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하다.
영화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모두 삼류인데 영화는 천박하지 않다. 그 어떤 영화보다 폭력과 욕설 섹스가 난무하지만 웃다 보면 언제 피튀기는 싸움이 있었나 싶다.
오랜만에 웃음보를 터뜨리게 만드는 한국영화가 나왔다. 시나리오작가로 활동해온 「늙은 신인」 송능한감독(39)의 데뷔작 「넘버3」. 20대 감독이 주름잡는 요즘 무던하게 작가 수업을 쌓아온 그가 감독 데뷔를 겨냥해 직접 쓴 작품이다. 충무로에서 잔뼈가 굵은 만큼 그가 하는 「장난」도 생짜배기 신인들보다 농익었다.
영화는 90년대말 도시를 살아가는 삼류 인생들의 이야기다. 넘버원이 되기 위해 죽을 고생을 하는 넘버스리 깡패, 시인을 꿈꾸는 술집 호스티스, 좀더 솔직하게 돈과 색(色)을 밝히는 호스티스가 그들이다.
진짜 삼류는 또 있다. 시를 가르쳐준다며 유부녀와 바람피우는 것을 일삼는 시인과 세상의 깡패들을 무지 미워하지만 태도는 깡패보다 더 깡패같은 검사 등….
영화에 생기를 불어넣는 힘은 인물들의 캐릭터와 말의 재미를 살린 대사들이다. 밑바닥 인생들을 주인공으로 삼았다. 우리 주변 어디선가 본 듯한 얼굴들….
이따금 관객의 허를 찌르는 구성이 재미있다.
「도강파」의 뜨내기 깡패 태주(한석규 분)는 하극상 쿠데타에서 보스(안석환)를 도피시킨 공으로 조직의 넘버3가 된다. 그는 넘버1의 자리를 놓고 단순무식형의 넘버2 재떨이(박상면)와 경쟁하지만 항상 과격한 재떨이에게 밀린다. 조직의 최대 과업인 평화호텔 인수건을 맡게 된 태주. 그러나 「왕도라이」로 소문난 검사 마동팔(최민식)의 등장으로 일이 꼬이기 시작한다. 한편 태주의 아내인 호스티스 현지(이미연)는 삼류 시인 랭보(박광정)로부터 시를 배우다 엉겁결에 그와 불륜관계를 맺는데….
자칫 산만해질 수도 있는 여러명의 이야기를 끝까지 잘 엮은 것은 연출의 힘이다. 한석규 최민식 이미연 안석환 박상면 등 주인공들의 탄탄한 연기도 짜임새를 더해준다. 신인 송강호의 연기도 돋보인다.
영화의 주인공들은 극장문을 나서는 관객의 뒤통수를 때린다. 너희들은 삼류 아니냐고. 매끈한 간판 뒤에서 비열한 짓을 일삼는 정치인과 기업들은 폭력조직과 뭐가 다른가. 잘난체하는 일류들이 나쁜 짓은 더하지 않았느냐고.
「폭력과 욕설이 아니면 풍자가 안되느냐」는 의문이 생기지만 다음에는 피한방울 욕한마디 없는 영화를 만들겠다는 감독의 약속을 믿어보자. 26일 개봉.
〈신연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