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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8년 5월 20일 02시 5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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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냘픈 체구의 전 씨는 다섯 살 때 시력을 잃었지만 지금은 도쿄대 박사다. 가정을 꾸리고 아이를 낳아 행복하게 기르는 것이 꿈이었던 그는 신 씨와 결혼하고 딸 신비를 낳아 키워왔다. 전 씨는 눈이 보이지 않지만 직접 야채를 갈아 만든 이유식을 신비의 입을 만져가며 떠먹인다. 옷도 직접 입히고, 양말도 짝을 맞춰 신기는가 하면 예쁜 털실로 스웨터를 뜬다.
시력을 잃어가고 있는 아빠 신 씨도 서툰 일본어로 장을 봐 식사를 준비하고 설거지까지 깔끔하게 해낸다. 아이의 빨래를 분류해 세탁기를 돌리고 구석구석 집안 청소를 하는 것도 그의 몫이다. 가끔 실수도 하고 아내의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타박을 듣지만 누구보다도 능숙한 ‘프로 주부’다. 그는 딸을 위해 13편의 동화를 쓰기도 했다. 전 씨가 학교에 가면 신 씨는 길가의 흰 선을 보고 걸으며 신비를 보육원에 데려다준다. 가끔 길을 헤매지만 발걸음에 주저함이 없던 그가 요즘 들어 여기저기 잘 부딪히고 길을 잃는 일이 잦아졌다. 시력을 더 급격히 상실하고 있기 때문이다. 맹학교에 들어가 공부할 결심을 하는 신 씨. 그는 시력을 사용하지 않고 생활하는 법을 배우기 위해 잠시 가족과 이별한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