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1일요스페셜 “日帝는 안중근 기개 두려워했다”

  • 입력 1999년 10월 22일 19시 15분


26일은 안중근 의사가 일본의 이토 히로부미를 중국 하얼빈 역에서 저격한 지 90년째 되는 날. 당시 하얼빈은 러시아 조차(租借) 지역이었음에도 안의사는 일본 헌병대에 의해 일본의 조차지역이었던 뤼순으로 압송돼 단 7일만의 재판 끝에 사형을 언도받았다.

KBS1 ‘일요스페셜’(24일 밤8·00) 제작진은 당시 안의사 재판 과정에 일본 외무성의 극비 전략이 있었음을 밝혀낸다. ‘발굴 일 외무성 비(秘)파일, 일본은 왜 안중근을 죽였나?’편.

제작진은 4개월 반 동안 일본 중국 등지의 관련문서를 조사한 결과 당시 일본의 외무대신 고무라 주타로와 사건 발생 3일 후 뤼순으로 급파된 외무성 정무국장 구라지 데쓰키스가 주고받은 비밀 전보가 안의사 사형에 결정적 영향을 미쳤다는 것을 알아낸다.

황대준PD에 따르면 “혹시 안의사에게 무기 징역이 언도될지도 모르니 재판부에 지시를 내려달라”는 구라지의 전갈에 고무라는 “중대한 일이므로 극형에 처하도록 하겠다”고 답했다는 것.

이후 진행된 재판을 거쳐 안의사는 항소절차도 없이 1910년 3월 26일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제작진은 안의사 사형 집행 배후의 음모 외에 안의사의 거사로 인해 중국 등지에서 더욱 격렬하게 진행된 항일 투쟁도 소개한다. 황PD는 “30년대 중국에서는 ‘안중근 추모가’가 불렸고 중국 근대화의 아버지 쑨원은 그를 추모하는 제문을 짓기도 했다”며 “저우언라이 등 당시 젊은 중국 지식인들이 항일 유격전에 뛰어드는 데 적잖은 영향을 끼쳤다”고 설명했다.

〈이승헌기자〉dd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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