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서비스시장 개방되면]5대분야 어떻게 달라지나

  • 입력 2001년 11월 23일 18시 34분


하버드대의 서울분교에서 공부한 뒤 베이커&매킨지 법률사무소 서울지사에서 근무하면서 아플 때는 존스홉킨스병원 서울분원에서 치료하는 날이 조만간 올지도 모른다.

바깥바람을 거의 쐬지 않았던 법률 교육 의료 등 서비스 분야에 거센 개방 바람이 불어오고 있다. 정부는 2003년 3월까지 이들 분야의 개방 방안을 마련해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출해야 한다. 서비스 분야 개방이 몰고 올 변화를 분야별로 알아본다.

▼외국대학 몰려올 듯…“교육열 높아 매력적”▼

◇교육=교육 시장이 개방되면 교육열이 높은 한국은 외국의 유수 대학에 매력적인 시장으로 비춰질 것이 확실하다.

따라서 교육서비스 개방의 최대 쟁점은 외국 대학의 국내 분교 설치 문제이다. 예를 들어 하버드대나 예일대 등 외국의 유명 대학이 국내에 분교를 설치하는 상황을 생각할 수 있다. 이 경우 경쟁력이 낮은 국내 대학은 학생들의 기피로 도태될 수밖에 없어 대학 관계자들은 바짝 긴장하고 있다.

현행 고등교육법 시행령은 시도마다 하나씩 외국대학 분교를 유치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지만 학교운영 수익금의 대외 송금이 허용되지 않아 아직 외국 대학의 분교가 설립된 사례는 없다. 도하라운드 협상 결과 이러한 장애가 사라지면 분교 설립은 한층 쉬워진다.

외국대학이 국내에 진입하면 질 높은 교육을 받은 인재 양성과 외국 유학에 드는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는 효과가 있다.

또 교수와 학과 평가 등이 엄격한 외국 대학에 자극 받아 국내 대학 행정의 발전에도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외국의 3류 대학들이 국내에 진출해 학생 유치에 나설 경우 오히려 교육의 질이 저하될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또 국내에 들어온 외국 대학이 1, 2학년만 어학과 교양 등을 가르치고 3, 4학년부터는 본교에 진학시키는 시스템을 채택해 국내 분교를 유학생 송출을 위한 전초기지로 만들 가능성도 있다.

개방을 가로막고 있는 국내의 규제 완화에 대한 논의도 본격화될 것으로 보인다. 외국 대학들은 학생이 많은 수도권에 분교 설립을 희망할 것이기 때문에 수도권의 대학 신설을 막고 있는 ‘수도권 정비촉진법’이 주요 타깃이 될 전망이다.

<홍성철기자>sungchul@donga.com

▼스카웃 회오리 예고…小병원 생사 갈림길▼

◆의료=2003년 1월 서울 강남에 암 치료로 세계적 명성을 얻고 있는 미국계 ‘MD 앤더슨 서울병원’이 들어선다.

기존 병원과 전혀 다른 진료를 한다. 의사들이 한 환자에 대해 30분 이상 진료한다. 물론 진찰료는 비싸다. 미국의 평균 초진료(200∼250달러) 수준에 가깝다.

그러나 이 병원은 항암치료제 신약과 암 치료용 특수기기를 쓰기 때문에 경제적 여유가 있는 환자가 몰린다.

이는 국내 의료시장이 개방돼 외국계 병원이 들어온 상황을 가정한 것. 도하라운드 출범후 의료분야 협상이 내년부터 시작됨에 따라 외국계 병원의 국내 진출 가능성은 매우 높아졌다.

의료계에서는 미국에서 1, 2위를 다투는 존스 홉킨스병원과 메이요 클리닉이 한국에 민간보험(사보험)이 도입되면 곧바로 들어올 준비가 끝났다는 소문이 파다하다.

외국계 병원은 수가 규제를 피해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성형외과, 피부과, 안과, 전문심장병원 등의 분야로 진출이 더욱 활발할 것으로 보인다.

외국계 병원의 진출은 국내 병의원에 상당한 타격을 줄 전망.

고급 의료서비스를 찾는 환자들의 이탈로 일부 유명 대학병원을 제외한 대다수 대학병원과 중소 종합병원, 일반 의원들은 심각한 위기를 맞을 가능성이 있다.

의료계에 스카우트 열풍도 예상된다. 외국계 병원이라도 언어 장벽 등의 문제가 있어 대부분의 의료진은 한국인으로 구성할 공산이 크기 때문.

서울 Y대병원의 한 안과 교수는 “대학 교수들이 개원의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소득이 적어 불만이 많았는데 외국 병원이 들어오면 연봉이 올라갈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대한의사협회 주수호(朱秀虎) 공보이사는 “규제 일변도의 건강보험법이 존재하는 한 외국계 병원의 진출이 쉽지 않으나 민간보험이 도입되면 이야기는 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문철·이성주기자>fullmoon@donga.com

▼대형로펌 밀물 예상… 法체계 혼선 우려도▼

◆법률=소규모 법률사무소를 중심으로 한 ‘구멍가게식’ 운영 형태가 대부분인 국내 법률시장이 개방될 경우 변호사업계에 미칠 파장은 헤아릴 수 없이 크다.

규모면에서 세계 1위 로펌인 영국의 클리퍼드 챈스사는 고용 변호사수만 3100여명, 2위인 미국의 베이커&매킨지사는 2330여명에 이른다. 국내 1위인 김&장 법률사무소의 소속 변호사가 200여명인 것에 비하면 15배 이상 큰 규모다.

이런 상황에서 국제적 네트워크와 전문 시스템을 갖춘 외국 로펌들이 한국에 상륙하면 변호사업계는 법률시장이 크게 잠식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도하라운드 협상 테이블에서 논의될 쟁점은 최고 30여건. 가장 민감한 부분은 외국 자본의 국내 법률사무소 설립과 국내 로펌과의 합작 허용 여부다. 국내외 변호사의 고용 여부도 관심의 대상이다. 구체적으로는 로펌의 설립 형태와 외국인 지분, 국내 법률업무 활동의 허용 범위와 외국로펌의 명칭 사용 제한, 변호사 자격 및 거주조건 등이 거론되고 있다.

현재 국내에서 활동 중인 외국 변호사는 정식 변호사가 아닌 업무 보조직원 자격에 불과하다. 대부분 미국 변호사인 이들은 현재 150여명에 이르지만 송무 등의 업무는 물론이고 서류작성도 자신의 이름으로 할 수 없어 내부적 법률자문만 해주고 있는 상태. 이들이 정식 변호사로 활동을 시작하면 파급효과는 엄청날 것이다.

그러나 법률시장이 개방되더라도 법률서비스 강국인 영국 및 미국과 대륙법을 근간으로 하는 한국은 법 체계가 달라 혼란을 빚을 수 있다. 또 외국은 법률업무를 포괄적으로 변호사가 처리하는 반면 한국은 변호사 외에도 법무사 관세사 행정서사 등으로 분류돼 있어 업무처리에도 혼선을 가져올 것으로 보인다.

<이정은기자>lightee@donga.com

▼휴대전화-IT업계 M&A열풍 불가피▼

◆법률=통신 서비스 시장 개방의 현안은 한국통신과 SK텔레콤 등 유무선 기간통신사업자의 외국인 지분소유 한도 확대.

도하라운드 출범으로 현재 49%가 상한선인 외국인 지분 한도를 50% 이상으로 높이라는 요구가 거세질 전망이다. 협상 결과에 따라 유무선 분야 시장 지배적 사업자의 경영권을 외국인이 차지하는 상황도 벌어질 수 있는 셈이다.

국내 최대의 통신사업자인 한국통신은 현재 외국인 최대주주가 허용되지 않고 인수 합병 금지대상으로 돼 있어 이 제한을 풀라는 요구도 예상된다. 한국통신을 비롯해 SK텔레콤 KTF LG텔레콤 등 휴대전화업체들의 경우 수익기반이 우수하고 성장성이 커 이미 외국사업자들의 집중 타깃이 되고 있다. SK텔레콤은 현재 NTT도코모와, 한국통신은 마이크로소프트 등과 외자유치 협상을 벌이고 있다.

외국인의 지분 참여가 활발해지면 국내 기업들은 새로운 사업과 신기술 개발에 필요한 재원을 쉽게 확보할 수 있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서비스 질의 향상도 기대할 수 있다.

하지만 정보기술(IT) 분야 핵심 인프라를 보유한 통신 기업을 외국기업이 좌지우지하게 되는 상황은 우려되는 부분. 통신시장 개방은 외국인의 경영권 행사와 해외 독과점 기업의 인수 합병 공세로 이어질 수 있고 기업논리만 앞세우면 통신 서비스 요금이 오를 수 있다. 광(光)통신망 확충이나 농어촌 초고속인터넷 보급 등 공공부문 인프라 투자도 위축될 수 있다. 내년 6월말을 목표로 완전 민영화 작업을 추진중인 한국통신을 외국인이 차지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통신 서비스 시장의 또 다른 쟁점은 ‘통신 규제 기구’의 중립성 확보 문제. 이에 따라 정보통신부 산하기관인 통신위원회의 위상에도 변화가 예상된다.

<김태한기자>freewill@donga.com

▼스크린쿼터제 완화… 경쟁력 향상 시험대▼

◆영화=한국 영화는 최근 위상이 근본적으로 달라졌다. 9월말 현재 객석점유율은 39.9%에 달한다. 이런 상황에서 한 해 최소 146일 이상 한국 영화를 상영하도록 정한 스크린 쿼터(한국영화 의무 상영 일수)는 점진적으로 축소될 수밖에 없다는 게 영화계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따라서 도하라운드 협상으로 스크린쿼터 문제가 대두되더라도 다른 서비스 분야보다는 마찰이 적을 것으로 예상된다.

‘UIP’ ‘월트디즈니’ 등 미국 직배사의 영화가 ‘친구’‘엽기적인 그녀’ 등 한국 영화에 밀리는 상황에서 스크린쿼터를 고수할 명분이 없어졌기 때문이다. 시장상황이 급변하자 그동안 스크린쿼터 폐지를 반대해왔던 스크린쿼터문화연대측도 “현행 스크린쿼터제는 2002년까지 유지되므로 그 뒤에는 시장논리를 수용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입장을 바꿨다.

스크린쿼터문화연대 이상은 기획홍보팀장은 “영화인들이 삭발 투쟁하던 1999년과는 환경이 크게 다르다”며 “미국 직배사들이 오히려 대형 한국영화를 피해 개봉 일자를 바꾸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여야 국회의원들은 지난해 “한국영화 점유율이 40%에 이를 때까지는 스크린쿼터를 유지해야 한다”고 했으나 최근의 점유율은 이미 40%에 도달했다. 실제로 지난해 상반기에는 한국영화 평균 상영일수가 스크린쿼터보다 7.8일 적었으나 올 상반기에는 오히려 0.5일을 초과했다.

그러나 스크린쿼터가 축소되거나 폐지되면 저예산 영화들은 더욱 설 자리를 잃을 것으로 보인다. 독립영화를 제작하는 영화인들의 모임인 독립영화협의회측은 “저예산 영화 전문 상영관 등 한국영화의 다양성을 담보할 조건이 마련되기 전에는 스크린쿼터 폐지를 받아들일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이승헌기자>dd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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