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당금 늘려라” 주총 앞 몸푸는 행동주의 펀드

  • 동아일보
  • 입력 2024년 2월 1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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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 밸류업’ 업고 공세 거세져
5곳, 삼성물산에 1.2조 환원 요구
회사측 “과도”… 표 대결 나설 방침
공격기업 2020년 10곳 → 작년 73곳… “기업 투자 여력 떨어뜨려” 지적도

기업들의 주주총회 시즌을 앞두고 국내외 행동주의 펀드들이 보폭을 넓히고 있다. 특히 올해는 정부가 증시 부양을 위해 추진하는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 도입에 힘입어 주주가치 제고를 주장하는 이들의 목소리에 더 힘이 실리는 양상이다.

행동주의 펀드들은 주가가 저평가된 기업들을 공략해 증시에 활력을 불어넣고 주주들의 권익을 수호하는 순기능을 발휘한다. 하지만 이들이 해당 기업의 중장기적인 미래보다 단기 차익에만 관심을 기울인 나머지 기업의 투자 여력을 떨어뜨린다는 지적도 끊이지 않는다.

● 삼성물산에 “배당 늘려라” 공세

15일 삼성물산은 다음 달 열리는 정기 주총에서 영국계 자산운용사인 시티오브런던 등 5곳의 행동주의 펀드 연합이 제시한 자사주 소각과 현금 배당 안건을 의안으로 상정한다고 밝혔다. 시티오브런던 등은 삼성물산에 5000억 원어치 자사주를 매입하고, 배당액도 삼성물산이 제안한 규모보다 70% 이상을 늘리라고 요구했다. 이에 삼성물산은 행동주의 펀드들의 요구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앞서 삼성물산은 2026년까지 연간 1조 원에 달하는 자사주 소각과 계열사 배당금의 70%를 재배당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삼성물산 관계자는 “행동주의 펀드들이 제안한 총 주주환원 규모는 1조2364억 원으로 지난해와 올해 회사 잉여현금흐름의 100%를 초과하는 금액”이라며 “주주 요구를 받아들여 현금 유출이 이뤄지면 회사의 향후 투자 재원 마련이 힘들어질 수 있다”고 했다. 이에 따라 삼성물산은 행동주의 펀드와 주총에서 표 대결에 나설 방침이다.

행동주의 펀드들은 다음 달 주총을 앞두고 다른 기업들에도 적극적인 주주권 행사를 예고하고 있다. 얼라인파트너스는 지난달 JB금융지주에 자신들이 작성한 이사 후보 명단을 제시하는 등 이사 선임에 개입하겠다는 뜻을 드러냈다. 플래쉬라이트파트너스도 2001년부터 KT&G의 구(舊) 경영진이 회사의 자사주 1000여만 주를 재단 등에 무상으로 증여하는 등 회사에 손해를 끼쳤다면서 이들을 대상으로 대규모 소송을 준비하고 있다.

● ‘기업 밸류업’ 타고 보폭 넓히는 행동주의


글로벌 거버넌스 리서치 회사인 딜리전트 마켓 인텔리전스에 따르면 2020년 10곳 정도에 불과했던 행동주의 펀드의 공격 대상 국내 기업은 2021년 27곳, 2022년 49곳, 2023년 73곳으로 급증했다. 2020년부터 시작된 이른바 ‘동학개미운동’으로 개인투자자가 늘면서 주주환원을 앞세운 행동주의 펀드가 힘을 얻고 있는 모양새다. 특히 올해는 정부가 저(低)주가순자산비율(PBR) 상장사의 기업가치를 높이기 위한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 도입을 예고하면서 행동주의 펀드들의 주주환원 공세가 더욱 거세질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이런 분위기를 타고 행동주의 펀드에 호응하면서 주주환원에 적극 나서는 기업도 늘고 있다. 국내 4대 금융지주는 지난해 배당을 크게 늘리면서 2022년 29%였던 주주환원율을 35%까지 끌어올렸다. 지난해 자사주 소각 규모도 4조7626억 원으로 역대 최대치를 기록한 데 이어 올해도 이달 8일까지 3조3148억 원어치의 물량을 소각했다.

그러나 산업계에선 삼성물산의 사례처럼 행동주의 펀드들이 뭉쳐 한 기업을 공격하는 ‘울프팩(wolf pack·늑대 무리) 전략’이 빈번해질 수 있다고 우려한다. 주주가치 제고를 위한 무리한 주가 부양이 자칫 기업의 성장성을 갉아먹을 수 있다는 경고도 여전하다. 김춘 한국상장사협의회 정책1본부장은 “주주환원도 중요하지만 중장기적인 기업의 투자 여력 감소 위험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동훈 기자 dhlee@donga.com
김형민 기자 kalssam35@donga.com
신아형 기자 abro@donga.com
#기업 밸류업#배당금#행동주의 펀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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