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니 컨설팅] 노벨에게도 ‘유언대용신탁’ 제도가 있었다면

  • 동아일보
  • 입력 2024년 2월 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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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언장 통해 노벨상 상금 지급한 노벨
유언대용신탁, 유언장보다 상속 집행 빨라
유언장은 자금 동결되는 경우도 많아
상속을 위해 미리 준비해야

윤서정 신한은행 신탁부 변호사
윤서정 신한은행 신탁부 변호사
Q. 알프레드 노벨. 우리는 그를 세계에서 가장 명예로운 상인 노벨상의 제정자로 알고 있다. 그러나 사실 그는 사람을 더 많이, 더 빨리 죽이는 방법을 개발해 부자가 된 사람이기도 하다. 그는 상속을 통해 노벨상의 아버지가 되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그는 어떤 방법으로 상속을 준비했을까. 그가 2024년에 살고 있다면 어떤 방법으로 상속을 준비할 수 있을까.

A. 노벨은 다이너마이트 발명으로 40대에 큰 부를 이뤘다. 그러나 다이너마이트가 살상 무기로 사용되면서 늘 마음 한편이 불편했다. 그러던 어느 날 그의 형이 심장마비로 숨졌고, 한 신문사가 노벨이 죽은 것으로 착각하여 그의 부고 기사를 실었다. 기사 제목이 “죽음의 상인, 사망하다”였는데, 노벨은 이를 보고 큰 충격을 받았다. 이를 계기로 그는 속죄를 위해 노벨상 제정을 결심했다고 한다.

노벨은 유언장을 작성해 상속재산으로 노벨상 수상자에게 상금을 지급하고자 했다. 그의 유언장은 앞부분에는 상속재산의 일부를 그의 가족, 지인들에게 분배하도록 하고 뒷부분에는 나머지 상속재산을 물리학, 화학, 세계평화 등에 기여한 사람에게 지급하도록 했다.

이처럼 누군가를 지정하여 재산을 남기고자 한다면 미리 상속을 준비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법정상속인이 재산을 받게 된다. 우리 법은 4촌 이내의 방계혈족까지도 상속인의 자격을 인정하므로 먼 친척 대신 고마운 사람에게 의미 있게 남기고 싶다면 준비는 필수다.

그럼 어떻게 준비해야 할까. 노벨이 살던 시대에는 유언장을 작성하는 것밖에 없었다. 하지만 현재는 유언대용신탁을 하는 방법도 있다. 생전에 금융기관과 계약을 체결해 재산을 맡기고 사망 시 지정해 둔 사람에게 재산이 넘어가도록 하는 것이다.

유언대용신탁은 상속의 신속한 집행이 담보된다는 점이 가장 두드러진다. 상속 준비가 의미 있으려면 미리 정해둔 내용대로 지정한 사람에게 잘 집행되어야 한다. 그런데 유언장은 상속인에게 재산을 넘기는 과정에서 그 집행이 지연될 우려가 높다.

우선 유언장의 효력과 관련해 분쟁이 빈번하기 때문이다. 노벨은 약 2년에 걸쳐 유언장을 총 3회 작성했다. 작성할 때마다 그 내용을 매번 수정했다. 이러한 점 때문에 분쟁이 빈번한 것이다. 유언장이 여러 개 있는 경우 최종의 유언장만이 유효하다. 상속인들은 해당 유언장이 최종으로 작성된 것이 맞는지 다투기 위해 소송을 제기한다. 금융기관 역시 상속인들이 유언장을 가지고 온다고 할지라도 그것이 최종의 유언장인지 확인할 수 없어서 재산을 내어주지 않는다. 또 유언장은 작성할 때 엄격한 형식 요건이 요구돼 이를 갖추지 않는 경우 무효라고 판단된다. 최종의 유언장임이 확인되었더라도 요건을 갖추지 않았다는 이유로 분쟁이 발생하기도 한다.

두 번째는 유언집행자 문제로도 집행이 지연된다. 노벨은 평생 독신이었다. 또 노벨상에 대한 생각을 생전에 그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다고 한다. 결국 노벨은 유언집행자를 지정하여 그로 하여금 유언을 집행하도록 했는데 그 과정에서 집행이 오래 지연됐다.

현재도 유언장을 작성할 때는 보통 유언집행자를 지정한다. 유언집행자를 지정하지 않으면 상속인이 유언집행자가 되지만 상속인이 상속 절차에 익숙지 않아 전문가 등을 유언집행자로 지정한다. 그런데 이 유언집행자가 집행 업무를 게을리한다고 해서 상속인들의 합의하에 마음대로 유언집행자를 변경할 수는 없다. 법원에 종전의 유언집행자를 해임하고 새로운 유언집행자를 선임해 줄 것을 신청해야 한다.

이 같은 이유로 유언장 집행이 지연돼 자금이 동결되는 경우가 많다. 실제 노벨의 유언장도 각종 법적 분쟁으로 노벨이 사망한 후 5년이 지난 1901년이 돼서야 처음으로 노벨상을 수여할 수 있었다.

유언대용신탁은 이러한 점에서 자유롭다. 계약을 체결함에 있어 엄격한 형식 요건이 요구되지 않고 특약을 통해 최종의 유언임을 확인하도록 해 분쟁 가능성을 현저히 낮출 수 있다. 또한 생전에 금융기관과 논의해 상속을 설계할 수 있으며 금융기관이 직접 유언집행자의 역할을 하므로 그 신속성 및 정확성이 담보된다.

일생에 한 번 하는 준비를 위해 우리는 두 제도를 면밀히 검토할 필요가 있다. 우리 사회는 아직도 상속을 준비함에 모두가 너무 과묵하다. 그러지 말자. 아름다운 마무리를 위해 조금 더 미리, 조금 더 철저히 준비해야 한다.

윤서정 신한은행 신탁부 변호사
#노벨#유언대용신탁#유언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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