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앤화이트>게임의 미래 바꾼다

  • 입력 2001년 4월 15일 18시 41분


내게는 ‘아라’라는 이름의 원숭이 한 마리가 있다. 첫 생일을 맞은 지 엊그제 같은데 벌써 열여섯 살. 키도 몸무게도 다섯 배는 자란 것 같다.

아라를 키우면서 원숭이가 왜 인간과 가장 비슷하다고 하는 지 실감했다. 배우는 것도 빠른데다 그 넉살스러운 표정이 마냥 귀엽기만 하다.

그러나 아라는 역시 동물, 말도 잘 안 듣고 제 멋대로 행동하기 일쑤다. 게다가 아직도 용변을 아무데서나 본다. 그렇게 혼냈건만 어릴 때 귀여운 나머지 마음대로 하게 내버려둔 내 잘못이 크다.

배불뚝이가 되면 어쩌나 해서 요즘 다이어트를 시키고 있지만 이 녀석의 애교는 징그러울 정도다. 먹을 걸 달라고 물구나무서서 재롱을 떠는가 하면, 얼굴을 푹 숙인 채 처량한 얼굴로 바라보는데, 내가 마음이 약하다는 걸 이 녀석이 간파하고 있는 것 같다.

그래서 오늘은 좀 때려 주려고 마음을 굳게 먹었는데 이게 웬 일? 잠시 나갔다오더니 온 몸에 상처투성이로 씩씩거리며 들어오는 게 아닌가.

옆 동네의 사나운 개(실은 늑대에 가까운 녀석)와 대판 싸운 것이다. 다행히 큰 상처는 없어 보였지만 할퀸 자국이 흉터로 남을까 걱정이다. 목줄을 묶어 놓으면 답답해하고, 또 풀어놓으면 온 사방을 누비고 돌아다니니, 아휴….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 늑대 같은 녀석은 우리 아라에게 완전히 KO패 당했단다.

‘아라’는 현재 전 세계 게이머들의 밤잠을 앗아간 게임 ‘블랙 앤 화이트’의 사이버 애완동물 중 하나다. 이 게임 속에서 게이머는 신이 되고, 여러 신들 중에서 가장 강력한 힘을 얻어 주변을 정복해 결국 전 세계를 지배하는 것이 목적이다. ‘아라’와 같은 애완동물은 주인을 대신해 임무를 수행하는 도우미 역할을 한다.

이 게임의 전체 컨셉은 ‘땅따먹기’로 일반적인 전략 게임과 같다. 하지만 이 게임만의 독특한 아이디어와 기술은 기존 게임들과 차이를 드러낸다. 가장 큰 특징은 게이머의 행동에 따라 게임 환경이 변한다는 점이다.

‘블랙 앤 화이트’라는 이름처럼 선한 방법, 혹은 악한 방법으로 게임을 즐길 수 있는데, 게임 속에서 폭력을 일삼고 악행을 저지르면 게임도 그에 맞춰 폭력적인 게임으로 변한다. 손도 뾰족해지고 자신의 신전(神殿) 역시 악마의 성과 같이 변형된다.

애완동물 역시 마찬가지다. 못된 짓을 많이 시키면 포악한 괴물로 변하고 선하게 키우면 영롱한 무지개 빛을 띤 정의의 모습으로 변한다. 물론 외형만이 아니라 성격과 체형 역시 게이머가 하기 나름이다. 결국 게임이 게이머의 성격을 반영하는 거울이 되는 셈이다.

가장 창조적인 게임개발자 중 한 명인 피터 몰리뉴가 4월초 발매한 ‘블랙 앤 화이트’는 ‘컴퓨터게임의 미래를 바꿀 게임’이라 극찬과 함께 올 상반기 화제작으로 떠올랐다. 신(神)의 게임이라는 독특한 영역으로 승부를 건 ‘블랙 앤 화이트’는 게임에서 창의력과 아이디어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주고 있다. 국내에는 지난 7일 출시됐다.

김 승 규(게임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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