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청희의 젠틀맨 드라이버]100년 전 탄생… 벤틀리의 이상 담은 첫 차

류청희 자동차 칼럼니스트 입력 2021-03-26 03:00수정 2021-03-26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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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노블록 구조 엔진 ‘스리 리터’
엔진 제조기술 불완전한 당시
견고한 설계로 내구성-성능 발휘
벤틀리 스리 리터는 창업자 W. O. 벤틀리의 이상을 실현한 첫 모델인 동시에 이후 벤틀리 차들의 성격을 뚜렷하게 규정한 모델로 의미가 크다. DM Historics 제공
류청희 자동차 칼럼니스트
2019년은 영국 럭셔리 자동차 브랜드 벤틀리가 설립된 지 100년이 되는 해였다. 벤틀리의 100년 역사와 설립 100주년을 기념하는 의미로 내놓은 특별 모델 등은 이미 ‘류청희의 젠틀맨 드라이버’를 통해 소개한 바 있다.

그러나 월터 오언 벤틀리(W. O. Bentley)가 회사를 만든 1919년에는 일반 소비자들이 벤틀리가 만든 차를 손에 넣을 수 없었다. 그해 벤틀리는 시험용 차를 완성하고 영국 런던에서 열린 모터쇼에 시험 제작한 차를 선보이는 등 활발한 활동을 펼쳤다. 그러나 시험용 차는 기술적으로 미완성 상태였고, 판매가 가능한 차를 완성하기까지는 2년이라는 시간이 더 필요했다. 그래서 벤틀리 역사의 첫 시판 모델이 등장한 것은 지금으로부터 100년인 즉 1921년의 일이다. 즉 벤틀리의 공식 첫 차, 스리 리터(3 litre)는 올해로 탄생 100주년을 맞았다.

스리 리터는 창업자 W. O. 벤틀리의 이상인 ‘빠른 차, 좋은 차, 동급 최고의 차(A fast car, a good car, the best in its class)’를 실현한 첫 모델이다. 아울러 당대 일반 승용차에서 보기 어려웠던 설계 개념과 최신 기술이 폭넓게 쓰여 뛰어난 성능과 내구성으로 인기와 호평을 동시에 얻었다. 그러나 벤틀리 역사에서 스리 리터가 갖는 의미는 그 이상이다. 지금까지 한 세기 남짓 이어지고 있는 벤틀리 차들의 성격을 뚜렷하게 규정한 모델이었기 때문이다.

모델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스리 리터는 배기량이 3L인 4기통 엔진을 얹었다. 이 엔진은 네 개의 실린더를 한 덩어리의 블록에 넣은 설계로 주목받았다. 요즘 자동차에 쓰이는 직렬 4기통 엔진에는 거의 공식처럼 쓰이고 있는 이른바 ‘모노블록’ 구조지만, 스리 리터가 등장한 1920년대 초까지만 해도 그렇지 않았다. 여러 자동차 업체가 엔진 제조 기술이 불완전했던 탓에 하나 또는 둘씩 분리된 실린더 블록을 이어 붙여 다기통 엔진을 만드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그런 엔진들과 비교하면 벤틀리의 모노블록 엔진은 견고한 설계 덕분에 내구성이 뛰어나면서도 뛰어난 성능을 안정적으로 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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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진의 다른 부분에도 혁신적인 기술들이 반영되었다. 흡배기 효율을 높여 성능을 높이는 멀티 밸브 설계를 반영한 것은 물론 실린더에 스파크플러그를 두 개씩 달아 더 강력한 힘을 끌어냈다. 알루미늄과 마그네슘 등 가벼운 소재도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이런 기술들이 일반 승용차용 엔진에 본격적으로 쓰이기 시작한 것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의 일이다. 그만큼 벤틀리의 기술은 시대를 앞섰다. 엔지니어로서 W. O. 벤틀리의 재능과 경험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스리 리터의 엔진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벤틀리 엔진 고유의 동력 특성을 확립한 것으로도 알려져 있다. 벤틀리 차들은 전통적으로 엔진 회전수가 낮을 때에도 충분한 힘을 내어 거침없이 속도를 높일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 스리 리터의 엔진에도 그런 특징이 있었는데, 이는 의도적이면서 우연한 것이기도 했다.

1923년 르망 24시간 경주에 처음 출전한 벤틀리 스리 리터. Concours of Elegance 제공
당시 영국의 자동차 관련 세금 제도에서는 실린더의 지름(보어)이 중요한 기준이었기 때문에 벤틀리는 세금이 지나치게 높아지지 않는 범위 안에서 보어를 정하고 엔진을 설계했다. 그 결과, 보어에 비해 실린더 길이(스트로크)가 훨씬 더 길어졌다. 이와 같은 구조는 실린더 안에서 피스톤이 움직일 때 많은 양의 공기를 압축해 폭발시킴으로써 큰 힘을 내는 특성이 있고, 덕분에 스리 리터의 엔진은 회전수가 낮을 때부터 넉넉한 힘을 내는 특성을 갖게 되었다.

나아가 이런 엔진 특성은 4단 수동변속기와 어우러져, 장거리를 달릴 때에도 회전수를 비교적 낮게 유지하며 빠른 속도로 달릴 수 있는 바탕이 되었다. 나중에 벤틀리의 이름을 높인 고성능 그랜드 투어링 모델의 이름인 콘티넨털도 그와 같은 특성에 뿌리를 두고 있다.

스리 리터는 기술 이외의 특징들도 벤틀리의 유산으로 남겼다. 라디에이터 그릴도 그중 하나다. 당시 많은 차의 라디에이터 그릴은 엔진 냉각수를 식히는 기능에 충실해 투박한 모습으로 차체 앞에 우뚝 서 있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그러나 스리 리터는 대부분 위쪽을 우아한 곡면으로 만들고 앞을 바라보는 면을 뾰족하게 만들어 기능과 아름다움을 모두 충족했다. 아울러 앞쪽에 철제 그물망을 달아 라디에이터를 외부 이물질로부터 보호했다. 보행자 안전을 위해 플라스틱 소재로 바뀌었지만, 지금도 벤틀리 차들의 앞에는 그물망 무늬의 그릴이 달려 있다.

당대 최신 기술이 총동원된 스리 리터의 직렬 4기통 엔진. London Classic Car Show 제공
벤틀리가 역사를 이야기할 때 빼놓지 않는 모터스포츠의 많은 업적 역시 스리 리터로부터 시작되었다. 일반 판매에 앞서 시험용으로 만든 EXP 2가 1921년 영국 브루클랜즈에서 열린 대회를 시작으로, 스리 리터는 여러 자동차 경주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가장 유명한 것은 1924년과 1927년에 르망 24시간 경주에 출전해 우승한 것이다.

W. O. 벤틀리는 처음에는 르망 24시간 경주 출전을 내켜하지 않았지만, 스리 리터로 출전을 준비하던 존 더프의 설득으로 1923년에 처음 열린 경주를 지켜본 뒤 마음을 바꿨다. 이듬해인 1924년에 더프와 동료인 프랭크 클레멘트는 벤틀리로부터 전폭적인 지원을 받으며 르망 24시간에 출전해 당당히 우승을 차지하며 벤틀리의 우수성을 입증했다. 이어 1927년 한층 더 개선된 스리 리터 슈퍼 스포츠는 경주 도중 사고로 크게 파손되었음에도 완주해 우승을 차지하는 영광을 안았다.

스리 리터는 당대 부호와 왕족들에게 인기를 얻었는데, 특히 현 영국 국왕 엘리자베스 2세의 아버지인 조지 6세가 즉위 전에 구매했던 차로도 유명하다. 1921년부터 1929년까지 생산된 1622대 가운데 지금까지 남아 있는 것은 극히 소수다. 일반 판매 전에 시험용으로 만들었던 EXP 2는 복원 작업을 거쳐 벤틀리가 보유하고 있어 유명 클래식카 관련 행사에 종종 모습을 드러내곤 한다. 일반 소비자에게 판매된 스리 리터 중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것은 2011년 열린 한 경매에서 96만 2500달러(당시 환율로 약 11억880만 원)에 낙찰된 바 있다.

한 가지 사업과 한 브랜드 이름을 100년간 이어간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비록 주인이 여러 차례 바뀌는 등 부침을 겪었지만, 벤틀리가 꾸준히 명맥을 이으며 럭셔리 자동차 브랜드로 한 세기에 이르는 역사를 쌓은 것은 인정할 만한 일임에 틀림없다. 나아가 과거와 뚜렷하게 다른 개념과 설계, 기술로 만든 최신 모델에 100년 전 처음 만든 스리 리터가 보여준 정체성과 특징을 반영하는 모습은 미래의 럭셔리 브랜드를 꿈꾸는 다른 업체들이 새겨볼 필요가 있다.

류청희 자동차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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