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다큐스페셜」「PD수첩」,재벌-언론비판 눈길

  • 입력 1998년 3월 17일 07시 31분


광고판매율이 50%대로 떨어진 요즘, TV가 ‘생명줄’과 다름없는 광고주 특히 재벌을 비판하는 것은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다는 일’이다.

12일 방영된 ‘MBC다큐스페셜’의 ‘재벌…족벌’편.

이 프로는 제작배경이 무엇이든간에 과거 방송이 하지 못했던 금역(禁域)의 한 구석을 무너뜨렸다.

카메라는 국제통화기금(IMF)사태라는 초유의 위기가 상당 부분 재벌에 책임이 있음을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이 프로는 무엇보다도 우리 모두 책임이 있다는 식의 두루뭉실한 양비론을 벗어났다는 점에서 다른 프로들과 뚜렷하게 차별된다. 특히 재벌들이 부를 세습하는 시스템과 문제점을 구체적으로 적시했다는 점에서 눈길을 끌었다.

세계적 거부들을 매년 소개하는 포브스지에 따르면 삼성 이건희회장 일가의 재산은 4조3천억원에 이른다. 그러나 88년 이회장이 낸 상속세는 겨우 1백50억원. 이 수치는 당시 세법에 따르면 5백억원정도의 재산을 물려받은 데 불과하다. SK텔레콤의 이익이 그룹의 특정인에게 빠져나가는 것을 비롯해 재벌들의 돈빼돌리기 기술은 세계적인 마술사 데이비드 카퍼필드가 울고 갈 정도.

이 프로는 실제 경영진의 사활을 좌우하는 사외이사제나 소액주주의 권리보장 등 선진국의 사례와 전문가 인터뷰를 통한 대안을 제시해 다큐멘터리가 지닌 힘을 보여줬다.

그런데 이처럼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단 결과는 어땠을까.

“잘 봤습니다. 테이프 좀 구해주시죠.”

“지나치게 일방적인 게 아닌가요.”

MBC의 한 간부에 따르면 여기저기서 은근한 목소리에 힘을 실은 ‘압력성’ 전화가 이어졌다.

또 하나. 재벌언론의 신문시장 교란을 다룬데 이어(10일) 일부 신문의 대통령만들기 등 권언유착을 파헤칠 예정이었던 ‘PD수첩’의 2부는 당초 방영일인 17일에서 며칠뒤로 연기됐다. MBC관계자의 말.

“방영이 연기된 이유를 정확하게 밝히기 어렵습니다. 재벌쪽의 압력이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다큐스페셜’과 ‘PD수첩’이 나간 뒤 솔직히 여러가지 이유로 힘들었습니다. 그러나 ‘PD수첩’의 방영은 무산되지 않습니다. 24일이나 31일 꼭 나갑니다.”

최근 과거 ‘땡전 뉴스’나 ‘땡김 뉴스’라는 비판을 받아온 MBC 등 방송의 바로서기가 이제 재벌관련 방송에서 시험대에 서 있는 셈이다.

〈김갑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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