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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경기자의 시네닷컴]<리플레이스먼트>,꼴찌에게 갈채를

입력 2000-11-23 18:51업데이트 2009-09-21 1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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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콧날을 시큰거리게 만드는 약한 고리는 사람마다 다르다. 누군가에겐 애절한 사랑, 또 누군가에겐 가족에 관한 영화가 그렇겠지만 내 경우는 실패하고 낙오한 사람들에 대한 영화가 약한 고리다.

미국에서는 ‘실패자(Loser)’가 ‘병신’쯤 되는 험악한 욕일지언정 나는 인생에서든 사랑에서든 실패하고 잃어버려 상처입은 짐승처럼 웅크린 사람들, 그래서 ‘나같은 것을 누가…’하는 자괴감에 휩싸여 사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눈물샘이 터진다. ‘매그놀리아’에서 세상 누구도 자신을 사랑하지 않을 거라고 굳게 믿는 클라우디아가 나올 때마다, ‘버팔로 66’에서 마음이 비비 꼬여 엉뚱한 데에 화풀이를 해대는 빌리를 볼 때도 그런 심정이었다.

상영중인 영화 ‘리플레이스먼트’도 그랬다. 87년에 실제로 있었던 미식축구 선수들의 파업을 소재로 한 이 영화는 파업 중인 프로 선수들 대신 오합지졸격 대체 선수들을 끌어모아 결국 승리한다는 이야기이다.

사실 별 볼 일 없고 유치하기까지 한 이 코미디 영화에 약한 고리가 툭 터진 이유는 주인공 팔콘(키아누 리브스)의 불운 때문이다.

팔콘은 과거에 빛났으나 큰 게임에서 크게 지는 바람에 고약하게도 많은 사람들이 “아, 그 때 시합을 망친 선수”하고 알아보는 전직 미식축구 선수다. 재기의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 대체 선수가 되지만 그는 “잘하려고 할수록 더 엉망이 되는 모래늪같은 상태”가 인생에서 가장 두렵다.

그러나 두 번 다시 실수를 하지 않으려 혼자 연습하던 팔콘에게 코치는 “파업중인 주전 선수가 복귀하니 너는 끝났다”고 전해준다. 나는 울컥한 심정이 되어 ‘팔콘! 제발 기죽지 마라’를 마음속으로 외쳐댔지만, 사실 그 이후 영화는 보나마나다. 유일한 스타인 키아누 리브스를 그렇게 퇴장시킬 리 없다.

그는 엉망진창이 된 시합을 보다못해 복귀를 자청하면서 승리를 이끄는 영웅이 된다. 팔콘이 불운을 너무 매끈하게 떨쳐버려 좀 뜨악했지만, 그의 승리에 호들갑스런 찬사 대신 담담한 축하를 보내며 끝마무리하는 것도 이 영화의 무시할 수 없는 미덕이다.

해마다 이맘 때면 이런저런 시험에 실패해 인생이 끝장난 것처럼 좌절하는 사람들이 주변에 있다.

그러나 아무리 보잘 것 없다고 여겨지는 인생에도 재기의 기회는 온다. 어느 시에서처럼 ‘바람은 예기치 않은 곳에서 불고, 구원은 뜻하지 않은 데에서 온다.’ 그리고 팔콘은 모처럼 찾아온 재기의 기회를 자기연민에 빠져 흘려보내지 않았다.

susann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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