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0채 단지에 1건 ‘전세 실종’… 매매보다 전세가 더 비싼 곳도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10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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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난 비상]임대차법 이후 전세난 어떻기에

가을 전월세 시장은 ‘역대급 혼란’에 시달리고 있다. 1000채가 넘는 대단지인데 전세 매물이 ‘0건’인 곳이 속출하면서 집주인이 ‘슈퍼 갑’이 돼버렸고, 매물을 내놓는 집주인에게는 부동산 중개수수료를 받지 않는 등의 ‘신풍속’도 등장하고 있다. 7월 말 계약갱신요구권과 전월세상한제 등 ‘임대차 2법’이 시행된 이후 전세 매물은 급감하고, 전셋값이 폭등하면서 임대차법 시행 전 우려됐던 각종 부작용이 곳곳에서 이어지고 있다.

16일 국토교통부 국정감사에서는 야당 의원들이 전세난을 집중 질타한 데다 여당 의원들마저 우려를 나타냈다.

○ ‘한정템’이 된 전세 매물
서울 성동구 아파트에 거주하고 있는 A 씨는 자신의 집을 세 주고 다른 동네에 전셋집을 구했다. 문제는 워낙에 전세 매물이 드물어 전셋집이 나오자마자 덜컥 계약해버린 것. 이 집의 전세금 납부 기간이 촉박하다 보니 자신의 성동구 아파트도 급하게 전세로 내놓았다. 그랬더니 불과 반나절 사이 30명이 집을 보러 오겠다고 나섰다. 1000채 넘는 대단지인데 A 씨 매물이 거의 유일했기 때문이다.

감당이 안 됐던 그는 결국 토요일과 일요일에 걸쳐 오전 11시부터 오후 1시까지 이들에게 10분 간격으로 집을 보여주기로 했다. 그는 “명품 매장에서 한정템을 파는 기분”이라며 “나도 힘들게 전셋집을 구했지만 전세 매물을 잡기 위한 경쟁이 이렇게 뜨거울지 몰랐다”고 혀를 내둘렀다.

공인중개사 사이의 전세 매물 확보 경쟁도 치열하다. 강동구의 한 공인중개업소 대표는 “동네에서 전세 매물이 딱 하나인데, 집주인이 중개업소 한 곳에 독점 중개권을 줬다”며 “해당 중개업소는 다른 공인중개사에게 계약을 하고 싶으면 중개수수료의 절반을 달라는 요구까지 하는 상황”이라고 털어놨다. 또 다른 중개업소 관계자도 “전세 매물을 가진 집주인에게 중개 수수료를 안 받겠다는 업소까지 등장했다”고 귀띔했다.

매물로 나온 집을 매수 희망자에게 보여주지 않는 세입자도 적지 않다. 주택을 매수한 사람이 실거주 목적으로 기존 세입자를 내보내는 사례가 늘면서 이를 피하기 위해서다. 집을 보여주는 대가로 돈을 요구하기도 한다.

○ 전세가>매매가 단지도 등장

전세 매물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처럼 어려워지면서 전셋값도 폭등하고 있다. 이달 12일 기준 한국감정원의 주간 아파트 가격동향에 따르면 서울 아파트 전셋값은 지난주보다 0.08% 상승해 68주 연속 오름세를 이어갔다. 이달 첫째 주 서울 전세수급지수는 192로 2015년 9월 셋째 주(192.4) 이후 최고치였다. 전세수급지수는 최고 200으로 전세 수요가 공급보다 많을수록 높다. 비단 서울에만 국한된 현상은 아니다. 전국 아파트 전셋값도 0.16% 올라 전주(0.14%)보다 상승폭을 키웠다.

전셋값이 단기간에 급등하면서 서울과 수도권의 저가 단지를 중심으로 매매가격을 위협하는 일이 발생하기도 한다.

경기 남양주시 호평동 ‘호평마을신명스카이뷰하트’ 전용 84m²는 전세 호가가 3억8500만 원이다. 올해 8월 3억3000만∼4억 원에 매매된 것을 고려하면 전셋값이 집값과 비슷하거나 추월한 셈이다. 서울 강서구 방화동의 ‘에어팰리스’ 전용 14m² 역시 올해 7월 1억1000만 원에 전세가 계약됐는데, 올해 8월 실거래된 매매 가격은 1억 원이었다. 경기 고양시 일산동구 ‘중산1단지 두산아파트’ 전용 59m²도 같은 달 1억9000만 원에 전세 계약이 이뤄져 지난달 매매 가격(1억7700만∼1억9300만 원)과 엇비슷해졌다.

정부는 ‘전세시장 혼란이 시간이 지나면 가라앉을 것’이라는 입장이다. 하지만 부동산 업계는 “전세가격 급등을 막을 방법이 마땅치 않다는 점이 더 큰 문제”라며 “임대차법을 시행할 때 뻔히 예상됐던 부작용인데 정부가 사실상 방관했다”고 비판했다.

정순구 기자 soon9@donga.com
#전세난#임대차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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