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오명철/디지털 TV

  • 입력 2004년 7월 9일 18시 54분


흑백으로 시작한 한국 TV가 컬러시대를 거쳐 디지털 TV(DTV)시대로 접어들게 됐다. 이달 중으로 시청자들은 현재의 아날로그 TV보다 5∼6배 더 선명한 화질과 CD급 음향을 제공받게 된다. 화면의 가로 세로 비율도 종전 4 대 3에서 영화와 같은 16 대 9로 늘어난다. 수도권과 5대 광역시에서는 다음달 열리는 아테네올림픽을 고화질(HD) 방송으로 시청할 수 있다. 우리 선수들의 선전 장면은 물론 땀과 눈물, 거친 숨소리까지 보고 들을 수 있다니 가슴이 설렌다.

▷아날로그 TV와는 달리 DTV는 양방향 정보 데이터 방송이 가능하다. 드라마나 쇼를 보다가 배우나 가수의 신상정보, 소품 등에 관한 정보를 검색할 수 있고, 전자상거래나 정보 검색도 가능하다. 한마디로 PC가 TV로 들어오는 셈이다. 하지만 먼 데서 볼 때는 절세의 미인이었으나 가까이에서는 실망스러운 용모인 경우가 종종 있는 것처럼 얼굴의 성형자국과 여드름 하나까지 선명히 드러나는 고화질 화면 때문에 의외의 피해자가 생겨날 수도 있다.

▷세계 디지털산업은 지금 표준화 전쟁 중이다. 아무리 기술이 뛰어나더라도 표준화로 채택되지 못하면 사장(死藏)된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일본이 HDTV 기술에서는 미국에 앞섰으나 이를 세계적인 디지털 방식으로 표준화하는 데 실패해 낙오했다. 가전제품 시장에서 일본에 자국 및 세계시장을 송두리째 내준 미국이 디지털기술을 통한 세계시장 장악을 목표로 업계와 학계가 총력전에 나서 의도적으로 일본을 ‘왕따’시켰다는 분석도 있다. 미국은 언어에 이어 기술표준으로 세계를 장악해가고 있다.

▷전 세계 DTV 시장규모는 2005년 220억달러, 2006년 330억달러, 2007년 500억달러로 추산된다. 한국은 전 세계 DTV 관련 특허기술 1만632건 가운데 33%인 3462건을 보유하고 있는 최다 기술강국. 그런 점에서 지난 4년간 정부와 방송사의 대립으로 전송방식을 결정하지 못한 채 허송세월한 것은 커다란 손실이다. 새로운 기술의 채택에는 반드시 이해 당사자들의 합의를 거쳐야 한다는 교훈을 얻는 대가로는 너무 비싼 수업료를 물었다.

오명철 논설위원 osca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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