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재기자의 무비홀릭]‘작전명 발키리’ 실패 이유를 밝힌다

  • 동아일보
  • 입력 2009년 2월 3일 02시 58분


《“아, 낚였다(‘속았다’는 뜻의 은어)….” 세계 최고 스타 중 한 명인 톰 크루즈가 주연한 새 영화 ‘작전명 발키리’(이하 ‘발키리’)를 보고 나온 관객들의 반응이다. 톰 크루즈도 그렇지만 ‘유주얼 서스펙트’ ‘엑스맨’ 같은 놀라운 작품을 연출한 브라이언 싱어 감독의 신작이기도 하니, 사람들의 기대가 얼마나 컸을까. ‘발키리’가 실패작으로 끝난 이유를 관객의 처지에서 질문을 던지며 분석해 봤다.》

드라마틱한 얘기인데 왜 졸릴까

도덕책 같은 대사… 섬세함이 없다


b>【Q】 영화는 제2차 세계대전 중 독일 나치의 독재자 히틀러를 암살하려고 시도했다가 실패하고 총살당한 독일군 대령 슈타우펜베르크(톰 크루즈)의 실화다. 이런 드라마틱한 얘기를 다루는데도 왜 이리 영화는 졸릴까? 톰 크루즈와 브라이언 싱어가 처음으로 만나 탄생한 작품이란 사실이 믿기질 않는다.

【A】톱스타를 캐스팅한다는 건 때론 영화적 완성도를 떨어뜨리는 요인이 되기도 한다. 톰 크루즈가 주연을 맡게 되는 순간, 영화의 지향점은 오직 한 가지로 귀결된다. ‘최대 다수의 관객이 만족할 수 있는 영화’ 말이다. 자, 그럼 남녀노소가 만족하는 보편적인 영화란 어떤 영화일까? 바로 등장인물의 감정선이 단순하고 뚜렷한 영화다.

이 영화를 보자. 인물의 내면적 갈등은 눈을 씻고 봐도 없다. 주인공인 대령은 사랑스러운 아내도 있고 토끼 같은 자식도 있는 인물인데, 히틀러 암살을 결심하기까지 얼마나 고민이 많았을까. 하지만 영화는 첫 장면부터 다짜고짜 “히틀러는 세상의 적이고 독일의 적이다”라는 주인공의 내레이션으로 시작한다. 이후 주인공이 늘어놓는 대사는 다음과 같다.

“나는 반역자라는 오명도 감수하겠습니다.” “지금은 전시(戰時)입니다. 행동하는 게 중요합니다.” “행동하지 않으면 결과도 없습니다. 히틀러를 돕는 건 조국에 죄를 짓는 일입니다.” “정부를 전복시킬 작전을 세우는 데 가담하겠나?”

아, 단순함과 썰렁함에서 한국영화 ‘도마 안중근’에 나오는 대사(“어머님은 아실 거다. 내 가슴 속의 조국이 어머님의 조국인 것을”)를 연상케 한다. 심지어 총살당하기 직전 주인공이 마지막으로 외치는 (절체절명의) 대사도 “독일이여, 영원하라”였으니.

‘발키리’는 ‘착한 영화’ 콤플렉스에 빠져버린 듯하다. ‘이 영화는 정치적으로 올바른 얘기를 하고 있다’는 자기 확신이 너무 강한 나머지, 등장인물의 미묘한 내면의 변화나 이야기의 디테일이 증발되고 대의명분만 부르짖는 도덕책 같은 대사와 딱딱한 캐릭터만 난무하는 현상이다. 관객은 ‘교장선생님’ 훈화 말씀을 듣기 위해 7000원을 내진 않는다.

【Q】 브라이언 싱어 감독은 할리우드 최고의 이야기꾼이다. ‘엑스맨’ 같은 영화를 통해 소수 정서를 블록버스터에 녹여 넣는 데도 성공했다. 근데, 왜 이런 재앙 같은 영화가….

【A】 요리와 마찬가지다. 무, 시금치, 콩나물 같은 재료론 기가 막힌 맛을 내는 요리사가 정작 해삼, 전복, 꽃등심을 가지고 실력 발휘를 영 못하는 경우라고 볼 수 있다. 싱어 감독의 전작인 ‘슈퍼맨 리턴즈’를 보자. 세계적으로 알려진 강력한 캐릭터와 막대한 제작비를 가지고도 의외의 졸작을 만들지 않았는가. 싱어 감독은 소외된 사람들의 ‘작은’ 이야기를 영화적 은유를 통해 파괴력 있게 증폭시켜나가는 솜씨는 뛰어나지만, 영웅의 ‘크고 옳은’ 이야기를 오밀조밀하게 변주해가는 데에는 무기력한 모습을 보인다.

이승재 sjd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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