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KBS2 '인간극장' 담당PD들이 전하는 주인공 후일담

  • 입력 2001년 6월 24일 18시 52분


◆ 진솔한 삶에서 보는 잔잔한 감동

‘인간적인, 너무도 인간적인!’

지난해 5월 시작돼 1년 넘게 방영되고 있는 KBS 2TV ‘인간극장’(월∼금 오후 8·50)이 고정 시청자를 확보한 알짜 프로그램으로 자리잡고 있다.

다양한 인간의 삶을 보여주는 이 프로그램의 성공비결은 사람에 대한 따뜻한 시선. 일반인이나 연예인이나 ‘인간극장’에서는 그저 한 사람의 진솔한 인간으로 비치기 때문이다. ‘인간극장’은 앞으로 가수 송대관, 서울 구로동 네쌍둥이 등을 내보낼 계획.

하지만 이 프로그램이 항상 박수를 받았던 건 아니다. ‘그 산골엔 영자가 산다’를 방영해 좋은 반응을 얻었지만 그 후 가족이 붕괴되고 영자는 그 충격으로 절에 들어가는 아픔도 겪었다.

이에 대해 KBS 외주제작국 이규환 부장은 “‘영자’의 기획이 잘못된 것은 아니었지만 방송이 이런 부작용을 낳을 수도 있다는 교훈을 얻었다”며 “앞으로 등장인물에 대한 세심한 배려와 관심을 놓치지 않겠다”고 말했다.

‘인간극장’은 KBS가 직접 제작하지 않고 외주업체인 ‘리스프로’와 ‘제3비전’이 제작하고 있다. 이들은 한 인물 당 한 달에서 길게는 1년까지 밀착 취재해 방영한다. ‘인간극장’에 등장했던 사람들의 후일담을 담당 PD들로부터 편지 형식으로 들어봤다.

<황태훈기자>beetlez@donga.com

●‘그 여자 하리수’(연출 장기하)〓아름다운 하리수씨! 과거는 불행했지만 여자로 새로운 인생을 시작한 당신의 인간적인 모습을 그리려 했습니다. 연예 활동에서 ‘트렌스젠더’(성전환자)라는 메리트를 너무 이용하면 오히려 사람들로부터 외면당할 수 있다고 걱정의 말을 건네자 당신은 이렇게 대답했지요. “20여 년을 남자로 살면서 겪었던 아픔이 너무 컸기에 이보다 더 어려운 상황은 없다고 생각해요. 미련 없이 활동했는데 실패한다면 일본에서 배운 미용 기술로 살면 그만이지요.”

하리수씨를 따라다니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부모님 인터뷰였습니다. 어버이날 어렵게 만난 아버님이 착잡한 표정으로 “조상 볼 면목이 없지만 아직도 나는 아들로 생각해요. 3대 독자거든요…. 너무 불쌍한 아이지요”라며 눈시울을 붉히셨지요.

요즘 각 방송에서 ‘하리수 모시기’에 열 올리는 모습을 보면서 한 순간에 스타로 상승하는 당신을 봅니다. 부디 힘들게 살아온 만큼 초심(初心)을 잊지 않기를….

●‘그리운 사람 송우’(연출 심재목)〓췌장암 말기 판정을 받고 마지막 정리하는 과정을 함께 했던 작가 송우 선생님. 4개월 남짓 촬영 기간동안 나날이 메말라 가는 선생님의 심신을 바라보며 가슴이 아팠습니다.

당신은 “자신 있게 마무리하는 걸 보여주고 싶다”며 이 일을 시작했건만 막상 암의 고통이 극심해질 때면 “촬영을 연기하자”며 약한 모습을 비치기도 하셨지요. 문 밖에서 선생님의 몸 상태가 호전되길 기다리다 촬영을 못한 적도 많았습니다.

얼마 전 선생님의 두 아들과 포장마차에서 대화를 나눈 적이 있어요. 당신이 영면한 직후 집에서 기르던 애완견 쭈쭈가 선생님 배 위로 올라가 고개를 숙이고 눈물 흘리는 것을 보았다고 하더군요. 하물며 동물까지도 선생님을 그리워한다는 사실에 가슴이 뭉클해졌습니다.

●‘친구와 하모니카’(연출 김우현)〓98년 12월의 어느 이른 아침 서울 가락시장 전철역에서 구슬프게 하모니카를 불고 있는 행려자 하늘이를 우연히 보았습니다. “얼마나 버느냐”고 묻자 당신은 “행복해지기 위해 연주하는 것이지 20년 동안 한 번도 돈을 받은 적이 없다”고 답했지요. 그 인연으로 앵벌이 두한이도 만났고 사계절 동안 서울과 성남을 돌며 함께 시간을 보냈던 기억이 납니다. ‘인간극장’을 촬영하는 건지 노는 건지 구별이 안될 정도였지요.

연락이 끊어진 하늘이를 만나기 위해 전철역에서 무작정 기다리던 중 하모니카를 불며 다가오는 하늘이가 왜 그렇게 반가웠던지.

현재 석촌호수에 거처를 마련한 하늘이와 경북 문경의 ‘태조 왕건’ 촬영장에서 엑스트라 데뷔를 꿈꾸는 두한이의 순수한 동심이 상처받지 않길 바랍니다.

●‘길 위의 가족’(연출 전호진)〓지난해 7월에 출발해 아직도 온 가족이 세계 일주를 하고 있을 이성 단장(서울시청 시정계획단)님. 3월말 취재를 하고싶다는 제의를 했을때 단장님은 “가장 힘든 코스인 남미지역을 여행할 때 취재를 해달라”고 하셨지요.

그 덕분에 해발 3500m의 페루 잉카트레일(페루 고산지대의 잉카유적을 둘러보는 여행 코스)을 3박4일간 강행군하며 저와 카메라맨은 몇 번이나 고산병으로 쓰러졌지요. 그래도 고생 끝에 마지막까지 주파했을 때의 감동은 말로 표현하기 어렵더군요.

단장님은 이번 여행 중 부모님이 모두 돌아가시는 아픔을 겪었지만 두 아들은 한층 넓은 안목을 갖게 됐으니 불행 중 다행이랄까요.

비록 아이들은 학업이 1년 늦어졌지만 더 큰 세상을 보는 법을 배웠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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