히(?) 그녀일 리 없었다.

제작자와 감독은, 이 아름다운 '멜로' 드라마의 여주인공 역할에 당시 연기 잘하는 독특한 신인 배우로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이미 정평이 나 있던 C모 양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

그런데, 배우의 싹은 같은 배우가 알아본다고, 상대역인 한석규는 의외로 심은하를 강력 추천했다. 이에 감독과 제작자는 '울며 겨자 먹기'로 그녀를 캐스팅하기에 이른다.

촬영이 진행된 1997년. 당시만 해도 그녀는 연기에 눈을 뜨지 못한 상태였다. 그런 미숙함은 촬영중 적잖은 마찰을 불렀다. 감독(허진호)과 촬영 감독의 눈에는 그녀의 정형화된 연기가 맘에 들지 않았던 것이다.

1998년 작 ‘미술관 옆 동물원’은 한국 영화 캐릭터 사상 촤강의 매력을 뿜어 낸다.
1998년 작 ‘미술관 옆 동물원’은 한국 영화 캐릭터 사상 촤강의 매력을 뿜어 낸다.
▶ 그녀의 부자연스러운 연기에 감독이 내린 처방은…?

이들은 밤마다 모여서 '어째서 리허설을 할 때 자연스러운 심은하의 연기가 막상 슛이 들어가면 어색하고 불편해지는지'를 놓고 심각하게 고민할 정도였다.

결국 그들이 내린 처방은 간단했다. 그녀에겐 리허설이라고 해놓고 서로 사인을 주고받으면서 본 촬영처럼 필름을 돌려버린 것. 믿기 힘든 후일담이지만, 놀랍게도 그런 페이크 촬영에서 그녀는 보석 같은 편안한 연기를 뽑아냈다고 한다.

아무튼 자타가 공인하는 대로, 심은하는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를 통해 진정한 배우로 거듭날 수 있었다.

힘든 촬영 적응기간을 거치면서 단지 얼굴만 예쁜 여배우가 아니라 껍질 안에 둘러싸인 정형화된 연기를 벗어나 일상적 심리의 미세한 결을 표현할 줄 아는, 같은 세대의 어떤 여배우도 도달하지 못한 경지에 이르게 된 것이다.

마치 어린아이가 어른들의 무수한 말들을 들으며 체득한 단어 하나하나가 모여 어느 날 한꺼번에 말문이 터지듯이 말이다. 그렇게 심은하도 그녀가 지난 연기생활 동안 하나하나 체득했던 원석들이 이 힘겨운 단 한 번의 경험을 통해 정교하게 세공된 보석이 되어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행운은 연이어 찾아온다고 했던가. 이어 심은하를 위한, 그리고 심은하에 의한 영화를 만나게 되었다. '미술관 옆 동물원'(1998). 이 작품에서 그녀가 연기한 '춘희'는 혹자의 말처럼 한국영화사상 가장 매력적인 여성 캐릭터로 세상에 공개됐다. 연타석 홈런이었다.

이렇게 짧은 시간동안, 하나를 배우면 진정으로 풍월을 읊을 수 있는 일취월장의 배우가 된 것이니 이 얼마나 영민한 배우인가 말이다.

이후에 그녀가 은퇴하기 전까지 했던 작품들과 그 속에서 그녀가 보여준 주옥같은 캐릭터들은 더 말할 것도 없다. 매번 작품마다 기대했던 그 이상을 보여주었던 여배우였기에 많은 영화 관계자 및 관객들이 진정으로 그녀의 은퇴를 아쉬워하면서 컴백을 기대하는지도 모르겠다.
정윤희는 70년대 후반부터 80년대 초반 아시아의 대표 미인으로 활약했다. 영화 '사랑하는 사람아'(왼쪽), '아가씨 참으세요' 중 한 장면
정윤희는 70년대 후반부터 80년대 초반 아시아의 대표 미인으로 활약했다. 영화 '사랑하는 사람아'(왼쪽), '아가씨 참으세요' 중 한 장면
▶ 정윤희와 심은하의 닮은꼴 인생
심은하, 그녀의 인생 역정은 시대를 뛰어넘어 지난회에 소개한 연기 선배 정윤희의 그것과 너무나도 흡사하다.

각기 7년과 10년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 굵게 한 시대를 풍미한 여배우였다는 점, 그 시대 최고의 미인이자, 최고의 영민함을 지닌 여배우였다는 점, 중간에 한 번씩 약혼과 파혼에 이르는 개인적인 아픔이 있었다는 점, 결국 결혼을 하면서 연기 생활에 종지부를 찍고 은퇴를 감행했다는 점, 지금까지 극도로 언론 노출을 피하면서 컴백을 하지 않고 있다는 점 등 두 여배우의 모습은 판박이처럼 닮아 있다.

2005년 결혼식을 올린 심은하(스포츠 동아)
2005년 결혼식을 올린 심은하(스포츠 동아)
심은하 역시 2000년에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약혼과 파혼 소동으로 여성으로서의 아픔을 겪었다. 사실 이 때까지도 그녀는 가까운 영화인들과 교류를 하면서 관심 있는 시나리오를 몰래 받아가서 볼 정도로 관심의 끈을 놓지 않기도 했다. 그러나 그녀는 2005년 결혼과 함께 지금까지 가정이란 울타리 안에서 평범한 여성이 누리는 행복한 일상으로 완전히 숨어버렸다.

심은하는 그러면서도 철저하게 자기를 관리하고, 연마하며 정말로 치밀하게 계산된 듯한, 아주 가끔의 팬서비스(?)를 이어가고 있다. 자신의 미술 작품을 발표하는 전시회가 바로 그것이다.

그녀가 이르고 싶은 종착역이 어디인지는 아무도 가늠할 수 없다. 그녀는 분명히 가장 짧은 시간동안 가장 대중을 사로잡았던 매력 있는 여배우였음이 분명하고, 앞으로 어떻게 변신하더라도 결코 대중을 실망시키지는 않으리란 확신이 든다.

여기서 사족 하나. 심은하를 가장 아꼈던 모 배우의 말처럼, '누구에게나 영화는 추억의 한 부분' 이고, 그녀는 정말로 많은 사람들의 가슴 속에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았다. 그 '추억'이 다시 되살아나 '현실'이 되기보다는 정윤희처럼 정말 소중한 '추억'으로만 영원히 남을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 더 크다면, 그건 너무 개인적인 욕심일까?

황윤정 / 영화 프로듀서 hawonfilm@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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