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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8년 4월 8일 07시 4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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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짙은 회색 구름, 안개비, 보슬비… 한달에 스무 날은 비가 온다는 뮌헨, 전혜린은 우수에 젖은 문체로 하염없이 독일의 시월만 그리워했다. “일생에 한 번, 한 개라도 좋은 작품을 쓰고 싶다”며 절규한 여자 전혜린, 그에게 뮌헨은 영원한 향수, 창작욕에 불을 지핀 도시였다. 전혜린의 뮌헨처럼, 이상은은 ‘한없이 흐리고 추운’ 베를린을 추억한다.
“아직도 그 도시에 홀려있어요.”
비 내리던 오후였다. 타인의 음악과 글에 감동받은 이상은은 불쑥 자신을 모조리 뒤흔들어놓을 도시로 떠나고 싶었다. 방랑벽이 가슴을 충동질했다. 그가 선택한 도시는 바로 베를린. ‘인간의 질척거리는 욕망을 예술로 승화시켰다’고 귀띔을 받은 도시였다. 지인들이 어둡고 칙칙하다기에 예전에는 피했던 도시다. 자신이 감히 도전해선 안 되는 도시로도 생각했다. 그 분위기가 싫은 게 아니라 단지 견딜 수 없을 것 같은 두려움이 있었다고… 전쟁의 광기를 기억하는 ‘전승기념탑’과 ‘바우하우스’ 건축에서 느껴진 여리면서도 부드러운 편안함에 인간의 양면성도 느꼈다. 특히 베를린이 예술가들에게 우호적이란 점이 마음에 들었다. 여행에서 보고 느낀 것을 모조리 사진과 수필에 담아 ‘삶은…여행 in 베를린’ (북노마드) 책도 펴냈다. 처음에는 출판사의 권유였지만, 글을 쓰는 게 즐거워서 이젠 작가로서의 꿈도 생겼다. “온 몸이 아프게 반응하는 절실한 글을 쓰고 싶어요. 한 10년 쯤 지나면 소설도 쓰고 싶네요.” 봄비의 비린내가 은근한 서울 홍대역의 카페, 책의 이야기꾼으로 발을 내민 가수 이상은을 만났다.》

- 글을 쓴 경험이 있나
간간히 잡지나 신문에 글을 써왔다. 일본에 있을 때는 ‘구마모토매일신문’에 외국인이 느끼는 음악 얘기를 연재했다. ‘도베’ 잡지에도 런던 여행기를 썼다. 단행본으로 책을 낸 건 작년에 쓴 ‘아트앤플레이’(M&K)가 처음이었다. ‘쓰다’라는 행위에 조심스럽지만, 음악 아닌 다른 수단으로 ‘소통’을 시작한 느낌이다. 어린 시절에는 전혜린과 헤르만 헤세를 좋아했다. 알베르 카뮈의 ‘결혼 여름’은 내가 제일 아낀 책이다. 시몬느 베이유도 좋다. 글이 아니면 보여줄 수 없는 것들을 나도 보여주고 싶다. 스포츠 동아에 글을 연재하게 돼 영광이다. 이나영 씨와 영화를 찍은 ‘오다기리 죠’도 인터뷰하고 싶다.
- 글로 꼭 남기고 싶은 얘기가 있나
20대 힘들었던 기억들, 일본과 한국에서 방황했던 기간을 마흔이 넘어 꼭 써보고 싶다. 작가 아멜리 노통브는 자기가 경험한 것을 토대로 진실 어리게 글을 써서 좋았다. 그 분 글을 읽으면 눈이 읽는 게 아니라 온 몸이 읽는 것 같았다. 아무리 각색이 됐더라도 인간이 무의식에 빠졌을 때 상상에 빠졌을 때, ‘자기’를 느끼게 된다. 언젠가는 내 얘기인데 소설인 척 하면서 아픈 얘기를 쓰고 싶다. 특히 일본에서 7년 동안 겪은 얘기는 꼭 들려줄 거다. 이런 건 독자들이 알면 사물을 다른 방면으로 볼 수 있다거나, 간접 체험의 긴장을 주는 얘기면 된다. 공감각적인 체험을 비타민처럼 나눠주고 싶다.

- 책에 등장한 베를린에 함께 간 ‘친구’는…
일란성 쌍둥이 같은 친구다. 이 친구가 돌아와 결혼을 하는데… 여행 중에 암시를 주긴 했다. 내가 그 친구 인생에서 여태껏 2등 정도는 했는데, 이제 그 순위가 내려갈 거다. 어른이 된다는 게 그런 것 같다. 다른 사람하고 교집합을 이루던 부분들이 떨어져 나가고 혼자 서야 하고… 자꾸 그런 사람이 많아진다. 중학생 때는 이 친구가 이 생각하면 똑같이 쭉 빨려들고 전달되고 했는데, 어른이 될수록 심정적으로 의존하던 것들이 떨어져 나간다. 그렇게 떨어지면서 ‘어… 어…’ 그런다.
- 이상은이 직접 쓴 ‘책’은…
첫 책 ‘아트앤플레이’는 또 하나의 ‘담다디’다. 하고 싶은 얘기가 많다. 하지만 할 수 없는 얘기도 많다. 언젠가는 매우 어둡고 고통스러운 얘기를 글로 표현하게 될지 모른다. 그 때 보면 처음의 책은 담다디처럼 기억될 거다. 작가가 작품을 위해 자기를 낮추고 겸손할 때 가장 편안하고 행복한 것 같다. 아직 책으론 신인이다. 실험적이거나 예술성이 강한 작품은 내 마음의 상처나 고통이 쌓였을 때, 그리고 여러 권을 냈을 때 가능할 테니, 내 속에 다른 생각을 잘 쌓아둬야겠다.
- 이상은은 도시를 사랑한다?
내 여행은 꼭 ‘도시’여야 한다. 도시에서 느낀 것을 소소하게 풀어놓고 싶다. 아직 이 땅에는 예술가들에게 자유로운 도시가 없다. 우리 사회가 좀 더 예술가들에게 우호적이었다면 하고 자주 바란다. 만일 사회가 그랬다면, 한 번에 처음부터 하고 싶은 얘기만 쏟아냈을지도 모른다. 남들한테 피해를 주면서까지 내가 하고 싶은 걸 하고 싶진 않다. 여행기는 꾸준히 쓰고 싶다.
- 이상은은 자기 색채가 강하다?
“주관이 강하지만, 그렇게 나쁜 생각을 하고 산 적도 없고… 뭘 하든 되게 진지한 편이다. 음악도 그랬다. 돈이 없어서 고민하고 어디로 가야할지 모르겠고 이런저런 슬픔으로 꽉 찼을 때 데뷔 8년 만에 기회가 왔다. ‘공무도하가’를 발표할 때가 그랬다. 지금으로 따지면 4∼5억의 거액과 2년이라는 시간을 들여 창작 앨범을 냈다. 지금은 음반 시장이 그렇지 못하지만… 앞으로 또 그런 기회가 오리라 믿는다. 참는 게 필요하더라. 예술성이라는 걸 계속 갈증으로 커다란 통에 쌓아두고 있다. 내가 하는 일에 대해 풀지 못한 스트레스, 고통, 슬픔… 차곡차곡 쌓아두면 하늘이 언젠가는 표현할 기회를 주는 것 같다. 글도 아마 그렇지 않을까? 고정 팬이 생길 즈음엔 무겁고 아픈 얘기를 들려주겠다.”
- 현재의 꿈은 …
이번 13집 음반으로 일본에 가서 조용하게 음악 활동하는 거다. 내가 좋아하는 ‘크루리’ 밴드도 만나보고 싶고, 일본의 인디 아티스트들이랑 교류하고 싶다. 그리고 조만간 떠날 스페인 여행도 기대된다. ‘깜짝 놀라고 도취 될 것’ 같다.
○ 이상은이 걸어온길
1970년 서울 출생
1988년 MBC 강변가요제에서 ‘담다디’로 대상 수상
1990년 일본 유학
1993년∼1996년 일본 구마모토, 후쿠오카, 오이타, 교토, 투어콘서트
1997년∼2001년 일본에서 정규앨범 3장과 라이브 앨범 1장, 영화음악 1장 발매
2006년∼현재 피스프랜드(아프리카 기아 난민 돕기) 홍보대사
변인숙 기자 baram4u@donga.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