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서울에 거주하는 50대 이 모 씨는 고(高)환율이 오래 지속될 것으로 보고 자산 일부를 달러로 운용하고자 만기 된 정기예금 10억 원을 달러로 환전해 달러 보험에 가입했다. 이 씨는 “원화 상품보다 확정 금리가 높고 달러로 연금을 받기에 고환율 시기에 자산을 배분하는 방법으로 적합하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2 재무를 담당하는 김 모 씨는 원·달러 환율이 1200원대일 때 회사 여유자금 10억 원가량을 달러 예금으로 예치하고 갱신해 왔다. 내년 초 만기를 앞두고 있는데 달러당 200원가량의 환차익이 기대되는 상황이다. 김 씨는 “외화 예금이 제시한 금리까지 합하면 수익률이 2년여간 약 20% 정도 될 것으로 본다”라고 말했다.
지난 20일 원·달러 환율이 살 때 기준(우대환율 미적용 시) 1500원을 돌파했다. 5대 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이 시점은 다르지만 20일, 21일 모두 살 때 기준 1500원을 넘겼다. 20일까지 달러 대비 원화 환율은 평균 1455.9원(오후 3시 반 기준)을 기록했다. 비상계엄 직후인 1월(1455.5원) 이후 최고치다. 연평균으로는 2009년 3월(1453.35원) 이후 16년여 만이다. 고환율은 뉴노멀이 됐다.
달러 강세 요인은 복합적이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의 금리 인하 시점 및 속도에 대한 불확실성이 지속되고 있고 단기 자금 시장에서의 달러 수요 우위 및 조달 비용 상승 등 영향이 있다. 서학개미 등 국내 투자자들의 달러 매입 수요 증가나 지정학적 및 글로벌 금융 리스크 재부각으로 인한 위험 회피 심리도 달러 강세를 뒷받침한다.
박태형 우리은행 TCE 시그니처센터 PB 지점장은 “글로벌 수요 둔화, 원자재 가격 상승 등 수출 중심 한국 경제의 펀더멘털에 대한 부담과 주요국 통화 대비 원화의 높은 변동성, 즉 달러 인덱스 상승폭보다 원·달러 환율 상승폭이 현저히 높은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고 말했다.
외화통장 개설부터 달러 예금·보험 관심 높아져
상황이 이렇다 보니 달러 매입을 늘리는 투자자들이 증가하고 있다. 5대 은행의 달러 예금 잔액은 20일 기준 618억 달러(약 91조1859억 원)로 집계됐다. 전월 말 대비 45억 달러(약 6조6397억 원)가량 늘었다. 전년 동월(604억 달러)과 비교하면 14억 달러가량 증가했다. 외화예금은 7일 미만짜리 상품도 있지만 통상 1개월 단위 상품으로 구성된다. 매수 시점에 가장 높은 금리를 택하는 편이다. 은행별로 차이는 있으나 대체로 현 기준 3∼6개월 금리(연 3.3∼3.5%)가 가장 좋은 편이다.
수시로 달러를 사 모을 수 있는 외환 통장도 인기다. ‘토스뱅크 외환 통장’은 지난해 1월 출시된 이후 2025년 9월 기준 284만 좌가, 카카오뱅크의 달러박스는 지난해 6월 출시된 이래 10월 기준 117만 좌가 발급됐다.
직장인 박 모 씨는 “지난해 엔화가 900원 아래로 내려오면서 외화 투자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는데 최근에는 원·달러 환율이 지속해서 상승한다는 기사들을 접하면서 달러 투자 비중을 늘리고 있다”면서 “주식보다 변동성이 적고 거시 경제 흐름에 맞춰 방향을 예측할 수 있다는 점이 환 투자의 매력”이라고 말했다.
과거보다 적극적으로 달러 매입에 나서는 건 모바일로 간편하게 가입할 수 있게끔 편의성이 높아진 측면도 있다. 직장인 강 모 씨는 “최근 인터넷은행들이 외환 통장을 내놓고 있는데 달러를 사고팔기가 손쉬워 1000만 원 정도의 자금으로 나름의 매수와 매도 기준을 정해 이하로 떨어지면 사고, 이상으로 올라가면 파는 식으로 투자하고 있다”고 말했다.
달러 보험에 관한 관심도 급증하고 있는 분위기다. 5대 은행에 따르면 올해(이달 17일 기준) 달러 보험 상품 누적 판매액은 1조4732억 원에 달한다. 올 판매 실적이 지난해 연간 판매액(9506억 원) 대비 약 55% 늘었다.
투자자들 “달러 자산 비중 늘릴 것”
예금보다 더 높은 이익을 얻기 위해 달러 자산 기반 해외 부동산을 직간접적으로 투자하는 사례도 늘어나고 있다.
직장인 김 모 씨는 환율 안정기에 미리 환전해 적립해 둔 달러 여유자금 등으로 올해 초 임대수익을 목적으로 한 해외 부동산을 구매했다. 매달 3만 달러(약 4426만 원)가량의 월세 금액을 수령하고 있다. 최근 달러 급등으로 환율 포지션에 따라 원화 수익도 증대됐다. 올해 5월 기준 환율 대비 약 7% 정도 환차익 발생했다. 김 씨는 “해외 자산 비중을 약 10%로 유지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50대 최 모 씨는 2022년 11월 거래 중인 PB센터를 통해 글로벌 부동산 리츠 펀드에 가입했다. 국내 부동산 시장은 금리 상승과 규제 강화로 매력이 떨어지던 상황이었다. 부동산 외 자산으로 시야를 넓힐 필요성을 느껴 해당 펀드에 10억 원을 투자했고 3년간 23%가량의 수익률을 기록 중이다. 최 씨는 “글로벌 경기 흐름, 미국 금리 정책, 환율 방향 등 한국 자산에, 성과에 미치는 영향을 체감하고 현재 10% 수준인 해외 자산 비중을 50%까지 늘릴 예정”이라고 말했다.
미국 자산을 담은 주가연계증권(ETF)은 하나쯤 드는 분위기다. 40대 이 모 씨는 투자 포트폴리오 20%를 미국 국채 10년물 ETF에 5%씩을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ETF와 나스닥 ETF에 분배 중이다. 미 달러 무위험 지표(SOFR) 금리 연동 ETF 20%와 금 현물도 보유하고 있다. 이 씨는 “달러 강세 구간에선 자산가치가 올라가고, 약세 구간에선 저점 매수 기회가 생겨 전체 포트폴리오 안정성이 높아진다”고 말했다.
오건영 신한 프리미어 패스파인더 단장은 동아일보 유튜브 ‘머니 가이드 포 영올드’에 출연해 “중장기적으로 달러가 지금보다 강해질 확률이 어떻게 되느냐의 질문은 달러 자산을 얼마나 가져가느냐의 문제”라면서 “투자자가 그 확률이 20∼30% 정도 있다고 믿는다면 포트폴리오에서 달러 자산을 20∼30% 가져가면 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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