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전자의 벗에서 미식가의 벗이 된 미쉐린 가이드

  • 동아일보
  • 입력 2025년 3월 26일 03시 00분


[푸드 NOW]
밍글스, 국내 유일 미쉐린 3스타 선정
프랑스에선 성경책 다음 많이 팔려
독창적 매력을 가진 요리 색깔 중요… 음식 문화-지역 관광 활성화에 기여

지난달 열린 ‘미쉐린 가이드 서울&부산 2025’ 행사에서 미쉐린 스타 레스토랑이 발표됐다. 김유경 푸드디렉터 제공
지난달 열린 ‘미쉐린 가이드 서울&부산 2025’ 행사에서 미쉐린 스타 레스토랑이 발표됐다. 김유경 푸드디렉터 제공
지난달 27일 웨스틴 조선 서울호텔에서 ‘미쉐린(미슐랭) 가이드 서울&부산 2025’의 공식 발간을 위한 세리머니 행사가 열렸다. 2017 ‘미쉐린 가이드 서울’이 발간된 이후 아홉 번째 에디션이다. 행사에서는 올해 별을 받을 레스토랑이 어디인지 발표된다. 미쉐린 1스타 레스토랑부터 2스타, 3스타 순으로 호명된다. 행사장에는 셰프들과 미디어, 후원사 정도만 초대를 받아 참여할 수 있다. 셰프들은 사전에 무슨 별을 받는지, 아니 별을 받을지 안 받을지 정보를 모른 채 참석하게 된다. 발표 전까지는 상당히 초조해 보이는 표정으로 앉아 있다가 자신의 레스토랑이 호명되면 소화제라도 먹은 듯 개운한 표정으로 달려 나가 미쉐린 가이드 로고가 박혀 있는 셰프복을 받고 소감을 발표한다.

올해 국내 유일 미쉐린 3스타 레스토랑으로 선정된 강민구 셰프의 ‘밍글스’ 메뉴(위 사진)와 레스토랑 내부 전경. 사진 출처 미쉐린 가이드 홈페이지
올해 국내 유일 미쉐린 3스타 레스토랑으로 선정된 강민구 셰프의 ‘밍글스’ 메뉴(위 사진)와 레스토랑 내부 전경. 사진 출처 미쉐린 가이드 홈페이지
미식가들 사이에서 관전 포인트는 새로운 미쉐린 3스타 레스토랑이 탄생할지, 기존의 별을 유지할지, 어떤 레스토랑이 승급할지, 스타 레스토랑으로 새로 탄생하는 곳이 있을지 등이다. 필자는 2017년 첫 번째 에디션 발간 행사 이후 오랜만에 미쉐린 가이드 발간 행사에 참석했다. 새로운 얼굴들이 많이 보여 실력 있는 레스토랑의 규모가 다양해졌음을 느꼈다. 특히 올해는 뉴코리안 퀴진 ‘밍글스’가 미쉐린 2스타에서 3스타로 승급되어 국내에서 만날 수 있는 유일한 미쉐린 3스타 레스토랑이라는 의미를 더했다. 그랜드볼룸 한쪽 벽면을 가득 채운 스크린에 세 개의 별이 떠오르자 행사장 자리에 참석한 셰프들은 기립박수를 치며 환호성을 지르기 시작했고, 밍글스의 강민구 셰프의 소감이 이어졌다.

미쉐린 가이드는 1889년 앙드레 미슐랭과 에두아르 미슐랭 형제가 함께 세운 미쉐린 그룹에서 1900년에 창간한 책으로 1년마다 판을 바꾼다. 2000년에 미쉐린 가이드 창간 100주년 기념 부록으로 만들어진 초판 복각본 머리말에는 이렇게 씌어 있다. ‘이 책은 프랑스를 여행하는 운전자들에게 유용한 모든 정보를 제공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자동차에 필요한 부품을 조달하고 차를 수리하고 묵을 곳이나 먹을 장소를 찾고, 편지를 부치거나 전신, 전화로 연락하는 데 유용하다.’ 책 앞부분에는 타이어의 탈착과 수리 방법이 쓰여 있고, 전국 미쉐린 타이어 취급점 목록이 이어진다. 알파벳 순으로 2000여 곳에 가까운 마을 이름을 차례대로 싣고 각 마을의 인구, 철도역의 유무, 우체국의 유무, 전화 연락 가능 여부, 주유소 유무 등 모든 것을 기호와 약자를 사용해 수록했다. 지금은 내비게이션도 있고 휴대전화로 지도를 실시간으로 찾아볼 수 있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아날로그 방식으로 살아왔기 때문에 미쉐린 가이드는 운전자의 벗이자 안내서였다.

미쉐린 가이드에는 처음엔 레스토랑 정보가 포함되어 있지 않았다. 1923년 판부터 추천 호텔과 레스토랑이 다뤄지기 시작했다. 타이어를 자연스럽게 닳게 해 교체하기 위해서는 고객들이 자동차 여행을 자주, 더 멀리 떠나야 하기 때문에 미쉐린 가이드를 만들었다는 이야기도 있지만 당시 운전자들에게 유용한 정보를 제공하고 있었기 때문에 프랑스에서는 성경책 다음으로 많이 팔리는 책이라는 가치를 갖고 있었다.

미쉐린 가이드 무료 배포를 중지한 것은 1920년부터다. 미슐랭 형제가 어떤 수리공장에서 가이드북이 작업대 밑에 깔려 있는 것을 본 뒤 ‘우리의 선전 비용을 독자에게 대리 지불하게 하자’라는 말을 내뱉고 1920년 판부터 7프랑에 판매했다. 자동차 회사나 호텔, 레스토랑의 외부 광고를 없애 공정하고 중립적인 입장도 확보했다.

미쉐린 평가원들은 익명으로 레스토랑을 방문해 크게 여러 가지 기준에 따라 식당을 평가한다. 음식에 사용된 재료의 신선도와 품질, 요리를 통한 셰프의 기술과 숙련도, 맛의 완성도, 각 요리의 맛이 얼마나 조화로운지, 요리에 셰프의 개성과 창의성이 얼마나 담겨 있는지, 일관성이 있는지다. 이는 전 세계 어디에나 동일하게 적용되지만 나라별로 가지고 있는 고유의 식문화와 이를 모던하게 풀어냈는지도 추가적으로 반영하는 것으로 보인다.

미쉐린 가이드 인터내셔널 디렉터인 그웬달 풀레네크와의 인터뷰에서 세 가지 질문에 대한 답을 얻었다. 한국은 일제강점기와 6·25전쟁 등으로 섬세한 미식 문화가 발전하기 어려운 상황이었지만 오래전부터 대를 거쳐 내려오는 전통 장류나 김치 제조법이 존재했다. 한국의 많은 셰프들이 한국 전통 고유의 맛을 새롭게 재해석하는 노력이 돋보여 이러한 부분에 더 많은 가치를 두고 있다. 미쉐린 가이드는 한국을 찾는 외국인 관광객만을 위한 책이 아니고, 훌륭한 맛과 미식 경험을 추구하는 한국인과 한국을 찾는 외국인 모두가 납득할 만한 훌륭한 레스토랑을 선정하고 있다.

서울과 부산은 미식의 도시로서 매력이 넘치는 곳이다. 올해는 평양냉면이나 국밥집 같은 한국에서만 만날 수 있는 고유의 요리 전문점도 빕구르망 리스트에 많이 등재되었다. 이는 도쿄, 홍콩, 방콕 등 타 아시아 국가에서도 볼 수 있는 트렌드다. 프렌치 레스토랑이 더 높은 점수를 받는 것도 아니고, 다른 곳에서는 경험할 수 없는 각 지역의 색깔을 담은 곳이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미쉐린 가이드는 각 도시의 성격과 전통 음식 문화를 고려한 독특한 미식 경험을 할 수 있는 곳으로 안내해 우리 고유의 음식 문화를 유지할 수 있는 동력이자 지역 관광 활성화에도 기여하고 있다. 미쉐린 가이드에 등재되고자 기존 레스토랑의 방향성을 성급하게 바꾸거나 색깔을 흐리게 할 필요는 없다. 독창적 매력을 가진 나만의 요리 색깔을 가져야 인정받을 수 있을 것이다.

#미식가#미쉐린 가이드#밍글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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