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신의 진화 “더위는 가라”

  • 입력 2009년 7월 28일 02시 50분


KBS ‘전설의 고향’-MBC ‘혼’ 현대적 감각 공포물 내달 선보여

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천둥이 치는 음산한 밤에 한 여인(윤유선)이 무덤을 파헤친다. 눈을 질끈 감고 자른 시체의 다리를 들고 황급히 도망치자 시체(이광기)가 깨금발로 쫓아오며 그 유명한 대사를 내뱉는다. “내 다리 내놔∼.”

1996년 7월 10일 방영된 KBS ‘전설의 고향’ 덕대골 편의 일부다. 병에 걸린 남편을 살리기 위해 시체의 다리를 들고 도망치는 여자와 그를 쫓는 시체. 보는 사람은 오금이 저릴 수밖에 없었고, 아직까지 납량특집 드라마의 명장면으로 회자된다.

납량특집 드라마의 효시인 전설의 고향은 1977년 ‘마니산 효녀’로 첫 방송을 탄 뒤 1977∼1989년, 1996∼1999년, 2008년에 총 655회가 방영됐다.

‘내 다리 내놔’ 못지않은 히트작은 구미호였다. 청순가련한 새색시가 사실은 구미호였다는 등 편마다 내용이 다르기는 하지만 살아있는 인간의 간을 먹는 설정은 같다. 특히 시부모나 남편이 구미호를 의심하며 슬쩍슬쩍 훔쳐보는 장면에서 시청자들은 “저러다 들키면 어쩌지?”라고 애간장을 녹인다. 한혜숙, 김미숙, 선우은숙, 차화연, 박상아, 송윤아, 노현희, 김지영, 박민영 등이 맡은 구미호 역은 화장품 CF처럼 당대 여배우의 상징이었다.

내달 10일부터 방영하는 2009 전설의 고향에서는 ‘숫처녀들의 피만 빨아먹는 흡혈귀’ ‘섬에서 일어나는 연쇄살인사건’ 등 현대적인 감각을 가미한 공포물이 선보여진다. 흡혈귀는 국내 공포물에선 거의 등장하지 않았지만 최근 할리우드 뱀파이어 열풍을 타고 선을 보인다. 함영훈 PD는 “한국 귀신은 원한, 복수 등 애절한 사연을 가지고 있는 공통점이 있다”며 “이번에도 그 보편적인 정서에서는 벗어나지 않지만 코믹이나 멜로를 접목해 새로운 재미를 줄 것”이라고 말했다.

MBC는 악령이 들린 심은하가 굵직한 남자 목소리를 내며 열연한 ‘M’(1994년)으로 히트를 친 뒤, 이승연의 ‘거미’(1995년)를 내세웠지만 기대에 못 미쳤다. MBC는 내달 5일부터 방영하는 ‘혼’으로 14년 만에 공포물 부활을 선언했다. 억울하게 죽은 원혼이 여고생(임주은)의 몸으로 들어와 원한을 갚고 이를 파헤치는 범죄심리학자(이서진)도 점차 악한으로 변한다는 얘기다.

조연출 김지연 PD는 “한국 귀신은 한을 가진 여성이 대부분으로 이번에도 주로 피해자들이 여성이고 빙의된 여고생을 통해 원한을 푼다”며 “하지만 선악의 대립이라는 공포물의 공식을 깨기 위해 악을 파헤치는 범죄 심리학자가 점차 악한으로 변하는 설정을 도입하고 도심 거리와 시멘트 벽 등 일상 공간을 배경으로 삼아 공포감을 극대화하려고 했다”고 말했다.

황인찬 기자 hi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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